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호모사피엔스’의 정의는 인간이 항상 지혜로운 존재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불합리하거나 비이성적인 경우가 많으나 지혜로 해결할 능력을 소유한 존재라는 뜻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손실회피편향’이라는 인간의 비합리적 속성이 개인의 판단과 조직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인간의 ‘손실회피편향성’과 같은 비합리적 속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서 조직 내의 그릇된 문화로 자리잡게 되는지, 그런 심리를 이용한 기업들의 마케팅 기법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해 힘껏 주먹을 쥔 채 이 세상에 왔다가 죽을 때는 가지고 있던 것을 내려놓기 위해 쥐었던 주먹을 편 채 저 세상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와 잃지 않으려는 욕구는 강력한 본능이자 운명이라는 뜻입니다.
장난감 사달라고 울며불며 떼 쓰는 어린 아이의 소유 욕구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어렵사리 소유하게 된 장난감이 망가질까 두려워 친구에게 빌려주지 않는 고약한 마음 또한 충분히 이해됩니다. 이러한 장난감 소유욕은 말 그대로 장난에 불과합니다. 동생이 태어나면 독차지 하던 사랑을 빼앗길세라 관심을 유도하며 악동으로 돌변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그런 행동을 보며 유치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른이라고 하여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재화처럼 눈에 보이는 것에서부터 사랑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이르기까지 우리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집착적인 소유 욕구는 어린 시절보다 점점 더 강화됩니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끔찍한 범죄들이 어른들의 과도한 소유욕과 손실회피편향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면 아이들의 유치한 욕구는 오히려 귀엽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이러한 소유욕이 어떤 식으로 표출되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이 있었습니다. 행동경제학자 리처드탈러(Richard Thaler)와 대니얼카너먼(Daniel Kahneman)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유효과’에 대한 실험입니다.
한 집단의 학생들에게는 대학 로고가 새겨진 머그컵을 주고 다른 집단의 학생들에게는 현금을 주면서 각 집단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머그컵을 받은 집단에게는 그 컵을 얼마에 되팔고 싶어하는지, 현금을 받은 집단에게는 머그컵을 어느 정도 가격에 구매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어본 것입니다. 그 결과 머그컵을 불과 몇 분이라도 '소유'한 집단은 평균 5.25달러에 팔겠다 답했고, 현금을 받은 집단은 머그컵을 2.75달러에 사겠다고 했답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실험 참가 학생들에게 그들의 생각이 비합리적이라고 설명을 하면 이에 동의하지 않고 집요하게 반박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소유물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착각을 합리화하고 적극적으로 변호한다는 것입니다.
위 실험 결과를 보면 기업 조직 내의 꼰대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자리잡게 되는지 감이 잡힙니다.
예를 들어 ‘굉꼰(굉장한 꼰대)’이라 불리는 팀장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경험과 기억과 그에 기반한 생각에 대하여 상식 이상의 높은 가치를 부여할 것입니다. 누군가 그 생각이 다소 무리가 있고 비합리적이라며 반대한다면, 더욱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하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합리화하려 할 것입니다.
하물며 머그컵 실험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났는데 회사의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서는 어떤 꼰대 현상이 벌어질까요?
게다가 그는 팀장이라는 직책도 보유하고 있기에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소위 ‘완장의식’으로 대표되는 비뚤어진 권력의식을 가지고 있는 팀장이라면 ‘꼰대질’의 정도가 끔찍한 수준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윤흥길의 소설 ‘완장’을 꼭 읽어보시길!)
여기에서 ‘완장의식’이라 함은 그릇된 ‘소유’ 개념에서 비롯된 비뚤어진 의식을 말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팀장’은 팀을 잘 이끌어서 성과를 내라는 의미에서 회사가 부여한 직책입니다. 그럼에도 마치 자기가 개인적으로 획득한 권력이라고 착각하여 자신을 영웅시하고 타인을 하대하며 팀장이라는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선거철에는 권한을 부여하는 국민들에게 납작 엎드렸다가 당선되고 나면 금배지가 자기 것인 양 권력을 휘두르는 일부 정치인들의 위선적 행태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기업 내의 그릇된 조직문화는 나의 지식과 경험에 대한 과대평가로부터 만들어져, 공적으로 ‘부여’된 것을 ‘소유’로 착각하여 사유화함으로써 고착화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유효과’는 타인에게만 해를 끼치고 자신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이 ‘소유효과’에 빠지면 절대 최초 매입한 가격 이하로 매도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상황이 악화됨에도 악착같이 쥐고 있다가 결국 휴지조각이 되어서야 후회하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택시장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많이 발생합니다. 평생 모은 돈과 대출까지 보태서 어렵사리 5억원짜리 아파트 한 채를 분양 받았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아파트를 5억원 이상의 가치로 평가하게 되며, 행여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는 한이 있더라도 쉽사리 5억원 이하로 팔지 못합니다.
반면에 기업들은 마케팅이나 판촉활동에서 소유효과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기도 합니다. 많은 마케팅 서적에 소개된 김치냉장고 딤채의 체험마케팅은 소유효과를 이용한 대표적 사례로 손꼽힙니다.
김치냉장고 브랜드 딤채는 제품을 출시하면서 약 200명의 강남 부유층 주부 체험단을 모집하여 3개월간 무료로 제품을 사용해본 후 구매 여부를 결정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거의 모든 사람들이 구매했는데, 체험하면서 발생한 소유효과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기왕에 내 소유가 된 제품인데 반품하자니 아깝고 차라리 구매하는 게 이득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딤채의 마케팅 성공 이후 다양한 분야의 많은 브랜드들이 유사한 체험마케팅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자동차 영업이나 원룸 임대처럼 옵션 사항이 있는 경우에는 보다 섬세하게 심리를 이용합니다. 가격만 고려한다면 기본 모델을 먼저 설명하면서 풀 옵션 모델과의 가격 차이를 부각시키면 잘 팔릴 듯 합니다. 그러나 먼저 풀 옵션 모델의 장점을 상세하게 설명한 후 기본 모델을 설명하면 풀 옵션 상품의 비율이 훨씬 높아진다고 합니다. 풀 옵션을 미리 소개받은 구매자는 이미 자신 소유 상품의 속성으로 이해하고, 옵션을 제거하는 경우 그에 따른 손실감정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소유효과를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환불마케팅(후불제마케팅)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일단 사용해본 후 불만족 시 100% 환불해주겠다 혹은 후불로 결제하라는 것이지만, 일단 쉽게 고객의 품에 제품을 안겨 소유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입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을 빌어 최초 판매 시에는 공짜로 주는 것처럼 안겨주고는 소유효과라는 심리에 소비자를 옭아매어 꼼짝없이 지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인간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속성은 조직의 ‘꼰대님’을 만들기도 하고, 시장의 ‘호갱님’을 만들기도 합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는 속담도 있습니다만, 행여 우리는 쇼핑하면서 호갱 취급 받고 직장에 와서 꼰대 노릇 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반성해야겠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은 ‘호모사피엔스’라는 더 강력한 특징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매사에 완벽할 수 없고, 그러하기에 문제도 자주 일으키는 존재이지만, 언제든지 지혜를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더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나뿐만 아니라 타인과 구성원 모두가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하기에 얄팍한 속임수보다는 우직하게 정도를 걷는 것이 유리하고, 독선보다는 함께 소통하고 협업하는 것이 길게 보면 더 유리한 것 아닐까요?
다음 편에서는 조직 내의 소통과 협업을 방해하는 ‘내로남불’ 문화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