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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목조목 직장인 인문학]'고독한 꼰대의 민낯은 슬퍼'

  • 2019.09.30(월) 14:00

지난 칼럼 [내 안에 꼰대가 산다]가 출고되던 날, 공교롭게도 영국 공영방송 BBC의 TV 채널 중 하나인 BBC Two가 '오늘의 단어'로 한국어인 '꼰대'를 선정하여 자세히 소개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영국의 누리꾼들도 많은 공감을 표시했다고 하니, 꼰대문화는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보편적 특성임이 분명한 듯 합니다.

그렇다면 평범한 직장인을 혐오의 대상인 꼰대로 만드는 인간의 속성은 무엇일까요? 꼰대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민낯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소우주라 불릴 만큼 복잡 다양한 인간을 단 하나의 속성이나 개념으로 분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만, 거의 모든 유형의 꼰대가 '나'를 중심에 놓고 '남'을 상대한다는 전제 하에 '나르시시즘(자기애)'의 관점에서 집중 분석해보겠습니다.

나르시시즘(Narcissism)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나르키소스(Narcissus)'라는 청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청년이었던 그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그 누구의 마음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짝사랑의 아픔을 겪게 되자 누군가가 그 고통만큼 나르키소스도 아프게 해달라 빌었고, 이 소원을 들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Nemesis)는 그에게 맑은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사랑에 빠지는 기괴한 형벌을 내렸습니다.

나르키소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반하여 입맞춤과 포옹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물속의 형상은 일그러지고 사라졌습니다. 물속의 사랑하는 존재가 자신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이라 여긴 그는 점차 비참한 심경에 사로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가만히 바라보는 방법 밖에 없다 생각하고는 샘에 비친 자신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굶어 죽고 말았습니다. 아름다운 청년 나르키소스가 죽은 자리에는 수선화가 피어났고 '자기 사랑'이라는 꽃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애틋한 사연의 '신화'가 '실화'가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마는, 남의 생각과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과거에 비친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직장마다 수선화처럼 피어났으니, 이름하여 '꼰대'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나마 나르키소스는 아름다운 청년이었으니 일말의 연민이라도 생겨나지만, 우리 시대 꼰대는 아름답지도 않으면서 자기 자신에 도취되어 있으니 연민은커녕 비웃음이나 조롱의 대상이 되는 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꼰대를 비웃거나 조롱하기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지점이 있습니다. 그 지독한 나르시시즘이 꼰대만의 특성이 아니라 거의 모든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울을 보며 자신의 외모를 평가할 때 '나의 외모는 평균 이하야!'와 '나의 외모는 평균 이상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요?(여러분도 지금 거울을 보며 평가해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실험 결과 무려 90%가 평균 이상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회사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나의 업무 능력은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며, 실제로 상대평가인 인사평가에서도 평균 이상의 등급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90% 수준이라고 합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을 평균 이상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인간의 이런 성향을 제대로 파악한 소크라테스가 '네 주제를 알라'고 충고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런 착각 속에서 살고 있을까요?

진화학적 관점에서만 보면 긍정적 착각은 매우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뇌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기억의 저장인데, 스트레스 덜 받고 행복하게 오래 살려면 불쾌한 기억은 삭제하고 좋은 기억 위주로 저장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진화하다 보니 인간은 꾸중이나 잔소리보다 칭찬을 오래 기억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이 누적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왜곡하도록 진화했다고 합니다. 생물학적으로 관찰해보아도 누군가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쾌감을 만들어 내는 뇌 부위가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실제로 칭찬이 인간의 뇌까지도 춤추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착각 본능은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 모두에 관여합니다. 비록 착각이라 해도 긍정적 자아상은 건전한 정신, 행복감, 사회적 성공 등에 기여하므로 나름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소위 듣보잡이었던 친구가 어느 순간 갑자기 공부에 미쳐 명문대에 진학했다거나, 평균 이하였던 사원이 미친 듯이 일에 몰두하여 단번에 우수 사원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왜곡하면서까지 최대한 긍정 이미지로 끌어올렸고, 그 결과 기적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부정하는 순간 중도에서 포기했을 테니까 말입니다.

반면에 부정적인 효과도 분명히 있습니다. 비루한 현실과 미화된 자아상의 괴리가 상당함에도 자신의 부정적 모습을 발견하거나 자각하지 못할 경우 공감 능력의 결핍과 자기 잘못에 대한 인정 능력 결핍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꼰대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으로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보다는 적반하장 식의 고성이나 폭력 등의 언행으로 상대를 지배함으로써 자존심을 세우려는 행동으로 표출됩니다. 과거에 자기가 저질렀던 부정한 행위는 로맨스로 미화하고, 현재 남이 하는 행위는 불륜으로 몰아 부치는 '내로남불'의 전형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이러한 성향은 '므두셀라 증후군'으로도 설명 가능합니다. 므두셀라는 노아의 방주로 유명한 노아의 할아버지인데, 성경에 의하면 무려 969살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장수한 그가 "옛날이 좋았지, 지금은 별로야!"라는 푸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여, 심리학에서는 과거를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그리워하는 경향을 '므두셀라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즉, 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만 남기며 과거를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심리로써 현실이 힘에 겨울 때 좋았던 과거로 회귀 또는 도피하고 싶어 하는 일종의 퇴행심리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이는 주로 나이 든 '늙꼰(늙은 꼰대)'에게서 나타나는 증후군으로써 미화된 과거를 근거로 주장하기 좋아하며, 과거의 기준으로 현재를 재단하고 평가하려고만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혹시 내가 왕년 타령하는 꼰대, 해 봐서 다 안다는 꼰대, 어리다고 무시하는 꼰대, 젊은 세대나 여성을 비하하는 꼰대, 분노조절장애 꼰대 등으로 불린다면 '무드셀라 증후군'을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이쯤에서 다시 그리스 신화 나르키소스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의 생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불행하고 불쌍합니다. 남의 사랑을 받아들이지도 남을 사랑하지도 못하는 존재였고, 심지어 샘에 비친 자기 자신의 얼굴을 자각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하는 존재였으니까요. '남'과 '우리'는 고사하고 '나'라는 존재까지 인지하지 못했으니 그 보다 더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꼰대는 나르키소스와 다를까요?

얼핏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 꼰대는 왜곡된 과거에 얽매여 현재 자기 자신의 얼굴도 모르는 존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르키소스처럼 한 때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겠지만 지금은 조롱과 비난과 저주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합니다. 샘에 비친 내 얼굴은 입맞춤도, 포옹도, 만질 수 조차 없는 미화된 자아임에도 그것만 바라보며 괴로워하는 그는 꼰대의 탈을 쓴 현실판 나르키소스가 아닐까요?

직장에서 연차가 늘어날수록 늙었다는 이유만으로도 꼰대라는 말을 듣기 십상입니다. 그게 억울해서 '나는 꼰대가 아니다'라고 외치면 외칠수록 늪에 빠진 것처럼 꼰대 프레임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꼰대 프레임에서 벗어나려거든 일단 왜곡되지 않은 나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진짜 나를 찾으면 생각과 말이 달라집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싸가지 없어"라는 부정보다는 "나 젊을 때와 비교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참 대견해"라는 긍정부터 하게 됩니다. 그리고 과거의 기준이 아닌 요즘 사람들의 기준에 맞추는 방법도 찾아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멋지게 늙어가려는 노력을 함에도 꼰대라고 부르는 젊은이가 있다면, 그 역시 나와 같은 '젊꼰(젊은 꼰대)'이라 생각하고 혀를 차주면 됩니다. 꼰대는 나이 여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갖고 있는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세상에는 나이든 꼰대만 있는 게 아닙니다. 군대 다녀온 복학생이 후배들에게 얼차려를 시킨다든지, 회사의 전통이랍시고 젊은 선배가 후배들에게 가혹 행위나 폭력을 행사한다든지 하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집니다. '젊꼰(젊은 꼰대)'은 '늙꼰(늙은 꼰대)'에 비하여 경험이 부족할 수 밖에 없으므로 '내로남불' 이상의 꼰대짓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 칼럼에서는 나이 든 사람들을 '꼰대'라고 욕하면서 정작 젊은 사람들 본인들은 왜 꼰대짓을 하는지, 젊꼰(젊은꼰대)에 대해서도 낱낱이 분석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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