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는 '손(孫)'이 많은 집안이다. 창업 1세대를 이은 2세대만 해도 47명에 달한다. 5대(代)까지 뻗어 내려간 범LG의 가계도를 A4용지 한 장에 그려 넣기는 어림도 없다. 형제간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을 법 하지만 적어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은 LG에 통하지 않는다.
유교 집안 LG는 가풍이 엄격하다. 아들만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고 장자(長子)만이 경영권을 대물림할 수 있다. 딸은 철저하게 배제한다. 며느리도 예외일 수 없다. '반(半)자식'이라는 사위들도 그룹 경영과는 무관하다. '사위가 그룹에서 맡을 일은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위계질서가 확고한 까닭에 일가들은 따랐다. 그렇다고 마냥 순응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방대한 일가 인맥을 이리저리 쪼개 섭섭지 않게 딴 살림을 내줬다. 재산배분을 둘러싸고 '집안싸움'이 벌어지는 게 예사지만 유독 LG에서 만큼은 섭섭함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밖으로 새나오는 법이 없었다.
한 집안이 경영해도 분란이 끊이지 않는 대그룹을 '구(具)-허(許)씨' 두 집안이 3대까지 공동 경영하고, LS·GS 등으로 분리하면서도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었다. 현대·롯데·두산·효성·금호 등이 보여줬던 '형제의 난'을 LG의 71년 사사(社史)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LG 기업 문화의 밑바탕에 깔린 유교적 가풍과 인화(人和) 정신. 이런 힘이 LG의 오늘을 있게 했다는 믿음은 일종의 신화처럼 굳었다.
LG가의 재산분할은 장자 승계를 원칙으로 한 후계구도와 깊게 맞물려 있다. 1969년 구인회 창업주 타계한 이후 장남 구자경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했고, 이어 1995년 장손인 고(故) 구본무 회장이 물려받았다. 즉, 구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LG 부회장을 놔두고 외아들 구광모 LG전자 상무를 '경영 대권' 계승자로 낙점한 것은 이런 원칙을 재확인 것에 다름 아니다.
구-허씨 가족경영이 활발했던 LG가 본격적으로 재산분할에 나섰던 시기는 구자경 명예회장이 구 회장에게 경영권을 이양한 무렵이다. 장남으로 자신의 후계구도를 확실히 못박고 재산분할의 첫걸음을 뗐던 것이다.
아들 4형제 중 둘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을 분가시킨 게 1995년이다. 막내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과 함께 였다. 현재 LG에 남아있는 3세 중 구본준 부회장이 유일한 것은 이 때문이다.
LG의 '3세 경영 시대'을 신호탄으로 2세대인 구 명예회장의 남동생들도 차례로 분가해 나갔다. 2000년 3월 셋째 구자두씨의 LG벤처투자(현 LB인베스트먼트)가 계열 분리됐다. 같은 해 9월에는 둘째 구자학씨가 아워홈을 가지고 형의 우산에서 벗어났다. 이어 2007년 12월에는 첫째동생 고(故) 구자승 전 반도상사(LG상사) 사장 일가 몫의 LG패션(현 LF)이 독립했다.
다만 일찌감치 LG에서 나와 직접 기업체를 차려 '마이웨이(My way)'를 가는 형제도 있는데 넷째 구자일 일양화학 회장이다. LG그룹 부회장을 지낸 뒤 1987년 3월 설립한 곳이 화학업체 일양안티몬(현 일양화학)이다.
막내 구자극씨의 경우도 LG상사 미주법인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2014년 대주주로 있던 예림인터내셔널을 통해 전자부품업체 이림테크(현 엑사이엔씨)를 인수, 독자적인 경영자의 길을 가고 있다.
▲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 구광모 LG전자 상무. |
창업주를 비롯한 '회(會)'자 항렬의 이른바 '인·철·정·태·평·두' 1세대 창업 형제들도 연쇄적으로 계열분리에 들어갔다. 창업주가 LG를 일구는 과정에서 함께 헌신했던 공신들이었다.
1999년 11월 창업회장의 첫재동생 고 구철회 LG 창업고문의 LG화재해상보험(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이 계열분리됐다. 구 고문의 장남 구자원 명예회장이 LIG그룹을 일으키는 데 모체가 됐던 계열사다.
2003년 11월에는 LG 창업 형제들 중 '태·평·두' 3형제가 LG에서 전선·도시가스 분야를 가지고 분가하면서 LS그룹이 태통했다. 고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 고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이 창업 주역이다.
2004년 7월에는 허씨 집안과 이별의 악수도 나눴다. GS는 허창수 회장의 조부 허만정 LG 공동창업주와 구인회 LG 창업주가 동업으로 1947년 1월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공동창업한 데 뿌리를 두고 있다. 57년 '동행'을 끝내고 정유·유통·홈쇼핑·건설부문 등을 가지고 LG에서 독립했다.
LG는 2012년 12월 19개사를 친족분리했다. LG그룹 계열사의 30%가 넘는 규모였다.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친족분리는 그다지 세간의 주목을 받지 않았다. LG에 편입돼 있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현 제도상 일찌감치 분리됐어야 할 회사들을 뒤늦게 떼어낸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긴 사사에도 불구하고 베일에 가려져 있던 낯선 기업들이어서 더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형제간에 돌림자를 쓰듯 하나같이 '성(星)'자를 사명에 담고 있는 고 구본무 회장의 외갓집 '오성(午星)'· '성철(星鐵)'·'코멧(COMET)' 등 이른바 '3성(星)' 그룹은 조용히 LG의 울타리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