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의 결혼은 늘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단순히 재벌가의 사생활을 엿보는 것 보다는 남부러울 것 같지 않은 재벌가와 결합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한 집안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크다.
그런데 이 집안, 재벌가와 혼맥으로 엮인 뒤로 수십 년간 단 한 번도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없다. 이랬던 집안이 ‘한 울타리’ 생활을 하게 됐다. 베일을 한 꺼풀 걷어보면 사실상 ‘한 지붕 생활’을 해왔던 터라 얘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3일 업계에 따르면 KCC는 지난 5월1일자로 10개사를 계열사로 새로 편입했다. KCC, 코리아오토글라스(KAC), KCC건설 등 기존 7개사였던 계열사수는 단숨에 17개사로 확대됐다.
회사 설립이나 지분 인수 등 계열 확장에 의한 것이 아니다. 기존 방계가에서 경영하던 기업들이 KCC 지붕 아래로 들어왔다. 5월초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집단 지정 당시 정몽진 회장의 친족 소유 회사들을 대거 편입 조치한 데 따른 것이다.
㈜동주를 비롯해 동주상사, 동주피앤지, 상상, 대호포장, 세우실업, 티앤케이정보, 주령금속, 퍼시픽콘트롤즈, 실바톤어쿠스틱스 등이 새 계열사들의 면면이다. 정 회장의 외가와 처가 등이 망라돼 있다.
압권은 외갓집이다. 수적으로도 6개사로 가장 많고, 그간 일반인들에 오르내리는 법이 없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어서다.
정몽진 회장의 모친 조은주(83) 씨의 친정은 평범한 집안이다. 조부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친은 한국전쟁때 군인으로 참전해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정상영 KCC 명예회장을 만난 것은 이화여대에 합격한 후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현대건설 경리팀에서 근무할 때로 1959년 5월 백년가약을 맺었다. 당시에는 흔치 않은 연애결혼이었다.
유력 집안이 아닌 까닭에 정몽진 KCC 회장의 외가는 줄곧 세인들의 관심권 밖이었다. 조은주씨가 재벌가의 며느리가 된 뒤로는 바깥 활동은 삼간 채 조용히 남편 내조와 아들 3형제를 키우는 데 충실해왔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외갓집을 가려왔던 베일을 한 꺼풀 걷어 내보면 사돈인 KCC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업적 관계를 유지하며 견실한 중견기업을 일군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중심에는 조병두(78) 현 동주 회장이 있다. 조 회장이 조은주씨의 동생이다.
조병두 회장은 원래는 사돈집에 몸담았다.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후 현대건설에 입사, 현대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1962년의 일이다. 이후 KCC의 전신 옛 금강고려화학 경리부 과장, 현대차 재정부 차장을 거쳐 KCC 상무로 활동하는 등 20년 가까이 근무했다.
조 회장이 독자적인 사업가의 길을 시작한 것은 1980년 3월 동주판지, 지금의 ㈜동주를 창업하면서 부터다. 한창 사업가로서 자리를 잡은 뒤로는 동생 조병태(66) 현 ㈜동주 대표가 합류, 형제 경영을 해왔다.
㈜동주를 기반으로 조 회장 형제는 성공한 중견기업인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동주 외에도 현재 거느리고 있는 계열사만 세우실업, 상상, 동주피앤지, 대호포장, 동주상사 등 5개사나 된다.
하지만 형제의 성공 스토리는 사돈집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KCC와 사업적 긴밀함이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하게 엮여 있다. 주요 계열사들의 사업내용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동주는 동주판지로 설립된 뒤 동주제지를 거쳐 지금의 사명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산업용 골판지와 골판지 상자를 주로 생산한다. 충남 천안에 본사 및 공장을 두고 있다. 총자산은 241억원(2017년 말 기준)이다.
동주 계열 6개사는 거의 친족 경영 체제다. 이사진에 조병두·조병태 형제와 부인, 자녀들이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동주도 마찬가지다. 조병태 대표 외에 아들 조제형씨가 사내이사다. 부인 유제희씨는 감사를 맡고 있다.
소유는 형제간 분리가 이뤄진 상태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소재 학촌빌딩 임대사업을 하는 대호포장은 조병두 회장 집안 소유다. 또 다른 부동산 임대업체 동주상사도 마찬가지다.
이외 4개사는 동생 조 대표 일가 몫으로 분류된다. 모태기업인 ㈜동주 또한 원래는 조 회장이 최대주주였지만 작년 자신과 직계 가족들의 지분 매각(90%)을 계기로 조 대표 일가 소유가 됐다.
㈜동주의 최근 5년간 재무실적을 보면 2013~2016년 130억~150억원대 매출을 올린 뒤 작년에는 214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매년 10억원이 넘는 4년연속 흑자다. 작년에는 이익률 12%인 25억7000만원에 달했다.
㈜동주의 지난해 전체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KCC(102억원), KAC(3억4300만원) 등 KCC 계열사들이 올려줬다. 비단 작년에만 된 게 아니다. 2013년 모범납세 표창을 받을 당시 ㈜동주의 기업 내용을 ‘KCC에 대한 생산량 80%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곳’으로 소개하고 있다. KCC가 오래 전부터 ㈜동주의 최대 고객사였던 것이다. 또 작년 말 현재 운전자금 용도로 KCC로부터 4억원의 단기자금을 빌려 쓴 것으로 나와 있다.
동주와 함께 충남 천안에 위치한 또 다른 주력사 세우실업도 비슷하다. 총자산 249억원인 세우실업은 실란트 카트리지, 스페이서 등의 플라스틱 용기와 골판지 상자를 만드는 곳이다.
조병태 ㈜동주 대표가 대표를 겸직하고 있다. 조병두 회장은 사내이사다. 또 2명의 감사가 있는데, 조 대표 부인 외에 조 회장의 부인 김준희씨도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다만 지배구조는 조 대표 소유 계열로 분류된다.
세우실업은 작년에 17억2000만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매출은 175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KCC(64억7000만원), KAC(27억2000만원) 등 KCC 계열 비중이 절반이 넘는다.
조 대표 소유의 2개 핵심 계열사나 동주피앤지(자동차 배터리 플라스틱 케이스·총자산 127억원)에 비하면 외형은 보잘 것 없지만 상상의 경우도 KCC 계열과의 거래가 꽤 된다. 총자산 16억원가량의 상상은 포장용 용지를 만드는 곳이다. 작년 매출(10억6000만원) 중 KAC 매출이 9억6300만원일 정도로 KAC가 핵심 납품처다.
세우실업은 현재 KAC 지분 0.3%(5만3000주)를 가진 주주이기도 하다. 2015~2016년 유상증자와 장내매수를 통해 7억원가량을 들여 사모은 주식이다. 또 상상과 세우실업은 KCC건설 지분도 갖고 있다. 2014년부터 올해 3월까지 장내에서 각각 6억원, 4억원을 들여 사들인 0.3%(6만주), 0.2%(5만1000주)다.
‘한 핏줄’만이 가질 수 있는 끈끈함이 엿보인다. 음으로 양으로 긴밀한 사업적 관계를 유지하며 기업을 키워 온 외삼촌들이 조카 정몽진 회장과 한 지붕 생활을 하게 된 배경이 이래저래 주목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