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즈니스워치와 인터뷰 중인 가마타 야스유키 가마쿠라투자신탁 사장 |
[가마쿠라=이돈섭 박수익 기자] 폭염은 한국보다 일본에 먼저 상륙했다. 한낮 기온이 35도를 가뿐하게 넘어서던 7월 12일 일본 가마쿠라시를 찾았다.
도쿄에서 서남쪽으로 약 60km 떨어져있는 이 해안 소도시의 인구는 17만명. 신주쿠역에서 전철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차창 너머로 산과 들이 보이다가 어느샌가 주택가 풍경이 시작된다. 가마쿠라투자신탁의 가마타 야스유키(54) 사장은 인터뷰 일정을 조율할 때 길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었다.
"가마쿠라투자신탁 말씀이세요. 이 동네에서는 유명하죠. 그런데 이 택시는 회사 앞까지는 못들어갑니다. 워낙 골목이 좁아서요. 30미터 정도 걸으셔야 하실 겁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역 앞에서 잡은 택시는 주택가 골목을 누볐다. 자칫하면 백미러가 담벼락에 닿을 것 같은 좁은 골목이었다. 택시 기사가 도착지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높은 산이 올려다 보였고 매미 소리가 요란했다. 신문지로 리본을 만들어 머리에 묶은 한 여자 아이가 주택가 현관에 앉아 리코더를 불고 있었다. 금융회사라면 여의도 빌딩 숲을 떠올리는 기자에겐 도무지 금융회사가 있을 곳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방을 두리번 거리던 중 골목 구석에 나무로 만든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골목 깊숙이 오래된 일본 가옥 한 채도 보였다. 가마쿠라투자신탁 본사다.
때마침 손님을 배웅하던 가마타 사장이 취재진을 보고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인사했다. 다다미 거실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 가마타 사장과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사업을 통해 고용·기술 등의 분야에서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기업'에 투자한다는 원칙이 확고했다. 사회책임을 다하는 기업을 응원하면서도 ESG 평가점수 같은 계량화한 수치를 믿지 않고 투자자와 함께 직접 투자기업을 찾아 다닌다고 말했다.
스튜어드십코드에도 가입했지만 단순히 주주이익만을 위한 스튜어드십코드는 안된다고 말하고, 기업은 경영진과 주주뿐만 아니라 직원·직원의 가족·거래처·지역관계자 등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론에 가까운 투자철학을 가진 그는 놀랍게도 펀드를 운용해 돈을 벌고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나눠주고 있다.
- 가마쿠라투자신탁이 설립 10주년을 맞이한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 가마쿠라투자신탁이 하는 일은 자산운용사라는 틀을 빌려 일본의 좋은 기업들을 응원하는 것이다. 가마쿠라투자신탁이 운용하는 '유이(結い·맺음)2101'펀드는 지난해까지 연평균 9.5% 수익률을 냈다. 2016년부턴 회사도 흑자를 내고 있다. 우리 업무가 자리잡은 게 성과다.
- 2008년 가마쿠라투자신탁을 창업하기 전까지 20여년간 투자업계에 몸담았고, 블랙록 일본지사 부사장도 역임했다. 창업을 한 이유는
▲ 마음이 맞는 동료 세 명과 함께 반년간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거의 매주 술도 마시고 책도 읽었다. 2008년 금융위기도 영향을 미쳤다. 숫자로만 판단하는 업계에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해 온 금융이라는 일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었다.
- 투자 자금을 맡기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인가
▲ 고객의 99.9% 이상이 개인투자자다. 지난달 기준으로 모두 2만여명이다. 연령대는 70% 이상이 20~40대다. 전체 투자자의 40% 정도는 목돈을 투입하고 나머지는 매월 조금씩 적립형태로 투자한다. 평균을 내보면 개인당 200만엔(약 2100만원) 정도씩 투자하고 있다. 자기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회공헌과 NPO 활동에 관심을 갖고 우리를 찾아온 분들도 있다.
- 그런 투자자들이 많다는 건 일본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인가
▲ 젊은 세대가 많은 건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생활이 풍족해지면서 질적으로 나은 삶을 고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를 찾는 투자자는 돈을 불리되 잘 불리고 싶어할 뿐이다. 한국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꼽자면 일본엔 다양한 형태의 중소기업이 있는 정도다.
- 좋은 기업들만 골라 투자한다고 알고 있다. 좋은 기업이란
▲ 좋은 기업이란 본업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회사를 말한다. 현재 가마쿠라투자신탁이 좋은 기업로 선정해 투자하고 있는 곳은 모두 64개다. 58개가 상장회사이고 6개가 벤처기업이다.
- 이들 기업은 어떻게 고르나. 특별한 기준이 있나
▲ 크게 사람·사회·기술별로 구성한 35개 평가 항목이 있다. 고용을 잘 하고 있는지, 공생할 수 있는 사회 구축에 힘을 쏟고 있는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기술을 갖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경영이념·기술력·순환형 사회창조·지속적 혁신 가능성 등을 본다. 사내 구성원 간 논의를 통해 만들었다. 우리가 해결하고 싶은 사회 문제들을 리스트로 늘어놓고 평가 항목으로 재구성했다. 한 회사가 모든 항목을 만족하는 건 불가능하다. 특정 부문에서 우수한 회사를 찾아 투자한다.
- 평가항목 가운데 가마타 사장이 보기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 경영이념이다. 주변 환경이 좋든 나쁘든 기업이 우선시하는 가치가 명확해야 한다. 최고 경영진부터 말단 사원까지 회사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잘 알고 있다면 분식회계나 횡령같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기업이 이익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목적이 되면 안된다. 사외이사가 몇 명이어야 하고 보수는 얼마여야 하는 등의 문제는 결국 외형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 기업 평가 기준이 주관적인 것 같다. 개인투자자의 반응은
▲ 기업의 활동을 평가할 땐 객관적인 숫자와 이면에 담긴 의미를 함께 봐야 한다. 어떤 회사의 장애인 고용률이 4%라고 해보자. 4%는 객관적 수치다. 하지만 중증 장애인을 4% 고용한 것과 경증 장애인을 4% 고용한 것은 의미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숫자 뒤에 있는 실상을 주관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우리는 투자자들을 직접 만나 설명하고 펀드를 판매한다. 펀드 상품 판매는 시중은행과 증권회사 몫이기 때문에 운용사와 개인투자자가 만나긴 좀처럼 어렵다. 투자자들과 투자대상 기업의 사람들을 함께 만나기도 한다. 신뢰 관계가 쌓인다. 이건 철칙이다.
- ESG투자라든지 CSR활동 등에 적극적인 기업들은 당연히 포함되나
▲ 도시바의 예를 들어보자. 도시바의 ESG 투자 평가 결과는 우수한 편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 도시바는 회계 부정사건을 일으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본업이 사회 발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가를 봐야 한다. 가마쿠라투자신탁이 투자처를 선정할 때 반드시 현장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일본에서도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물컵갑질' 사건이 보도됐다. 기업의 소유-경영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바람직할까
▲ 중요한 것은 기업을 사유화하지 않는 것이다. 기업은 기업과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경영진과 주주, 직원, 직원 가족, 거래처, 지역 관계자까지 모두 포함한다. 이익을 분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유와 경영을 한 사람이 다 해도 이를 잘 준수한다면 문제될 건 없다고 본다. 우리가 투자하고 있는 기업에도 오너 경영 회사가 상당수 있다.
- 최근 한국에서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둘러싸고 찬반 논의가 뜨겁다. 스튜어드십코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 우리는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했다. 우리 입장에선 피투자처와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주가와 기업 가치를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기업과 대화에 나서는 건 아니다. 그렇게 접근한다면 회사 이익이 늘어 주가가 오르면 결국 주주는 주식을 팔고 나가지 않겠는가. 주주와 기업 간의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 우리는 경영자가 바뀌는 등 회사 전체가 바뀌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투자를 시작하면 되팔지 않는다. 좋은 기업을 응원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 가마쿠라투자신탁의 향후 과제는
▲ 당장은 투자자들이 늘고 있어 이들을 직접 만나는데 필요한 인력과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까지 지켜온 철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인재 육성이 중요하다. 가마쿠라투자신탁 펀드는 100년 유지를 목표로 한다. 지금까지는 창업자들을 중심으로 운영했지만 앞으로는 구성원들이 가마쿠라투자신탁을 이끌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