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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외화 규제까지? 증권사의 달라진 존재감

  • 2020.06.18(목) 14:59

코로나 여파로 외환시장 교란…시스템 리스크 확인
'중요 금융사'로 인식…은행과 다른 맞춤형 규제필요

"코로나 19 사태로 증권사 민낯이 드러났다."

지난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하반기 금융정책 방향'을 이야기한 자리에서 나온 발언입니다. 지난 3월 코로나 여파로 증시가 급락한 와중에 증권사들이 외화 유동성 부족에 시달렸던 상황을 두고 한 얘기인데요.

은 위원장은 "증권사들이 단기로 자금을 조달해 장기로 운용해왔던 것이 평소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로 증시가 급락하고 과거와 달리 주가연계증권(ELS) 자체 헤지 등으로 만기 불일치가 일어났다"면서 과거와 달라진 상황을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3월 코로나 공포로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면서 증권사들은 ELS 관련 마진콜(Margin Call, 추가 증거금 납부 요구)이 발생했고 한국은행으로부터 부랴부랴 급전을 빌렸습니다.

증권사들은 최근 해외주가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ELS를 대규모로 발행해왔는데요. ELS를 운용할 자체적인 위험회피(헤지)를 위해 기초자산을 구성하는 지수의 선물 등 파생상품에 대해 매수 포지션을 취합니다.

그런데 글로벌 주요 지수들이 크게 떨어지자 헤지를 위해 투자한 상품 가격이 하락했고 해외 거래소에서 대규모 추가 증거금 요구가 빗발친 겁니다. ELS 자체헤지 금액이 큰 대형사는 3월 중 추가 증거금으로 1조원 이상을 지급해야 했다는 후문입니다.

증권사들은 마진콜에 응하기 위해 필요한 달러가 부족하자 단기로 운용하는 기업어음(CP)과 환매조건부채권(RP)을 내다팔았고 달러 매수 주문에 나서면서 CP 등 단기자금시장은 물론 달러-원 환율을 끌어올리며 외환시장에도 교란을 일으켰습니다.

일련의 사태 후 정부는 증권사를 대상으로 한 외화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 계획을 밝혔는데요. 조만간 세부적인 외화 유동성 규제 계획이 발표될 예정입니다.

지금도 증권사들에도 외화유동성비율 규제가 적용되고 있지만 잔존만기 3개월 이내 부채에 대한 잔존만기 3개월 이내 재산을 80% 유지하는 정도로 느슨합니다.

증권사들은 그간 ELS 발행을 늘리면서 ELS 자체헤지 비중을 키웠고 헤지를 위해서는 달러화로 증거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이처럼 파생결합증권 관련 부채나 마진콜 가능성 등 일종의 잠재부채가 외환임에도 운용자산 대부분이 원화로 구성돼 외환 미스매칭이 발생 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시장에서는 더 강화된 규제로 외화 유동성커버리지 비율(LCR) 적용이 언급되고 있는데요.

2017년부터 적용된 외화 LCR은 외화현금과 미국 국채 등 유동성이 높은 외화자산을 향후 1개월간 예상되는 외화 순유출액으로 나눈 값입니다. 금융위기 등으로 외화가 급속히 빠져나갈 때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지표인데 은행권에 적용합니다.

정확한 산식은 고유동성 외화자산에서 1개월내 외화순현금유출액을 나눠 계산하는데요. 고유동성 자산은 현금과 외화지급준비금, 고신용채권 등으로 구성되고 순현금유출은 자산과 부채 특성별로 차등반영해 현금유출액에서 현금유입액을 뺀 값을 말합니다. 이를 증권사들에게 적용한다면 외화자산과 부채를 더 쌓아야 하는 부담이 생기는 것이죠.

외화 LCR은 기존의 외화유동성 규제가 외화자산과 부채간 만기 불일치 관리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만기 관리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은행들이 외화유동성 규제 충족에도 유동성 부족을 겪는 문제점이 나타났는데요. LCR 도입을 통해 위기 상황에서 대응여력을 높인 것으로 평가됩니다.

당국이 은행권만 적용하던 엄격한 규제까지 검토 대상에 올려놓고 증권사의 외화 유동성에 대해 소위 '관리에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증권사의 존재감이 커졌음을 반증할 수 있습니다. 대형사들의 경우 달러-원 거래량 상위 기관에 오르내리고 있고, ELS 자체헷지뿐 아니라 해외투자 증가나 해외주식 투자 증가에 따른 외환시장 참여 수요도 큽니다.

실제로 최근 금융감독원은 자본시장 위험 분석 보고서에서 최근 대형 증권사가 시스템리스크에 영향을 줄 정도로 규모가 확대된 만큼 이들을 중요 금융회사(SIFI)로 인식하고 건전선 규제 강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SIFI는 Systemically Important Financial Institutions, 금융시장에서 대마불사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 만큼 비중이 큰 기관들로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를 지칭합니다.

금융안정위원회(FSB)와 바젤위원회는 2010년 자산과 거래규모, 위기 시 시장에 미치는 연관효과 등을 고려해 글로벌 SIFI와 국가별 SIFI 기준을 만들었고, SIFI에 대해서는 일반 금융사보다 높은 감독과 자본건전성 등이 부과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이 증권사 역시 SIFI로 인식한다고 밝힌 것입니다.

커진 영향력에 걸맞는 규제 환경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증권사로선 거부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은행과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모험자본 육성과 박자를 맞춰야 하는 증권사 업황을 고려한 맞춤형 규제를 적용하는 운용의 묘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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