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을 모르는 사람은 칼날 없는 칼이나 다름없다." (故 구인회 회장 어록中)
LG그룹은 오너 일가에게 자만심을 허락하지 않았다. 고(故) 구인회 창업주의 철학은 그의 증손자 때에도 적용됐다.
▲ 구광모 ㈜LG 상무가 승진명단에서 빠졌다. 그는 LG전자가 신설하는 B2B사업본부에서 사업책임자 역할을 맡는다. |
LG그룹 오너 일가이자 경영권 승계 1순위인 구광모(39) ㈜LG 상무가 30일 임원승진 명단에서 이름이 빠졌다.
"대장간에서는 하찮은 호미 한자루를 만드는데도 수없는 담금질로 단련을 한다"며 인내와 현장교육을 강조한 창업주의 철학에 비춰보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인사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LG그룹 안팎에선 구 상무가 전무로 승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심심찮게 나왔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39세,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이 32세에 각각 전무를 달았던 다른 그룹의 사례를 볼 때 전무로 승진시키더라도 어색하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LG그룹의 선택은 달랐다. 직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성과를 들고오라는 특명을 내렸다. LG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구 상무에게 LG전자가 신설하는 B2B사업본부 근무를 맡겼다.
구 상무는 공항·쇼핑몰·스포츠경기장 등 대형건물에 들어가는 디지털전광판(사이니지) 사업을 맡는다. 고객사의 요구를 듣고 내부에 전달하며 영업을 뛰는 일을 직접 챙겨야한다. 얼마전까지 권순황 부사장이 맡던 역할이다. 권 부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해 구 상무의 멘토 역할을 담당한다.
LG그룹에선 이 같은 경영수업이 특별한 게 아니다.
구 상무의 할아버지인 구자경 명예회장은 1950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 아버지에게 불려와 회사일을 맡았고 그 뒤 몇년간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숙직을 하는 고된 일상을 견뎠다. 구본무 회장 역시 1975년 입사해 20년만에 회장을 달았다. 구 회장의 나이 50세 때다.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 대리로 입사한 구 상무는 딱 절반만큼 온 셈이다.
LG그룹 관계자는 "빠른 승진보다는 충분한 경영 훈련 과정을 거치는 LG의 인사원칙과 전통에 따라 현장에서 사업책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전문경영인은 중용했다. 현재 LG그룹에는 권영수(LG유플러스)·박진수(LG화학)·조성진(LG전자)·차석용(LG생활건강)·한상범(LG디스플레이) 등 전문경영인 출신의 부회장 5명이 있는데, ㈜LG의 하현회 사장이 승진해 이번에 부회장 대열에 합류했다.
하 부회장은 2015년부터 ㈜LG 대표를 맡아 미래사업 육성, 경영관리 시스템 개선, 연구개발 강화 등의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LG전자 HE사업본부장에 있을 땐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올레드TV를 세계 최초로 출시, LG전자의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