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판매가격을 담합해 할인율을 낮춰 판 국내 6개 주요 제강사가 총 1194억원의 과징금을 물게됐다. 애초 1조원대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예상이 있었지만 결과는 이보다 훨씬 적었다. 철강업계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반면 '솜방망이' 제재라는 지적도 나온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9일 현대제철·동국제강·한국철강·대한제강·와이케이(YK)스틸·환영철강 등 6개 제강사의 부당 공동행위를 적발해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렸다. 또 YK스틸을 제외한 5개사는 검찰에 고발했다.
업체별 과징금 부과 규모는 ▲현대제철 418억원 ▲동국제강 302억원 ▲한국철강 175억원 ▲환영철강 113억원 ▲YK스틸 113억원 ▲대한제강 73억원 순이다. YK스틸은 자진신고제(리니언시) 적용으로 검찰에 고발되지 않았고 추후 과징금 감면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6개사가 영업팀장급 회의체를 조직해 서울 마포구 인근 카페와 식당 등에서 30여 차례 모임을 하고 월별 할인폭을 합의한 사실을 확인했다. 6개사는 2015년 5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12차례 철근 가격 기준가 대비 업체별 할인 폭을 제한하는 식으로 가격을 올렸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이들 6대 제강사의 철근시장 점유율은 2016년 생산능력 기준 약 86.3%, 생산량 기준(수입 포함) 약 81.5%다. 시장에 압도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비중이다. 이들 회사는 철근시장의 60%가량을 차지하는 유통시장에서 최대 할인 폭을 1만~9만5000원으로 제한하자고 합의했다. 6개사가 이 기간 철근으로 올린 매출액은 약 8조5000억원 수준으로 파악됐다.
애초 공정위 사무처는 제강업체들이 2011년 건설사들과 협의를 앞두고 기준가 선정 합의 때부터 담합을 시작했다고 보고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하지만 공정위 전원회의는 "혐의 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2015년이후 담합만 문제 삼았다. 2011년부터 담합이 적용될 경우 관련 매출이 수십조원으로 불어나 과징금 규모가 조 단위를 넘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아울러 철근값을 두고 철강업계와 건설업계가 분기마다 가격 협상을 한 것을 두고도 담합 혐의로 다룰 계획이었으나 이 부분 역시 공급과 수요 양 측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정상 거래로 봤다. 철강-건설 업계 협상에 정부로서도 일정 부분 개입했고 최근 제강사들이 경영난을 겪는 것도 참작한 제재수위 조절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주식시장에서는 제강사들이 우려에 비해 적은 과징금을 받아 주가에도 영향이 미미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원주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2016년 말부터 21개월 간 이어진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며 "오히려 주가에 긍정적이며 펀더멘털(기초체력) 영향도 미미하다"고 밝혔다.
공정위의 철근가격 담합 조사는 지난 2016년 말부터 시작됐다. 철강업계는 담합 전 건설업계와의 철근가격 협상이 정부 중재로 시작됐다는 점에서 억울하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당시 철근 가격을 두고 철강-건설업계 사이 분쟁이 불거지자 정부는 양 측 공식 소통창구인 '철근가격협의체'를 마련했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철근은 건설자재 구매액의 20~25%를 차지하는 자재"라며 "이번 조치로 철근시장에서 가격경쟁이 활성화될 경우 건설비 인하 등 전·후방 연관 산업에도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