국회 본회의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내년 하반기부터 자산합계 5조원이 넘는 대기업들의 신규 순환출자가 금지된다. 일단 정부는 대기업 규율체계의 큰 틀이 구축됐다는 반응이다.
당초 기존 순환출자까지 규제하는 법안이 제기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재계도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다. 일단 기존의 순환출자 구조는 유지할 수 있고, 예외 조항도 있어 한숨은 돌리게 됐다.
하지만 순환출자 금지가 자칫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한편에서는 투자를 독려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옥죄는 법안이 통과되는 것에 대해 마뜩찮은 분위기가 강하다.
◇ 신규 순환출자 금지..예외는 허용
국회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신규 순환출자나 기존 순환출자 구조의 강화가 모두 금지된다. 기존 순환출자는 공시의무를 부과해 점진적이고, 자발적인 해소를 유도하기로 했다.
다만 기업의 사업구조 개편 등과 관련한 예외는 허용된다. 사업구조를 재편하면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신규 순환출자는 일단 허용하고, 6개월내에 이를 해소하도록 했다. 회사의 합병이나 분할, 영업 양수, 주식의 교환이나 이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우다.
담보권을 실행하거나 대물변제를 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순환출자 역시 6개월의 해소기간을 준다.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생기는 순환출자는 3년의 기간이 부여된다. 워크아웃이나 자율협약 절차를 시작한 부실징후기업에 대해 채권단이 의결해 총수일가의 재산출연 또는 기존 주주인 계열사의 유상증자 참여를 결정한 경우다.
기존 순환출자 구조에서 실시된 주주배정방식의 증자에서 다른 주주들의 실권을 통해 증자전 지분율을 초과하게 될 경우 1년의 유예기간을 받을 수 있다.
만일 순환출자 규제를 어길 경우 주식취득가액의 100분의 10 범위 내에서 과징금이 부과된다. 주식처분명령을 받은 날부터 순환출자를 형성하거나 강화한 주식 전부에 대한 의결권행사도 금지된다. 책임자에 대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도 부과할 수 있다.
◇ 환영하는 정부..마뜩찮은 재계
공정위는 개정안 통과후 "순환출자와 관련한 규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며 "대기업집단 규율체계의 큰 틀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는 반응을 내놨다. 또 폭넓은 예외가 허용되는 만큼 건전한 사업활동에 대한 제약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재계의 분위기는 다르다. 예외가 허용됐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반응이다. 신성장동력에 대한 투자 등에 제한을 받으면 결국 고용위축 등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기업들이 경영권에 대한 걱정없이 투자에 나섰고, 결국 이것이 성장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며 "순환출자 금지외에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규제법안은 부담일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해외에서도 순환출자 구조를 인정하고 있는 만큼 대기업에 대한 규제보다는 시장의 자율적 감시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상반기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제출된 후 이우성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기술경영대학원 교수의 보고서를 통해 "소유권에 비해 높은 의결권을 창출할 수 있는 여러 수단(차등 의결권, 상호출자 등)을 많은 국가에서 허용하고 있다"며 "특히 순환출자는 기업간 출자관계가 복잡한 유럽국가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의 AXA, 스웨덴의 SHB, 독일의 AMB Generali사 등이 상호출자와 순환출자로 얽혀있는 사례로 제시됐다. 보고서는 또 "차등의결권 등의 지배권 보호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순환출자 금지와 같은 출자규제 강화는 경영권 방어에 있어 해외자본과 비교할 때 역차별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