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자금조달 환경은 매우 대조적이다. 두 회사 모두 BBB급의 비우량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지만, 대한항공에 대한 자본시장의 태도는 우호적인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외면받고 있다.
대한항공은 넘쳐나는 국내외 투자 수요를 바탕으로 원화에 이어 외화 공모채까지 발행하며 차입선 다변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은 공모채 시장에서 아예 자취를 감췄다. 대신 만기가 짧고 금리라 높은 사모채나 기업어음(CP) 발행 비중을 늘림으로써 조달 안정성이 악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KAL, 차입선 다변화...탄탄한 수요 기반
25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해 공모채(원화 및 외화)를 통해 총 1조 1872억원을 조달했다. 전체 조달자금중 공모채 비중만 51%에 달한다.
구성을 살펴보면 원화채로는 지난해 세 번의 회사채 발행을 통해 총 7100억원 어치를 조달했다.
외화채로는 지난해 2월 엔화채(1009억원)와 3월과 6월 달러채(3763억원)를 통해 모두 4772억원 가량을 확보했다. 이중 엔화채는 사무라이본드로, 대한항공은 그간 영구채(신종자본증권)나 유로본드 형태로 달러 채권을 찍은 적은 있었지만 사무라이본드를 발행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달러채에 이어 엔화채까지 발행함으로써 대한항공의 조달 수단은 더욱 다변화됐다는 평가다. 이는 대한항공 채권에 대한 투자 수요가 그만큼 탄탄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지난해 오너 리스크에 따른 사상 최대의 경영 위기 속에서도 회사채 증액 발행을 이어갔다. 오너 일가의 갑질 논란이 처음 불거진 4월, 대한항공은 12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사전청약)에 나섰는데 모집액의 4배가 넘는 5120억원의 투자 수요가 몰렸다. 이에 대한항공은 최종 발행 규모를 1200억원에서 2400억원으로 늘렸다.
검찰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를 상대로 고강도 수사를 벌였던 8월에도 대한항공은 넉넉한 수요를 확보했다. 당시 대한항공은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을 실시했는데 이 때도 5000억원이 넘는 투자금이 몰려 최종 발행 규모를 3000억원으로 증액 발행했다.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KCGI가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를 본격화 한 11월에도 대한항공은 1500억원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1600억원의 투자금을 모았다.
이같은 성과는 채무상환능력을 중시하는 채권 투자자들이 대한항공의 오너 이슈 보단 재무구조 개선에 초점을 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2016년까지만 해도 1000%를 넘어섰지만 지난해 말 699%까지 떨어졌다. 수익성 개선과 더불어 유상증자와 영구채 발행 등으로 자본금을 늘린 결과다.
IB(투자은행) 관계자는 "대한항공 채권에 대한 국내외 투자 기반은 비교적 탄탄한 편이지만, 2017년 이후 재무구조 개선세가 두드러지면서 투자심리를 더욱 자극했다"고 평가했다.
공모채를 통한 자금 조달이 원활함에 따라 대한항공은 이바지용 절감 효과도 보고 있다. 지난해 4월에 발행한 회사채는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를 차환하기 위해 발행한 것으로, 대한항공은 해당 차환을 통해 조달 금리를 종전 4.90%에서 4.05%로 낮췄다. 같은해 8월에 발행한 회사채로도 조달 금리를 종전 대비 0.17%포인트 낮췄다.
◇아시아나, 공모채 조달 건수 0건... 조달 안정성 우려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공모채 시장에서 사라졌다. 지난 2017년 1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한 게 마지막으로, 지난해 공모채를 통한 자금 조달은 전무하다.
이는 투자자들이 아시아나항공의 채권 투자를 기피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회사채 주관 업무를 맡을 증권사들도 미매각을 우려해 아시아나항공의 회사채를 꺼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시장에서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로는 재무 리스크가 꼽힌다.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은 투기 직전 단계인 BBB- 등급이다. 여기에 한단계라도 하향 조정될 경우 1조원에 달하는 자산유동화증권(ABS)을 조기 상환해야 하는 리스크까지 함께 물려 있다.
여기에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 인수 등 과거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재건하는 과정에 아시아나항공이 활용되며 회사의 기초체력이 약해졌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기내식 사업을 둘러싼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IB 관계자는 "IB 업계에서 아시아나항공 회사채는 안 팔리는 채권이라는 시각이 만연하다"며 "항공업 투자가 필요하다면 수익성이나 재무구조 측면에서 아시아나항공 보다 대한항공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공모채를 통한 자금 확보가 여의치 않다 보니 아시아나항공은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ABS나 금리가 높은 사모채와 CP의 발행 비중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의 자금 조달 현황을 보면 ABS 발행 비중이 전체 자금조달중 50%에 달했고 사모와 CP의 조달 비중이 각각 23%, 27%를 차지했다.
문제는 사모채와 CP의 경우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용이함은 있지만 만기가 짧고 금리가 높아 조달 안정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데 있다. 수익성 회복과 재무 개선세가 더딘 아시아나항공으로서는 부담 요인일 수밖에 없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30일 300억원 규모의 사모채를 발행했다. 발행 금리는 6.1%로, 고금리다. 조달한 자금은 같은 달 31일 만기 도래하는 48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차환하는 데 쓰였다. 차환된 회사채의 금리는 5.8%.
결과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은 공모를 사모로 차환함으로써 이자비용을 0.3% 포인트 더 올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또 앞으로도 이같은 추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