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월, LG의 방계가 ‘희성’이 공식 출범했다. 독자적인 그룹 CI(기업통합이미지)를 만들었다. 영문약자인 ‘H’자와 ‘S’자를 태양과 세계를 상징하는 원속에 넣어 ‘세계 속의 희성’의 이념을 담았다. 6개 계열사 사명에는 모두 ‘희성’ 이름을 붙였다.
모태 희성금속을 비롯해 희성전선(국제전선). 희성촉매(한국엥겔하드), 희성전자(상농기업), 희성화학(원광), 희성정밀(진광정기) 등이 면면이다. 전력선 및 통신선, 금속가공·도금재, 자동차 촉매재 생산 등을 주력으로 했다. 매출 6000억원 규모의 중견그룹의 출범이었다.
야심은 컸다.
곧바로 세(勢)확장에 들어갔다. 1996년 4월 부산 중견 토목업체 삼보지질(현 삼보이엔씨(E&C))를 인수했다.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계열사는 11개사로 늘어났다.
1997년 외환위기 ‘국난(國難)’과 마주했지만 무사히 넘겼다. 삼보이엔씨의 경영 정상화가 더디기는 했지만 2006년 4월 법정관리를 졸업시켰다. 주력사 희성전선(현 가온전선)을 2003년 12월 LS에 매각했지만 이는 순전히 전선·도시가스를 주력으로 한 LS의 계열분리(2003년 11월)를 마무리 짓기 위한 것이었다.
희성은 출범후 20여년간 경영 위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초기 계열사들이 거의 온전히 유지되고 있는 이유다. 계열사 총자산은 4조2100억원(2017년 말 계열사 단순 합산)이다. 지난해 매출 5조4900억원에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2340억원, 4250억원에 달한다.
주력 중의 주력 희성전자는 TFT-LCD용 백라이트유닛(BLU), LCD 모듈(LCM), 터치 스크린 패널(TSP)을 주력 생산하는 전자부품 제조업체다. 여기에 자동차 배기가스 정화용 촉매 생산 업체 희성촉매, 2017년 시공능력평가 49위의 토목건설업체 삼보이엔씨, 전기접점·본딩 와이어 등을 생산하는 전기금속 업체 희성금속이 주력사로 꼽힌다.
이외 상대적으로 마이너 계열사인 희성정밀(전자·자동차 부품 제조), 희성피엠텍(폐촉매 회수정제), 희성소재(접합재료 제조), 희성화학(TFT-LCD BLU용 광학 시트), 희성폴리머(필름시트·코팅막재), 희성석유(차량연료 소매) 등을 합해 10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해외 계열사 11개사를 포함하면 21개사에 이른다
희성은 원래 구광모 LG 회장의 생부 구본능(69) 회장과 막내숙부 구본식(60) 부회장이 희성전자·희성금속 지분을 공동 소유하고, 이를 핵심축으로 희성촉매·삼보이엔씨 등 다른 6개 계열사로 연결되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이외 희성정밀 또한 지분을 나눠 소유했다.
‘빅딜’이다.
희성 출범 21년이 지난 2017년 9월의 일이다. 우선 희성전자는 최대주주로서 소유 중 건설 계열사 삼보이엔씨 지분 93.5%(3097만9680주)를 각각 구본식 부회장과 구 부회장의 1남2녀 중 외아들 구웅모(29)씨에게 각각 45.3%, 48.2% 나눠 매각했다.
무자본 거래였다. 당초 삼보이엔씨 지분 93.5%에 매겨진 주식가치는 총 4820억원. 희성전자는 매각 대가로 구본식 부회장의 희성전자 지분 29.4% 중 12.7%와 구웅모씨의 13.5% 도합 26.2%(585만2953주)를 자기주식으로 인수했다. 4820억원 만큼 지분 맞교환이 이뤄진 것에 다름 아니다.
희성전자는 또 희성촉매 지분을 13%에서 38%로 끌어올렸다. 희성촉매는 1983년 4월LG와 미국 엥겔하드 합작으로 설립된 법인으로 지분 50%가 희성 소유인데, 희성금속의 보유지분 14%와 기타주주 11% 합계 25%(40만5990주)를 총 1450억원을 주고 사들였다.
이와 맞물려 삼보이엔씨는 희성금속과 희성정밀을 계열 편입했다. 희성금속은 1974년 5월 LG와 일본 다나까귀금속공업 55대 45 합작법인인데, 삼보이엔씨가 지분 33.0%(20만2477주)를 776억원에 인수, 다나까귀금속공업(45%)에 이어 2대주주로 올라선 것이다.
당시 지분을 매각한 주주들을 보면 구본능 회장 28.0%, 구광모 회장 3.0%다. 이외에 구본능 회장의 누나 구훤미(71)씨 1.5%, 구훤미씨의 장녀이자 이해욱(50) 대림산업 부회장의 부인 김선혜(47)씨 0.5%가 포함됐다.
삼보이엔씨는 또한 희성정밀 1대주주 구본능 회장의 소유지분 43.3%와 3대주주 희성전자의 17.9% 등 총 61.2%(14만5760주)를 인수, 최대주주에 올라섰다. 인수금액은 948억원이다.
‘빅딜’을 계기로 현재 희성은 구본능 회장이 1대주주(42.1%)로 있는 희성전자를 정점으로 희성촉매·희성폴리머·희성화학→희성피엠텍으로 연결되는 희성전자 계열과 구본식 부회장 일가가 97.1%를 가진 삼보이엔씨를 축으로 희성금속·희성정밀→희성소재로 이어지는 삼보이엔씨 계열로 쪼개졌다.
1년 전(前) 연쇄적으로 진행된 사실상의 계열분리다. 구본능 회장이 전자, 구본식 부회장이 건설 부문을 나눠 가졌다. 구본준(67) ㈜LG 부회장의 최근 떠오르고 있는 ‘희성’을 매개로 한 분가설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