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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3.4세]⑳시작은 대한항공…끝은 아시아나항공

  • 2018.07.05(목) 18:03

에필로그- 재계3.4세 시즌1 시리즈를 마치며
양대 국적항공사가 처한 현실 '살아있는 역사'

[재계3·4세]시리즈를 시작하는 프롤로그 기사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가 자기 몫으로 주장할 수 있는 대한항공 자산은 1%에 불과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물론 1%가 아닌 10% 더 나아가 100%를 주장할 근거가 있더라도 물컵갑질이나 공사장갑질을 해서는 안 된다.
 
기내식 파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아시아나항공은 어떨까.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대한항공에 이은 제2민간정기항공사로 출범한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8조5000억원(2018년 1분기 말 기준)의 자산을 가진 큰 회사로 성장했다. 그러나 자산의 86%는 빌린돈(부채)이며 나머지 14%만 자기돈(자본)이다.

대한항공처럼 아시아나항공 자산의 대부분도 채권자가 우선 권리를 가진다. 회사나 주주들이 온전히 권리를 내세울 수 있는 14% 중에서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일가가 직접적인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몫은 아예 없다. 박 회장 일가의 아시아나항공 지분율은 0%이다.

박 회장 일가와 아시아나항공을 연결시켜주는 고리는 '케빈 베이컨 6단계 법칙' 만큼이나 여러 단계에 걸쳐있다. 박 회장 일가가 지분 55.5%를 가진 금호고속이 금호산업 지분 45.5%, 다시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 지분 33.4%를 가지고 있다. 금호고속과 금호산업을 거쳐야 겨우 박 회장 일가의 손 끝에 아시아나항공이 닿는다.

이러한 지분구조는 박 회장이 그룹재건이라는 명분으로 금호산업을 인수하기 위해 금호기업(훗날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금호터미널을 넘겨받아 합병한 후 금호홀딩스로 바꾼 뒤 다시 금호고속으로 이름을 바꾼 복잡한 역사를 가진 곳이다)을 중간에 만들면서 생겨났다.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4일 오후 서울 신문로 사옥에서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그룹의 부름에 곳간비우고 빚까지 진 아시아나항공

한동안 박삼구 회장을 표현하는 문장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그룹재건이란 단어가 기내식사태로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가 그룹재건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금호타이어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15년간 아시아나항공에 기내식을 납품해온 '엘에스지(LSG)스카이셰프'란 회사가 1600억원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투자를 거부하자 관계가 틀어졌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많은 오해가 있는 부분'이라고 항변했지만, 엘에스지 이후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파트너가 된 하이난항공그룹이 1600억원을 투자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룹재건은 애초 필요가 없었던 사안이다. 박 회장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연거푸 인수하는데 10조5000억원이란 천문학적인 돈을 끌어다 쓰지 않았다면 말이다.

해방 직후 광주에서 소규모 택시사업을 하다 사세를 키운 금호그룹은 창업주 박인천 회장이 작고한 이후 1980년대 중반부터 2세 형제경영에 돌입했다.

2세 형제간 나름대로 65세룰(65세가 되면 경영권을 다음 동생에게 물려준다는 약속)까지 정하고 장남과 2남에 이어 2002년 3남이 회장에 취임했다. 그가 박삼구 회장이다.
 
회사를 10대그룹 반열에 다시 올려놓고 싶었던 그는 아버지가 회사를 창업한 지 60년이 되던 2006년 대우건설, 2008년에는 대한통운을 연거푸 인수하며 기어코 10대그룹 총수가 됐다.

그러나 대우건설 인수직전 금호그룹 주력계열사가 가진 현금은 다 끌어 모아도 2조원도 되지 않았다.

박 회장은 10대그룹 총수란 명성을 얻었으나 계열사들은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올랐다. 빚잔치는 인수한 두 회사를 도로 뱉어야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을 신청하며 채권단으로 넘어갔고 10대그룹 금호는 산산조각 났다. 우애 좋던 형제경영도 파탄났다. 혹자들은 금호그룹 M&A 실패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글로벌금융위기 때문이라고 기억하지만 애초 2조원도 없는 회사가 온갖 빚을 끌어다 10조원을 써가며 낙관론에 의지한 것은 명백한 경영실패다. 

그룹 해체의 책임을 지고 잠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있던 박 회장은 65세를 넘겨 다시 등장, 그룹재건의 기치를 내걸고 금호산업을 인수했고 연거푸 금호타이어 인수까지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지금의 기내식사태의 씨앗도 발아했다.  

고객들에게 기내식 한 끼도 제대로 서비스하지 못하는 항공사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안게 된 아시아나항공은 할 말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안정적으로 돈을 벌던 아시아나항공은 연이은 박 회장의 ‘풀 베팅’ 기업인수에 차출되느라 한시라도 곳간을 채울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객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투자, 고생한 직원들을 다독여주기 위한 보상은 둘째 치고 곳간이 텅텅 비어버린 것도 모자라 빚을 지고 이자부담에 허덕였다.

곳간을 채울 기회도 있었다. 국제유가가 싸지고 해외여행 전성시대가 펼쳐지며 항공사로선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었던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 좋은 시절에도 아시아나항공은 여전히 과거부터 짊어져온 빚과 씨름하며 언제다시 부름을 받아 곳간을 비워줘야할 지 모르는 나날을 보냈다.

기내식을 새로 공급하는 회사가 1600억원이라는 돈을 투자한 시기도 그 무렵이다. 투자금은 아시아나항공이 아닌 박 회장 일가가 지분 55.5%를 보유한 회사로 입금됐다.

아시아나항공은 회사이름을 쓰는 대가로 매출의 일정부분을 꼬박꼬박 대주주에게 납부했으며, 정작 자신들은 운영자금을 위해 최근에도 이자를 물고 1000억원을 빌려야했다. 한때 그룹 M&A에 조단위 돈을 대던 항공사가 말이다.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5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남부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경영권 승계는 우리 경제의 미래

금호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이란 국적항공사를 운영하게 된 것은 박삼구 회장의 형 고(故) 박성용 회장때의 일이다. 형은 30년전 아시아나항공이 운항면허를 취득할 때 선친의 유지를 받들게 됐다고 감격스러워하면서도 “국민이 믿고 안락하게 이용할 수 있는 항공사를 만들려면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아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박삼구 회장은 아버지와 형에게 물려받은 그룹을 벼랑끝 유동성 위기로 몰고 갔고, 국민이 믿고 안락하게 이용해야할 항공사의 신뢰도에 결정적 오명을 남긴 장본인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박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줄 후계자로 생각하는 장남 박세창 사장은 아시아나항공에 조단위 자금을 요구했던 대한통운 인수팀의 일원(당시직책 이사)이었으며, 장녀 박세진씨는 기내식 사태가 터진 와중에 모든 과정을 건너뛰고 금호리조트 임원으로 승진했다. 

[재계3·4세]시리즈를 시작할 때 마지막 기사에서는 1980~90년대 우리나라 대기업의 흥망성쇠를 되돌아보겠노라 생각했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각종 지원 속에 경영권을 물려받은 승계자가 어떻게 수많은 이들의 밥줄이 달린 회사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했는지 떠올려보며 합리적 경영승계의 중요성을 생각해보기 위함이었다. 물론 보란 듯이 능력을 발휘하며 회사를 더 성장시킨 '제2의 창업주'도 많다.

하지만 역사는 비단 지나간 시간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짚어보고 기록하는 현재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역사다. 
시리즈 첫머리에서 언급한 대한항공은 물론 마지막으로 살펴본 아시아나항공의 히스토리가 그렇다.

금호의 박삼구 회장과 박세창 사장, 한진의 조양호 회장과 조원태 사장처럼 많은 대기업 창업주의 자녀(2세), 손자(3세), 증손자(4세)들은 본인이 자발적으로 내려놓지 않는 한 경영자의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다. 
 
[재계3·4세]시리즈에서는 17개 그룹의 경영권승계 과정과 자금출처, 경영능력을 분석해봤다. 그들은 내일 우리경제가 마주할 미래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다소 불편할지라도 꼼꼼하게 취재하고 사실적으로 기록하고자 노력했다. [시즌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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