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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한화 빅딜]⑩'내쳐진 1등' 삼성맨의 비애

  • 2014.11.28(금) 15:35

언질없이 매각 결정 '망연자실'
삼성과 '거리두기' 상실감 키워

'삼성맨' A과장은 스스로를 행복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샐러리맨들에게는 전부라할 수 있는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1등 기업에 다니고 있다는 자부심 그 자체만으로도 일에 동기부여가 되고 에너지를 얻고 만족감을 느꼈다. 위대한 커리어를 원한다면 그 일 속에 시간을 담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엘리트 집단 삼성맨들이 술렁이고 있다. 삼성그룹이 석유화학과 방위산업 계열 4개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키로 하자 해당 계열사 직원들이 사실상 일손을 놓고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1등의 자긍심을 앗아가 버린데서 나온 그 감정은 '나는 여기서 뭐하고 있었지?'라는 섭섭함과 자괴감이다.

 

현실은 냉정했다. 자연스런 수순이기는 하지만 인수합병(M&A) 계약 바로 다음날 삼성그룹은 이들 계열사의 사내방송을 중단하는 등 선긋기에 나섰다. 그러자 이들 계열사 직원들은 이제 '비삼성맨'이라는 사실을 체감하는 모습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삼성의 지분 매각 결정에 해당하는 계열사는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삼성테크윈 합작자회사),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삼성종합화학의 합작 자회사) 4곳이다. '삼성맨'에서 '한화맨'로 신분이 바뀌는 직원 수는 총 7300여명. 삼성테크윈이 4700여명으로 가장 많고, 삼성토탈이 1500여명, 삼성탈레스 1000여명, 삼성종합화학은 300여명 규모다.

 

이 가운데 삼성테크윈은 기술직 근로자가 많고 직원 근속연수도 평균 14년 가량으로 긴 편에 속한다. 이러한 근속연수는 삼성 계열사 가운데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국내 500대 기업 가운데에서도 손꼽힐 정도다. 이렇다보니 이번 삼성의 매각 결정으로 가장 허탈해하는 곳 중 하나도 삼성테크윈이다.

 

삼성테크윈 직원들에 따르면 회사가 한화로 넘어간다는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 25일 늦은밤 나온 보도를 통해서다.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에 있는 삼성테크윈 연구개발(R&D)센터 직원들은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일손을 놓은 채 삼삼오오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직원들은 1등 기업으로서 가졌던 자긍심이 훼손된 것에 대해 상실감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삼성'이라는 간판이 떨어져 나가면서 이른바 '삼성 프리미엄'이 사라지면 외부 업체와 협상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 단행될 임금 및 복리후생 조정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재계 1위 삼성에서 받는 처우가 10위 한화보다 더 좋아질 일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일단 이번 지분 매각에서 삼성과 한화가 인력을 100% 고용승계하는 것에 합의했기 때문에 삼성테크윈 역시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단행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직원들의 상심을 키운 것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삼성과의 '거리두기' 조치다. 삼성테크윈은 지난 27일부터 삼성그룹 사내 방송을 틀지 않고 있다. 삼성은 각 계열사 사무실에 하루에 두차례씩 사내 방송을 내보낸다. 오전 8시와 오후 1시에 각각 방영하는데 매각 결정 이후 불과 하루만에 사내 방송이 방영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삼성테크윈측은 "매각 결정으로 굳이 방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삼성테크윈 직원은 관계사인 삼성전자 사업장 출입 과정이 달라진 일도 일어났다. 직원들에 따르면 매각 발표가 났던 지난 26일 삼성전자 사업장을 평소와 마찬가지로 삼성테크윈 직원 카드로 통과하려고 했으나 허용이 안된 일이 벌어졌다. 결국 안내데스크에서 외부 방문자 카드를 발급 받은 후에야 출입이 가능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삼성전자 임직원이 아닌 관계사나 협력사 임직원이 사업장에 출입하려면 방문 프로세서가 필요하다"라며 "다만 자주 방문하는 관계사 임직원은 기간을 정해놓고 편의를 봐주고 있었는데 마침 그 시기에 기간이 만료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특정 관계사에 대한 사업장 출입 정책이 바뀐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삼성테크원 직원들의 상실감은 반발로 표출되고 있기도 하다. 삼성테크윈 직원들은 삼성그룹이 구성원들과 아무런 협의 없이 독단적으로 매각을 결정했다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기로 하고 삼성의 매각 결정에 항의하기로 결정했다. 판교 사업장에서는 지난 27일 대다수의 직원들이 강당에 모여 비대위 결성에 의지를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삼성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주요 방산업체를 정부와 제대로 의논하지도 않고 매각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방산 업계 국내 1위인 삼성테크윈이 다른 회사에 매각됐다는 점에서 무기를 납품받는 군은 물론 해외 협력업체로부터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직원들의 반발이 심해 인력들이 해외 업체로 이탈할 경우 군기밀 유출 등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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