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 시장 성장에 따라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HBM(고대역폭메모리) 기술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HBM 시장 선두인 만큼, 앞선 기술 개발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가는 모양새다.
HBM3E 개발 성공, 샘플 공급 시작
SK하이닉스는 AI용 초고성능 D램 신제품인 'HBM3E' 개발에 성공했다고 21일 밝혔다. 현재 성능 검증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고객사인 엔비디아에 샘플을 공급하기 시작한 상태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고부가가치, 고성능 제품이다. 챗GPT와 같은 AI 분야 데이터 처리에 쓰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필수적이다.
이번에 SK하이닉스가 개발한 HBM3E는 5세대 제품으로 HBM3(4세대)의 확장 버전이다. 속도 측면에서 보면 HBM3E는 초당 최대 1.15TB(테라바이트) 이상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 이는 FHD(Full-HD)급 영화(5GB) 230편 이상 분량의 데이터를 1초 만에 처리하는 수준이다
특히 이번 HBM3E는 AI용 메모리의 필수 사양인 속도와 함께 발열 제어, 고객 사용 편의성 등도 개선된 것이 특징이다. 먼저 기존 대비 열 방출 성능이 10% 향상됐다. 발열 제어를 위해 새롭게 적용한 '어드밴스드 MR-MUF' 기술 덕이다.
이 기술은 반도체 칩을 쌓아 올린 뒤 칩과 칩 사이 회로를 보호하기 위해 액체 형태의 보호재를 공간 사이에 주입하고, 굳히는 공정이다. 칩을 하나씩 쌓을 때마다 필름형 소재를 깔아주는 기존 방식에 비해 공정이 효율적이고, 열 방출에도 효과적이다.
또 HBM3E는 과거 버전 제품과 호환되는 '하위 호환성'도 갖춰, 고객은 HBM3를 염두에 두고 구성한 시스템에서도 설계나 구조 변경 없이 신제품을 적용할 수 있다. 신제품에 특화한 설계 변경 등을 진행하지 않고 기존의 CPU(중앙처리장치)와 GPU를 그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HBM3를 독점적으로 양산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 성능이 구현된 확장 버전인 HBM3E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며 "세계 최대 HBM 공급 경험과 양산 성숙도를 토대로 내년 상반기부터 HBM3E 양산에 들어가 AI용 메모리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확고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심화하는 경쟁, 승자는?
HBM의 성장 가능성은 AI 시장과 비례한다. AI를 구동하기 위해서는 기존 D램에 비해 빠른 연산 속도의 반도체가 필요해서다. 이에 최근 AI 시장의 빠른 성장세에 힘입어 HBM 수요도 최신 버전으로 빠르게 옮겨갈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HBM2e 수요 비율은 작년 70%에서 올해 50%까지 줄어들고, 같은 기간 HBM3는 8%에서 39%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나아가 2024년에는 HBM3를 채택한 칩의 수가 증가하며 HBM3 수요가 HBM2e를 넘어설 전망이다.
트렌드포스는 "올해부터 내년은 AI 개발의 중추적인 해가 될 것이며 AI칩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HBM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라며 "SK하이닉스는 현재 엔비디아 서버 GPU의 주요 공급업체 역할을 하며 HBM3 생산을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를 주요 고객사로 둔 HBM 시장 선두 업체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작년 기준 SK하이닉스의 전 세계 HBM 시장 점유율은 50%였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의 HBM3E 신제품이 엔비디아의 슈퍼 GPU인 'GH200 그레이스 호퍼 슈퍼칩'에 탑재될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엔비디아는 HBM3E를 탑재한 GH200 그레이스 호퍼 슈퍼칩을 내년 2분기 양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작년 점유율 40%로 SK하이닉스를 바짝 추격 중인 삼성전자도 HBM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24기가 기반 HBM3P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또 추가 증설 투자를 통해 오는 2024년까지 HBM 생산능력(CAPA)을 올해 대비 최소 두 배 이상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전화회의)에서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올해 전년 대비 2배 수준인 10억Gb(기가비트) 중반 이상의 고객 수요를 이미 확보했고, 하반기 추가 수주에 대비해 공급 역량 확대를 추진 중"이라며 "미래 급증하는 수요에 맞춰 내년 생산능력은 올해 대비 최소 두 배 이상 확보 중이며 향후 수요 변화에 따라 추가 대응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올해 삼성전자의 역전도 기대하는 분위기다. 올해 AI 시장뿐 아니라 CSP(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에서의 HBM 니즈가 늘어나며, CSP를 주요 거래처로 둔 삼성전자가 수주를 크게 늘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트렌드포스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장점유율 격차는 올해 CSP의 삼성전자 수주 증가로 크게 좁혀질 전망"이라며 "두 회사는 2024년까지 HBM 시장에서 유사한 점유율을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