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마침내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됐다. 2003년 동일인에 올랐던 아버지 故 조양호 회장에 이어 16년 만의 대물림이다. 본격적인 '조원태의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그러나 아직까진 허울일 뿐이다. 그가 실질적으로 그룹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해선 험난한 과정들을 마주해야 한다. 특히 이번 동일인 지정 과정에서 감지된 총수 일가의 경영권 갈등은 조 회장의 자리를 두고두고 위태롭게 할 전망이다. 수천억원에 이를 상속세도 걱정거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5일 '대기업 집단 및 동일인(총수)' 지정을 발표하면서 조원태 회장을 한진그룹의 차기 동일인으로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한진그룹은 2003년 조양호 회장에서 2019년 조원태 회장으로 16년 만에 총수가 변경됐다.
공정위의 최종 발표에 따라 한진그룹 총수에 오른 조 회장의 위상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조 회장은 당장 내달 초 서울서 열리는 IATA(국제항공운송협회)의 의장을 맡으며 총수로서의 첫 데뷔전을 치를 예정이다.
그러나 그의 시대는 아직 미완이다. 우여곡절 끝에 '동일인'으로 지정은 됐지만, 어머니(이명희)-누나(조현아)-동생(조현민)과의 경영권 분쟁의 소지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경영권을 둘러싼 총수 일가의 갈등은 지난 9일 공정위에 총수 지정 신청 서류를 내는 과정에서 감지됐다.
공정위가 정한 서류 제출 마감 기한을 두번이나 넘긴 데다 제출한 서류에서 마저 총수 지정의 핵심인 '동일인 변경 신청서'는 제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번 공정위의 총수 지정은 한진 일가의 자발적 지정이 아닌 공정위의 직권으로 결정됐다.
뿐만 아니라 총수 일가는 이번 제출 서류에 지분 상속 계획도 적시하지 않았다. 조양호 회장의 한진칼 지분(17.84%)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계획이 빠져 있다는 얘기다. 앞선 총수 지정과 지분 승계와 관련해 가족 간의 불협화음이 있음이 드러난 대목이다.
만일 지분 상속과 관련해 조 전 회장의 유언장이 없다면 그가 가지고 있던 한진칼 지분은 민법 제 1009조(법적상속분)의 1.5 대 1대 1대 1 비율에 따라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5.94%, 삼남매는 각각 3.96%씩 가져가게 된다. 이명희 전 이사장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다.
조 회장 입장에선 최악의 경우 총수직에 있음에도 그룹의 실질적 지배권은 손에 쥐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어머니 이 전 이사장의 의중에 대해선 아직까지 전해진 바 없다.
게다가 재계 일각에선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이사회가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을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하지 않았다는 주장마저 흘러 나오는 실정이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을 공동 대표이사로만 선임했을 뿐 회장으로 선임한 사실이 없다는 것.
한진그룹은 이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한진그룹이 이번에 공정위에 제출한 자료에는 조 회장의 공식 직함이 '회장'이 아닌 '한진칼 대표이사'로 기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조원태 회장이 차기 총수로 지정되더라도 그룹 실권을 갖기 위해선 어머니의 지지가 절실하다"면서" 다만 어머니 입장에선 두 딸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경영권을 둘러싼 가족 간의 분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설령 조 회장에게 온전한 경영 승계가 이뤄진다고 해도 이번엔 수천억원에 이르는 상속세가 걱정이다. 조 전 회장의 한진칼 보유 지분가치가 3500억원으로, 상속세율 50%를 단순 적용할 경우 상속세는 1700억원. 여기에 지분 상속에 대한 할증 등이 더해지면 조 회장의 최종 예상 상속세는 약 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조 회장의 보유 현금이 어느 정도 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를 상속 받은 보유 지분으로 갈음할 경우 한진칼 2대주주인 KCGI의 경영권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 KCGI의 현재 한진칼 지분율은 14.98%로, 조 전 회장 지분 17.84% 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