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연계증권(ELS) 발행 규제가 조만간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들을 유동성 위기로 몰아넣었던 대규모 추가 증거금 납부(마진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감독 당국이 대응 방안을 모색 중이다.
'발행액 총량제'가 유력한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리스크 관리 강화' 등도 거론되고 있다. 이번 규제 초점이 부실 전이 방지에 맞춰져 있는 만큼 강도 높은 규제가 예상된다.
◇발행액 총량제·리스크 관리 강화 저울질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ELS 발행 규제를 놓고 금융위원회(금융위)와 세부 사항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해당 사안에 대해 금융위와 논의 중에 있다"며 "아직 정확한 날짜를 얘기하기 어렵지만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되는데로 관련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이경식 금융감독원 자본시장감독국장은 '시스템 리스크 측면에서의 자본시장 위험요인'을 설명하며 ELS 발행 규제 관련 내용을 경고한 바 있다.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발행액 총량제가 검토되고 있다. 발행액 총량제는 증권사가 자기자본의 100% 한도 내에서만 발행하도록 총량에 제한을 두는 제도다.
쉽게 말해 자기자본 1조원을 갖고 있는 A증권사의 경우 이 이상을 초과해 ELS를 발행할 수 없게 된다.
올해 들어 지난 21일까지 ELS를 가장 많이 발행한 삼성증권의 경우 1분기 말 기준 자기자본이 약 4조7000억원, 발행 잔액은 3조6000억원 규모다. 즉,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삼성증권은 1조1000억원 이상의 ELS를 발행할 수 없다.
이 경우 대형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기존 발행량 감축이 불가피해 지난해 75조원 규모를 넘어서며 상당한 덩치를 자랑하고 있는 ELS 발행시장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자체 헤지(위험회피) 비중과 같은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아직 세부 사항이 나오지 않은 만큼 최종 조율을 통해 관리 요소, 범위, 수위 등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고강도 규제 원인은 '시스템 리스크'
금감원은 증권사들에 대한 고강도 규제 시행을 시사하면서 그 이유로 시스템 리스크를 꼽았다.
3월 폭락장 당시 발생한 마진콜 이슈로 인해 증권사들의 부실이 연관 시장으로 전이돼 전체적인 금융 시스템에 리스크가 확대됐다는 설명이다.
당시로 돌아가보자. 유로스톡스50지수는 국내 ELS 상품의 대표 기초자산이다. 지난해에만 해당 지수가 포함된 ELS 상품만 약 66조원 가까이 발행됐다.
그 뒤를 S&P500지수와 홍콩 H지수(HSCEI)가 이었다. 각각 61조원, 51조원의 발행 잔고를 기록했다.
문제는 이처럼 높은 비율을 자랑하던 지수들이 폭락하면서 발생했다. 유로스톡스50지수는 지난 3월16일 52주 최저가(2302.84)를 기록했다. 연 고점이었던 2월20일 3876.28포인트 보다 무려 40.6% 하락했다.
비슷한 시기 S&P500이 35.4%, 홍콩H지수는 27.9% 떨어지면서 마진콜 요청이 쇄도했다. 이에 한동안 국내 증권사들은 해외 거래소에 하루 최대 수조원에 달하는 증거금을 납부했다고 알려졌다.
보통 증권사들은 ELS를 판매한 금액을 모아 90% 가량을 안정성이 높은 국공채와 환매조건부채권(RP), 기업어음(CP) 등 우량 자산에 투자한다.
나머지 10%를 기초자산 가격변동에 대비한 위험 회피 목적으로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을 매입해 고객들에게 약속한 금리만큼의 이자 비용을 확보한다. 이를 자체 헤지라고 한다.
이때 선물·옵션 거래를 하려면 해당 시장을 관리, 운영하는 거래소에 증거금을 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증시가 폭락하면서 증권사들이 매입한 선물 상품의 가치가 떨어지자 하락분만큼의 증거금을 내라는 마진콜이 들어왔다.
이 경우 증권사들은 기존에 ELS 판매액으로 투자한 기업어음(CP) 등 단기채권을 시장에 팔아 필요 자금을 확보한다.
조 단위 증거금 마련을 위해 증권사들은 이를 대량으로 매도했고, 단기자금시장이 급격히 경색되는 현상이 관찰됐다.
문제는 외환시장에도 나타났다. 증거금 납입을 위해 원화를 대거 달러로 환전하면서 일시적인 달러 품귀현상까지 빚어지는 등 상당한 충격이 가해졌다.
이에 금융당국은 코로나19라는 변수로 인해 드러난 위기 상황이었지만 파생상품시장에서 발생한 부실이 단기자금시장, 외환시장에까지 번지는 연쇄 전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경식 금융감독원 자본시장감독국장은 "지난 3월 폭락장 이후 글로벌 증시 반등에 따라 마진콜이 줄면서 증권사들의 숨통이 트였다"며 "만약 추락하는 상황이 이어졌다면 증권사 부도로 이어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증권 업계에서는 나름대로 유동성 조달을 잘했다는 자평이 나오지만, 한국은행의 비은행권 직접대출, 글로벌 증시 상승 반전이 없었다면 수습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했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