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잇따라 자사주 소각에 나서고 있다. 자사주 소각은 주당 가치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어 대표적인 주주친화정책으로 꼽힌다.
여기에 지난해 현대차그룹 대부분의 계열사가 고른 실적 성장세를 보이면서 배당도 크게 확대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도 전년과 비슷한 수준의 배당 계획을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이 주식 소각, 배당 확대 등 주주 친화 정책에 나서는 것은 자사 주식들의 가치가 저평가돼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 과정에서 올해 1000억원 넘는 배당금을 수령하게 됐다. 일각에선 정 회장이 이 실탄을 재원 삼아 향후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마중물로 사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사주 7000억원 소각
자사주 소각은 주주친화 정책의 주요방법이다. 주식 소각으로 전체 주식수가 감소하면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가 상승하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중 올해 가장 큰 규모로 자사주 소각에 나선 계열사는 현대차였다. 현대차는 지난 3일 3155억원의 자사 주식 소각을 완료했다. 현대차가 자사주 소각에 나선 건 2018년(약 1조원 규모) 이후 약 5년 만이다.
서강현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부사장)은 지난 3일 실적 컨퍼런스콜을 통해 "주주가치 증대와 신뢰도 향상을 위해 당사가 보유 중인 자사 중 발행주식수의 1%(보통주 213만6681주, 우선주 63만2707주)에 해당하는 주식을 소각하기로 결정했다"며 "올해도 투자자 및 시장과 커뮤니케이션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 역시 자사주 소각 계획을 내놨다. 기아는 올해를 포함 향후 5년간 매년 최대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고 절반을 소각할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기아는 향후 5년 내 최대 1조25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게 된다.
기아 관계자는 "올해는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하고 그 중 절반을 소각할 계획"이라며 "그 이후 4년은 최대 5000억원 매입이며 시장 상황에 따라 매입 규모나 소각 정도가 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는 그룹 내에서 가장 꾸준히 자사주를 소각해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스템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는 지난 10년 간 6번(2023년 제외)의 자사주를 소각해왔다. 총 소각 규모는 약 9700억원에 달한다. 현대모비스는 올해도 1500억원의 자사주를 매입한 뒤 전량 소각할 계획이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지난 2019년 3개년 중·장기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한 이후 총 2조6000억원 규모의 주주환원 정책을 충실하게 이행했다"며 "지난해부터는 연간 단위 시행으로 전환하고 3132억원 규모의 자기주식을 매입한 뒤 625억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했다"고 말했다.
배당도 확 키웠다
배당도 전년대비 크게 뛰었다. 배당이 증가한 가장 큰 요인은 실적 자체가 크게 개선된 영향이다.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현대차(매출 142조5000억원, 영업이익 9조8100억원)와 기아(매출 86조5000억원, 영업이익 7조2000억원)는 2년 연속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처음으로 연간 매출 50조원을 넘어섰다.
현대차는 지난해 기말 배당금을 주당 6000원으로 책정했다. 중간 배당(1000원)을 포함하면 연간 배당이 총 7000원에 달한다. 현대차 창사 이래 역대 최대 배당 규모다. 현대차는 올해 배당정책 역시 지난해와 같은 수준을 유지해나갈 계획이다.
기아도 배당 지급 규모를 지난해보다 더 키웠다. 이 회사는 지난해 기말 배당금을 주당 3500원으로 책정했다. 이는 전년대비 16.7% 증가한 수치로 총 배당 규모는 1조4032억원에 달한다.
배당 증가율로만 보면 현대오토에버가 가장 높았다. 현대오토에버의 지난해 결산 배당은 주당 1140원으로 전년동기대비 62.9% 증가했다. 이 역시 현대오토에버가 연간 최대 실적(매출 2조7545억원, 영업이익 1424억원)을 기록한 영향이다.
현대글로비스의 배당은 전년동기대비 50% 증가한 주당 5700원으로 그룹 내에서 두번째로 높은 배당 증가율을 기록했다. 현대글로비스는 향후 3개년(2022~2024년)간 주당 배당금을 전년대비 5~50%까지 상향해나갈 계획이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양호한 실적과 안정적인 사업 성과를 바탕으로 주주에 이익을 환원하고자 이에 상응하는 배당금을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현대차그룹이 자사주를 소각하고 배당 확대에 나서는 것은 자사 계열사들의 주식이 저평가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주우정 기아 재경본부장은 지난달 컨콜을 통해 "자동차 관련 주식이 전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특히 기아가 다른 주식에 비해 저평가된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자동차 사업을 영위 중인 현대차그룹의 주식이 저평가받고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현대차그룹이 배당 확대에 나서는 것을 두고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움직임이라는 시선도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그룹 내 전체적인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순환출자 고리의 핵심인 현대모비스 주식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율은 0.32%에 불과하다. 결국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의 지분 확보를 위해선 최대한 많은 현금을 확보해야 하는 셈이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정 회장은 지난해 결산 배당금으로 총 1033억원을 수령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년대비 31.3% 증가한 수치다. 다만 아직 현대위아, 이노션, 현대엔지니어링 등의 결산 배당금이 정해지지 않아 배당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