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13일 열린 공매도 토론회는 구체적인 제도 개선 대한 알맹이는 빠진 채 공매도 제도에 대한 각자의 불만과 해명에 급급한 시간이었다. 이 원장은 금융당국이 공매도 제도에 대한 여러 가지 걱정과 주장, 우려 등을 열심히 듣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토론회가 의미있었다고 자평했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공매도 이슈와 관련해 논의하는 '개인투자자와 함께 하는 열린 토론'을 주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이복현 원장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전석재 유튜브 채널 슈카월드 대표가 사회를 맡고, NH투자증권‧삼성자산운용‧신한투자증권과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 박순혁 작가, 학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토론 주제는 △상장지수펀드(ETF) 유동성 공급자(LP)의 공매도 허용 △신한투자증권이 불법 공매도 창구 의혹 △공매도 금지 이후 제도개선과 전산화시스템 구축이었다.
공매도 창구의혹 놓고 목소리 높아진 패널
토론자들이 가장 목소리를 높인 주제는 신한투자증권의 불법공매도 창구 의혹이었다.
본격 토론을 시작하기 전부터 일부 패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토론에 앞서 전석재 슈카월드 대표가 토론 주제를 설명하면서 신한투자증권을 'A사'라고 익명으로 언급하자 패널로 나온 박순혁 작가는 '왜 신한투자증권이라고 하지 않느냐'며 불만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10월 이동채 전 에코프로 회장 소유의 주식매도가 신한투자증권의 불법 공매도로 인한 것이란 의혹을 제기했다. 박순혁 작가는 "이동채 전 회장이 감옥에 가 있는 상태에서 신한투자증권에서 보유 주식이 매도됐다는 건 누가봐도 이상하다"며 "신원불상자가 운전면허증만으로 증권사 계좌를 만들어 그 많은 주식 중에서도 0.5%만 팔았다는 건데 이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공매도 거래 점검 결과를 발표하면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불상자가 이동채 전 회장의 분실 면허증으로 휴대폰을 개설하고, 전 회장 명의 위탁계좌에 접속해 해당 주식을 매도한 범죄행위였다"며 "전 회장이 소유하고 있던 주식을 매도한 행위로 공매도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에코프로 등 증권사 불법공매도?…금감원 "사실 아니다"(2023년 12월 28일)
그러나 박 작가는 금감원의 발표는 믿기 어렵다는 반응과 함께 "신한투자증권이 불법을 저지른 의혹이 분명하기 때문에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정황을 살펴보고 금감원도 이를 조사해야 금감원 명예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작가와 함께 토론해 패널로 나온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도 "지금도 DMA(직접전용주문선·Direct Market Access)으로 무차입 공매도가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라며 "신한투자증권에서 DMA를 이용한 불법 공매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남궁태형 신한투자증권 준법감시인은 "박순혁 작가님과 정의정 대표님 등이 신한투자증권에 섭섭한 부분이 많으신 거 같다"며 "그래서 회사 내부통제를 담당하는 준법감시인인 제가 책임 있게 말씀드리고자 이 자리에 나왔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박순혁 작가는 "섭섭한 것은 전혀 없다. 꼬투리 잡는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남궁태형 준법감시인은 "에코프로 불법 공매도 문제가 제기된 부분은 당일에 저희 공매도 물량 자체가 크지 않았고 시장 평균과 비교해도 낮았기 때문에 저희가 주가하락을 주도했다는 건 수치상으로 맞지 않다"며 "이동채 회장 건은 서울 사이버수사대에서 조사 중이고 수사결과를 지켜보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태훈 신한투자증권 국제영업본부장도 "신한이 불법공매도를 하고 있다는 의심이 있는데 저희는 지난해 자기매매 공매도는 전혀 없었고 유동성공급자 공매도도 제로였다"며 "위탁매매 공매도 역시 신한투자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10.7% 수준으로 많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복현 원장은 패널들이 주장한 내용과 관련, "정의정 대표가 얘기한 DMA는 공매도와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다"면서도 "관련해 실태 조사를 하고 이른 시일 안에 결과를 알려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TF LP 공매도…'금지해야 VS 금지안돼'
이날 또다른 토론 주제였던 ETF 유동성공급자(LP, Liquidity Provider)의 공매도 문제에 대해서도 토론자들의 시각차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 11월 금융당국이 공매도 금지에 나서면서 주요 시장참여자들은 4개월 넘게 공매도를 하지 못하고 있지만 LP는 공매도 금지에서 예외 대상이다. LP들이 ETF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불법 공매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일부 개인투자자들의 주장이었다. ▷관련기사: 공매도 금지 예외 '시장조성자'…투자자들 불신 이유는(2023년 11월 16일)
이와 관련해 지난해 11월 금감원은 현장점검을 통해 유동성 공급자 역할을 하는 6개 증권사(미래에셋‧NH투자‧한국투자‧신한투자‧메리츠‧BNK증권)의 공매도 거래내역을 집중 점검했지만 불법공매도는 없었다고 결론내렸다.
그럼에도 논란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LP들의 공매도를 금지해야한다는 주장과 시장 건전성을 위해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붙었다.
박순혁 작가는 "시장조성자(Market Maker)와 LP의 불법 공매도 자체에 대해 사실 토론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라며 "최근 LG이노텍에 대해 특정 언론사 등이 급락을 부추기고 MM‧LP가 불법 공매도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다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언론사와 MM‧LP 등이 모두 연결되어 불법공매도를 저지르고 있는 만큼 먼저 MM‧LP들의 공매도를 중단한 뒤 불법 공매도 사안을 대대적으로 조사하고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관련 증권업계 패널로 나온 정병훈 NH투자증권 패시브솔루션부문장은 "LP들에 대한 공매도를 금지하면 투자자들이 매도할 때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며 "LP에 대한 예외적인 공매도 허용은 ETF를 더 효율적인 가격으로 매수해 투자자들의 편익을 높이기 위한 제도인 만큼 공매도 금지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도형 삼성자산운용 ETF컨설팅본부장도 "LP에 대한 공매도를 금지하면 ETF투자자들이 미국 등 해외 증시로 이탈해 자금이 밖으로 빠져나가고 결국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운용사 입장에서는 좋은 ETF공급과 우리나라 주식시장 발전을 위해 공매도 허용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황선오 금감원 부원장보(자본시장파트)는 "ETF거래 과정에서 LP가 유동성을 공급하는데 불가피하게 위험을 헷지하기 위해 현물주식을 공매도하고 있다"며 "그동안 검사한 내용으로는 불법공매도 없었지만 앞으로 모니터링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공매도 제도개선·전산화 구축 논의도 지지부진
공매도 제도개선과 전산화 시스템 구축에 대해서도 각자의 주장이 오고갔다.
박순혁 작가는 "공매도 제도 개선은 무차입공매도가 사라지고, 기한을 계속 연장하는 무기한 공매도도 사라져야 하고, 레버리지 비율이 높은 무제한 공매도가 사라져야 한다"며 "우리나라 기관투자자 및 외국인들에 대한 공매도 기한과 레버리지 비율은 전 세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정의정 대표는 "전산화시스템 구축에 대한 금감원의 태스크포스(T/F) 결과를 알려달라"며 "개인은 높은 금리를 부담하고 공매도 가능 종목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외국인투자자, 기관투자자와 달리 증거금도 낸다"며 "담보비율과 상환기간 모두 통일하지 않는다면 이는 기관투자자와 외국인투자자의 특권을 유지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를 대표한 패널로 참가한 윤선중 동국대 경영대학 교수는 "전산화 구축 관련해서는 기관투자자 내부에서 관리하는 시스템을 전산화하고 공매도 주문이 있으면 주문을 집행하는 증권사는 해당 전산시스템으로 차입 물량을 검증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 공매도 문제의 경우 행정 처분은 상대적으로 민감도가 낮은 만큼 전산시스템 대차물량을 확인하는 임직원을 별도로 두고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임직원에게 직접 제재하는 방식으로 가면 불법 공매도 사전예방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강형구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공매도의 장점인 가격발견기능 등 정량화되지 않은 대의를 위해 개인투자자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며 "공매도 장점을 정량적 수치를 통해 제공할 필요가 있고 그 장점이 한국자본시장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제 각각 주장만…건설적인 논의는 없었다
이날 토론회는 지난해 11월 공매도 금지 이후 진행한 세 번째 공매도 토론회였다. 특히 금감원이 직접 주최하고, 이복현 원장이 참석한다는 점에서 시작 전부터 높은 관심을 받았다.
다만 토론회 내용은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의혹, 각자의 입장만 내세우는 분위기가 많은 시간을 지배했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공매도 재개시점이 불과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인데도 건설적인 논의는 없었던 것이다.
또한 금감원이 금융투자협회와 증권사 등을 통해 섭외한 개인투자자 및 대학생 등 30명 방청객들의 발언과 질문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각 토론자들이 자기 주장을 담은 발언이 길어지자, 사회자인 전석재 슈카월드 대표는 시간관계상 방청객의 질문순서를 넘어가겠다고 했다.
알맹이 없는 토론회에도 이복현 원장은 의견을 듣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자평했다. 이 원장은 "공매도와 관련한 걱정과 주장, 우려 등에 대해 금융당국이 조금 더 강하게 듣고 그걸 듣고 있는 것을 국민들께 보여드릴 필요가 있어 준비한 자리"라며 "결론이 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만 결론 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다른 기관들과 공조를 강화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무차입 공매도가 불법성을 띄지 않더라도 시세에 관여할 의도가 있다면 지난 11월에 점검을 했더라도 지금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최근 사례 등을 다시 점검하는 등 노력하겠다"며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수는 없지만 의견 개진 내용을 듣고 해결책을 찾아가다 보면 신뢰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오는 상반기 내에 공매도 전산화 관련 준비 작업을 곧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한국거래소와 함께 공매도 전산화 마련을 위한 T/F를 꾸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