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풀린 풍부한 유동성의 다음 행선지가 스팩시장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올해 공모시장에 남은 대어로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유일한 가운데 증시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비교적 접근이 용이하고 안정적인 투자처로 스팩이 거론되고 있다.
◇ 스팩 매력 = 안정성 + 접근성
14일 한국거래소의 전자공시시스템인 카인드(KIND)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이후 최근 5년 신규 상장한 스팩은 총 94개사로 이중 64개 회사가 합병에 성공했거나 진행 중에 있다. 범위를 넓혀 스팩이 도입된 201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89개사 주식시장에 이름을 올렸다.
스팩은 투자자들로부터 자금 모집해 주식시장에 상장한 후 3년 안에 피인수 기업을 찾아 합병하는 회사를 뜻한다. 1990년 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고, 현재는 유망 중소기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최근 들어 스팩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안정성과 접근성이 자리하고 있다. 스팩은 상장을 하고 나면 모집한 투자액 90%를 금융기관에 예치해 놓는데 합병이 성사되기 전까지 사용할 수 없다. 설령 딜이 불발되더라도 투자자들은 일정 수준의 이자와 함께 원금을 돌려받는다.
여기에 공모시장 대비 접근성이 용이한 점도 스팩 투자의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가령 이달 국내 주식시장에 화려하게 데뷔한 카카오게임즈의 경우 투자자들은 2000만원 가까이를 증거금으로 넣어야 겨우 1주 배정 받았다.
하지만 스팩의 경우 통상 공모가가 2000원 안팎 수준을 유지하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주식 물량도 상대적으로 많다. 이번 하반기 상장한 SK바이오팜과 카카오게임의 공모가는 각각 4만9000원, 2만4000원이었다. 투자원금과 이자가 보장되는 상황에서 유의미한 물량 확보까지 용이한 점이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송용주 대신증권 연구원은 "아래로는 막혀 있고, 위로는 열려 있는’ 스팩의 수익구조로 인해 원금을 잃을 위험도 거의 없을뿐더러 인수가 실패하더라도 은행 예금 수준의 이자도 취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유동성, 다음 행선지 '스팩시장'
이처럼 스팩 투자에 대한 매력이 재차 주목받으면서 시중에 풀려있는 풍부한 유동성이 스팩시장으로 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끝으로 올해 공모시장의 빅 이벤트가 마무리 되는 가운데 환불된 카카오게임즈의 청약 증거금 절반 이상이 대기자금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실제 증시에 풀린 유동성은 역대급이라 할만하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11일 기준 56조원 이상의 자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해 대기하고 있다. 투자자예탁금은 지난달 10일 사상 처음으로 50조원을 돌파한 이후 카카오게임즈의 청약 증거금이 환불 완료되면서 63조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렇게 모인 자금 대부분이 공모시장으로 향했다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점도 스팩시장으로 유입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요인이다.
연내 공모시장에 모습을 드러낼 대어는 세계적인 팬덤을 거느리고 있는 BTS의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유일하고, 바통을 이어받을 카카오뱅크는 내년이나 돼야 상장 절차에 대한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외 환경에 힘입어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스팩 시장이 활성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달까지 스팩을 통해 상장한 회사는 9개고 현재 13개사가 합병 심사 승인을 받았거나 청구서를 제출한 상태로 현재 주도주인 IT, 헬스케어 기업이 대다수 포진해 있다.
특히, 지난 3일 국전약품이 대신밸런스제6호스팩과 합병상장을 위해 제출한 예비심사청구에 대해 한국거래소로부터 최종 승인 결정을 받은 이후 대신밸런스제6호스팩 주가는 나흘 동안 65% 가까이 급등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기업들의 스팩 선호도 또한 시장에 활기를 가져다 줄 요소로 꼽힌다. 통상 기업들이 직상장을 하기 위해서는 심사준비 기간을 비롯해 공모 절차까지 최소 9개월 정도 걸리지만 스팩 합병의 경우 6개월로 약 3개월 가량을 앞당길 수 있다. 자금 조달이 시급한 기업들 입장에서는 스팩 상장을 더욱 알아볼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김수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카카오게임즈의 공모금액은 3860억원이었는데, 환불된 58조2000억원 중 절반 가량은 대기자금으로 남았다"며 "아마 올해 남은 빅 IPO(기업공개)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어 "다음 빅 IPO로 거론되고 있는 카카오뱅크나 크래프톤은 내년에 상장하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공백이 있다"며 "따라서 이 유동성은 스팩시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