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카더라’ 뿐이다. 오너 집안의 ‘이너 서클’ 안에 들어있지 않은 한 ‘썰(說)’ 이상의 증거들이 부족하고, 판단의 근거가 빈약한 탓이다. 결국 속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가 어려운 이상, 현 단계에서는 제법 설득력을 갖춘 시나리오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LG의 ‘4세 체제’ 출범과 ‘2인자’ 구본준(67) 부회장의 경영일선 퇴진으로 계열분리 시나리오에 대한 관심이 ‘핫(hot)’한 요즘, ‘희성’ 연계설에 시선이 꽂히는 이유다. 이는 ‘뜬금없이 방계가(家) 희성이 왜 등장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출발한다.
뜬금없긴 한데…
우선 희성의 지배주주 구본능(69) 회장의 역할론에서 배경을 찾을 수 있다. 구 회장은 구광모(40) 신임 LG 회장의 생부다. 1996년 사별한 고 강영혜씨와 슬하의 유일한 혈육이다. 이후 재혼한 뒤 딸 하나를 두고 있다.
구 회장은 2004년 12월 외아들 구광모 회장을 맏형 고(故) 구본무 회장(1945~2018)의 양자로 입적시켰다. 오로지 LG의 ‘장자 승계’ 후계 원칙을 이어가기 위한 것이다. 이후로도 후계 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형 못지 않게 공을 들였다.
대표적인 게 ㈜LG지분 증여다. 2014년 12월 ㈜LG 소유지분 5.13% 중 1.1%(190만주)를 증여해줬다. 현재 구광모 회장의 ㈜LG 지분 6.2%의 거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대주주인 구씨 일가 중 3대주주였던 구본능 회장이 지금은 3.5%를 가진 6대주주로 머물게 된 결정적 계기다.
여기에 구광모 회장이 희성 출범 초기부터 희성전자, 희성금속, 희성전선(현 가온전선) 등 주요 계열사들의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려놓고 얼추 800억원이 넘는 승계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생부의 숨은 노고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40세의 어린 나이에 재계 4위 LG의 ‘경영 대권’을 거머쥔 친자가 안정궤도에 오를 때까지 음으로양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현재 4290억원어치의 ㈜LG지분 3.5%를 물론 희성전자 지분 42.1% 등이 이를 위해 쓰일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더 나아가 작년 9월 ‘빅딜’을 통해 희성을 전자와 건설로 쪼갠 것이 아랫동생 구본준 부회장에게 전자 부문을 넘겨줘 분가를 원만히 매듭짓기 위한 수순으로 넘겨짚게 되는 것이다.
시기적으로도 공교롭다. 지난해 초 고(故) 구본무 회장에게 건강 이상 징후가 발견되며 LG에 ‘1급 리스크’가 발생한지 몇 개월 만에 희성의 계열 재편이 이뤄졌다. 물론 본가에서 나온지 20여년이 지났으니 대물림을 위해서라도 형제가 나눠 가질 때가 되긴 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일 수 있다는 의미다.
아울러 구본준 부회장의 분가 시나리오 중 하나로 ‘희성’이 엮이는 이유로 희성의 현 경영 및 사업구조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구본능 회장의 희성 전자부문의 대주주로 있기는 하지만 경영 후선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구본능 회장은 경남중 시절 야구선수로도 활동했던 야구 매니아로 잘 알려져 있다. 2011년 8월 부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를 맡은 뒤로는 뒤로는 총재 역할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희성의 경영은 막내동생 구본식 부회장과 전문경영인들의 몫이었다.
▲ 구본준 LG 부회장 |
딱이다.
이런 와중에 구 부회장이 희성 전자 부문을 맡는다면 말이다. 1999년 10월 LG전자와 미국 필립스전자의 합작으로 출범한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의 대표를 맡아 7년간 이끈 구 부회장은 LG디스플레이를 2003년 세계 TFT-LCD 세계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게 한 주역이다.
희성의 주력사 희성전자는 특히 LG디스플레이와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TFT-LCD용 백라이트유닛(BLU), LCD 모듈(LCM), 터치 스트린 패널(TSP)을 주력으로 한 희성전자는 LCD(액정표시장치) 패널의 광원역할을 하는 BLU을 LG디스플레이에 공급하는 긴밀한 사업관계를 통해 폭발 성장해왔다.
1996년 1월 희성 출범 때만 해도 희성전자의 매출(2003년 이후 연결기준)은 658억원(1995년) 정도다. 2001년(1250억원) 1000억원, 2005년(1조1000억원) 1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2012년에는 4조400억원으로 치솟았다. 2012년 당시 TFT-LCD용 BLU 수익은 3조3500억원(82.8%). 이 중 LG디스플레이에 대한 매출이 2조350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58.3%를 차지했다.
희성전자는 출범 이후 2017년까지 22년간 단 한 번도 영업적자를 낸 적이 없다. 2012년까지 10년간 영업이익으로 한 해 평균 1080억원을 벌어들였다. 2004년 영업이익률이 15.1%까지 치솟고, 2009년에는 1460억원까지 뛴 적이 있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신통치 않다. LG디스플레이가 패널 사업 전략을 LCD에서 BLU를 쓰지 않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로 바꾸기 시작하면서 매출이나 수익이 뒷걸음질 치고 있다. 2017년 매출은 2조160억원, 영업이익은 297억원에 머물렀다.
따라서 향후 구본준 부회장이 LG에서 독립해 독자적인 경영자의 길을 걷는 데 있어 희성전자 계열은 커리어상으로는 안성맞춤이다. 구 부회장이 LG에서 계열 분리하는 부문과 합치든 전자부문만 인수하든 전자부품 그룹으로 재편되고, 건설 부문은 구본식 부회장이 독자경영하는 밑그림이 그려진다.
인수가격도 얼추 들어맞는다. 희성전자가 구본식 부회장(12.7%)·구웅모씨(13.5%) 소유의 희성전자 지분 26.2%(585만2953주) 자기주식으로 사들일 당시 인수금액이 4820억원, 주당 8만2300원이다.
만일 구본준 부회장이 이 가격으로 현재 희성전자 1대주주인 구본능 회장의 소유지분 42.1%(937만9200주)를 인수한다고 가정하면 7720억원이다. 구본준 부회장이 소유한 9600억원 어치의 ㈜LG 지분 7.72%로 충분하다.
돈줄도 있다.
게다가 희성촉매라는 계열사를 갖고 갈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희성 출범 당시 희성촉매의 매출(2005년 이후 연결기준)은 606억원(1995년) 정도다. 1999년(1690억원) 1000억원, 2005년 5000억원, 2011년(1조30000억원) 1조원을 돌파하는 가파른 성장 추세를 보여줬다. 2017년에도 1조2700억원에 달한다.
영업이익 또한 흑자를 놓친 적이 없다. 매출 1조원을 넘어선 2011년 이후 7년간 적게는 462억원, 많게는 983억원에 달했다. 한 해 평균 734억원이다. 무엇보다 오래 전부터 현대·기아차를 핵심 고객으로 둔 덕분이다. 작년만 해도 현대·기아차 매출 비중이 전체의 51%를 차지한다.
워낙 돈벌이가 좋다보니 2011년 81억원을 시작으로 배당금을 폭발적으로 증액하고 있는 모습이다. 게다가 2013년을 제외하고는 빠짐없이 거액의 중간배당까지 챙겨주고 있다. 2017년에는 중간 184억원, 결산 213억원 등 총 397억원의 사상 최대 배당금을 뿌렸다.
현재 희성촉매는 희성전자가 38.0%의 지분을 소유중이다. 다음으로 기타주주가 12.0%다. 이외 50%가 합작사인 미국 엥겔하드 소유다.
갈 데 까지 간다.
한 번 꽂히니 희성 전자부문의 주력사 희성전자 최고경영자(CEO) 김종식(65) 대표까지 구본준 부회장과 연관짓는 데로까지 생각이 뻗친다. 작년 9월 계열 재편이 있고 난 뒤 올해 3월 말 희성전자의 신임 대표에 오른 인물이다.
김 대표는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다. 30년 이상을 디스플레이 업계에 몸담으며 개발, 생산, 구매, 품질 등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다. 영남대 전자공학과 출신으로 1978년 금성사 입사 이래 LG전자 모니터 생산총괄, 멕시코 생산법인장을 거쳐 LG디스들레이 최고생산책임자(CPO), 최고운영책임자(COO), LG전자 COO를 지냈다.
2010년 10월 LG상사에서 LG전자로 자리를 옮긴 구본준 부회장은 이듬해 12월 COO를 신설했다. LG전자 각 사업부 전체의 운영과 생산을 관리하는 조직이다. ‘전자 명가(名家)’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품질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라는 구본준 부회장의 의지가 담겼다. 초대 COO로 선임된 임원이 김종식 당시 LG디스플레이 COO다.
2012년 12월 조직개편 때는 COO 조직 확대를 통해 김종식 사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등 구본준 부회장의 ‘믿을맨’으로 통했다. 2015년 12월 구 부회장이 LG전자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 ㈜LG 신성장사업추진단장으로 옮길 당시 김종식 대표 역시 LG전자의 경영일선에 물러났다. 이후 공교롭게 자리잡은 곳이 희성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최근 차츰 오르내리는 구본준 부회장의 ‘희성’을 매개로 한 분가 시나리오 또한 말 그대로 ‘썰’이다. ‘이거 말 되네’일 뿐, 이 역시 ‘아니면 말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