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가 시장 침체로 된서리를 맞는 가운데 메리츠증권이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질주하는 모습이다. 업황을 둘러싼 우려를 딛고 3분기에 2000억원대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했다. 시장 예상치를 40%나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다. 어느새 올해 누적 순이익은 6500억원을 넘겼다.
깜짝 실적을 이끈 건 투자은행(IB)과 자산운용(트레이딩) 부문이었다. 해외채권 자금 회수가 마무리되며 금융수지 이익이 늘어났고, 환율 상승으로 평가이익도 껑충 뛰었다. 증시 침체와 더불어 부동산 시장이 급랭하면서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수익 둔화가 우려됐지만 예상과 달리 관련 수익은 견조함을 뽐냈다.
'어닝서프라이즈'…하이난항공 관련 투자금 회수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의 3분기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은 2175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13.8% 늘었고 전분기와 비교하면 37.3% 급증했다. 특히 시장 컨센서스(1520억원)를 무려 43% 웃도는 성과다.
이로써 메리츠증권은 19분기 연속 1000억원 이상 순이익 행진을 이어가면서 특유의 꾸준함을 과시했다. 그에 힘입어 올 들어 3분기까지의 누적 순이익도 6583억원으로 1년 전보다 11% 늘었다.
3분기 영업이익의 경우 247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 불어났다. 세전 이익은 2928억원으로 11.4% 증가했다.
3분기 말 기준 자기자본은 5조8402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2084억원 증가했다. 연 환산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5.7%를 기록했다.
부문별로 뜯어보면 금융수지 부문이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기록하며 호실적을 견인했다. 금융수지 순영업수익은 1043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73.3% 급증했다.
해외채권 처분에 따른 자금 인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김인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1분기에 일부 환수됐던 하이난항공 채권 관련 자금이 3분기 때마저 회수되면서 이익 개선에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메리츠증권은 하이난항공그룹이 글렌코어로부터 HGS 지분 51%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자금 조달 역할을 맡았는데, 당시 발행된 외화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둔 유동화증권에 대출 확약을 제공한 바있다. 2018년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가 발생해 상환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매각 계약을 체결하며 4년 만에 자금회수에 성공했다.
해외 대체투자 관련 딜이 클로징된 부분 역시 이자수익에 반영됐다.
트레이딩 관련 실적도 견조했다. 순영업수익은 1351억원으로 1년 전보다 4.5% 감소했으나 전분기와 비교하면 212.0% 증가했다. 환율 상승으로 외화 관련 평가이익이 증가한 영향이다.
메리츠증권 측은 리스크 관리를 실적 방어 비결로 꼽았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IB 부문의 철저한 리스크 관리를 위해 신규 딜에 대해 이전보다 보수적으로 접근하면서도 양호한 실적을 달성했다"면서 "트레이딩 부문에서는 시장변동성 확대에 대응해 최적화된 전략을 구사한 것이 뛰어난 수익을 거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투자 위축으로 위탁매매(브로커리지)와 자산관리 부문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46.8%, 20.0%씩 뒷걸음쳤다. 이 두 부문은 당초 기여도가 낮은 만큼 전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부동산PF 선방…채무보증 소폭 늘어
우려가 높았던 부동산PF 사업도 선방했다. 당초 시장은 연초부터 이어진 자금시장 경색과 부동산 시장 침체로 신규 부동산PF가 대폭 줄 것으로 내다봤다.
부동산PF 주선 수수료가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금융 수수료는 3분기 112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 감소했다.
부동산PF 관련 익스포저를 나타내는 채무보증 잔고는 약간 늘었다. 약정잔액은 5조24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 증가했지만 자기자본 대비 약정잔액 비율은 96%에서 93%로 3%포인트 낮아졌다.
재무건전성 지표도 개선 흐름을 보였다. 순자본비율(NCR)은 9월 말 기준 1516%로 전분기 대비 13%포인트 상승했으며, 유동성 비율은 134.2%로 전분기보다 9.2%포인트 높아졌다.
아울러 고정이하 자산비율은 1.15%로 직전분기 대비 2.13%포인트 줄었다. 하이난항공 관련 채권이 고정이하 여신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었는데 자금 회수가 완료됨에 따라 해당 비율이 대폭 낮아졌다.
증시 침체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메리츠증권은 리스크 관리를 더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신규 투자에 엄격한 심사기준을 적용하고 자금 수요를 예측해 선제적인 유동성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며 "시장 상황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리스크 관리 역량을 집중해 현재의 상황에 철저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