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직접 좌장으로 참여한 상법 개정 토론회에서 경영계와 투자자 측 입장이 평행선을 달렸다. 민주당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 중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추가하는 내용이 주요 논쟁 대상이었다.
경영계에서는 '경영권 위축 우려'를 거듭 강조하며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반면 소액주주 등 개인투자자 측에서는 소액주주 권한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미흡하다며, 정부가 내놓은 자본시장법만으론 부족하다는 점을 주장했다.
이재명 대표는 상법 개정에 대한 입장을 따로 밝히진 않았다. 좁혀지지 않은 입장차를 확인한 가운데 심도있는 검토만 주문했다.
이재명 "휴면 개미로서 안심하고 투자할 방안 필요"
민주당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상법개정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경영계와 투자자를 각각 대표하는 14명이 토론 패널로 참석했다. 경영계에서는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공부회장, 정연중 심팩 최고재무책임자, 김동욱 현대차 부사장, 이형희 SK 수펙스 커뮤니케이션 위원장,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 정우용 상장사협의회 정책 부회장, 권용수 건국대 융합인재학과 교수 등 7명이 참석했다.
투자자 측에는 명현석 참여연대 실행위원, 박광현 두산에너빌리티 주주연대 대표, 김현 이화그룹 주주연대 대표, 윤태준 액트 연구소장,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이상목 DB하이텍 주주연대 대표, 박수본 셀리버리 주주연대 대표 등 7명이 자리했다.
이재명 대표는 모두발언에서 "한때 개미였고 '휴면 개미'라고 할 수 있는 잠재적 투자자 입장에서 여러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누군가 피해보고 누군가는 이익을 보는 시스템이 아니라 모두가 부당하지 않게 취급되는 공정한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야한다"며 "기업이 어떻게 하면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것인지, 투자자들은 어떻게 안심하고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합리적인 방안을 만들어 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 11월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이익을 추가하는 상법 개정을 당론으로 정하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정문 정책위 수석부의장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 따르면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명문화한다는 것이 골자다.
발제를 맡은 오기형 민주당 대한민국 주식시장 활성화 태스크포스(TF) 단장은 상법 개정안 취지에 대해 "12.3 내란사태 전부터 지적 돼왔던 문제는 주주와 투자자를 무시하는 경영 형태를 개선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례 △LG화학의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 사례 △두산밥캣-로보틱스의 분할합병 시도 사례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과 유상증자 시도 사례 등을 언급하며 "최근 이런 형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그래서 회사의 잘못된 의사결정을 막아야할 이사들이 왜 들러리 역할만 하냐는 지적이 있다"고 말했다. 경영계, 결사 반대 의지…"판사가 CEO 될 판"
상법 개정을 결사 반대하고 있는 재계에서는 상법이 도입되면 경영권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특히 중견·중소기업일수록 시가총액이 낮아 펀드나 기관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논리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상장회사의 86% 중소·중견기업이고 경영권 분쟁 공시 기업의 90%가 중소·중견기업"이라며 "중소기업들은 시가총액이 작아 100억~200억원으로도 경영권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판례가 만들어질때까지 혼란이 있을 수 있고 결국은 기업경영을 법원에 맡겨야한다"며 "판사를 회장으로 모셔야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김동욱 현대차 부사장은 2019년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엘리엇이 현대차 지분을 확보하고 당기순이익의 3.6배에 해당한 배당을 요구한 사례를 언급하며 "회사의 설비 및 R&D 투자, 우수인재 고용 등 장기적인 미래 비전보다는 오직 배당 확대를 위한 단기적인 이익 실현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충실의무에 주주를 추가하는 개정으로 적대적인 M&A나 행동주의 펀드들의 횡포가 가능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신사업 투자를 위한 자본조달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문제도 지적했다. 정연중 심팩 CFO는 "당장 이사의 주주충실의무를 확대한다면 주주와 회사간 이해가 충돌하는 경우나 주주간의 이해가 충돌할 경우에 이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되는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액배당을 유보하고 신사업 투자를 집행한다면 주주충실의무 위반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정 CFO는 "오래된 제조업들의 오랜 업력으로 제조업을 하던 회사들은 공장 등의 사업용 고정자산의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는 회사들이 많이 있다"며 "해외 행동주의 펀드들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고 부동산 매각해서 차액을 배당하라고 요구한다면 '회사 경영진은 주주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그 결정을 따라야 하는가' 현실적인 의문이 생기는 동시에 법정 분쟁 가능성이 계속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재계는 상법 대신 정부가 추진하는 자본시장법을 통한 핀셋 규제가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정우용 상장협의회 정책부회장은 "주주총회와 이사회에서 결정해야 하는 사항이 조문 수로 69개이고, 분할합병 등 자본거래에 관한 건이 13개"라며 "자본거래 외에도 이사가 책임을 지게 되므로 회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사업에 진출을 할 때 굉장히 꺼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장회사에만 이사의 주주충실의무를 적용하는 것은 어떠냐'는 이재명 대표의 질문에도 재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정우용 부회장은 "상법에 두는 것을 동의하지않는다"고 말했다.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이사의 주주충실의무는 이해상충을 방지하는 법이기 때문에 오히려 선관의무나 주주충실의무를 명확히 규정하는 조항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투자자측 "자본시장법 개정만으론 부족"
투자자측에서는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미비하므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명현석 참여연대 실행위원은 "에버랜드 판결(삼성 에버랜드가 전환사채를 저가에 발행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무죄를 판결) 당시에 재판부는 이사들은 회사에 대해서 충실할 뿐이지 주주들을 위해서 충실할 필요는 없다는 논리를 들었다"며 "주주들이 피해를 받았지만 손해를 회복할 방법이 없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해관계자인 노동자, 채권자를 보호하는 사법적 장치는 있지만 주주를 보호하는 장치가 없다"며 "이런 문제를 입법적으로 해결하자는게 이사의 주주충실의무 도입 취지"라고 설명했다.
경영계와 현 정부가 추진하는 자본시장법 개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명 위원은 "(정부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몇 가지 문제가 되는 사안을 꼽은 것"이라며 "문제의 근본 원인은 원칙 규정이고, 당연히 회사는 주주가 만든 것이기 때문에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된다는 규정이 들어가야 법 해석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의 윤태준 연구소장은 재계의 반대 논리 중 하나인 경영권 침해 우려에 관해 "투자자들이 제일 원하는 것이 단기적 배당이 아닌 장기 성장을 위한 설득력 있는 투자"라며 "회사가 나아가야하는 비전을 회사가 제시하고 주주를 설득하면 주주들은 앞장서서 회사측에 선다"고 말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재계에서 상법이 개정되면) 외국인 투자자가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다고하는데 2014~2024년 데이터를 보면 외국인들이 주주제안을 하는 경우도 적지만 외국인 투자자라고 단일하게 외국인 주주편을 들지 않는다"며 "공포는 과장됐다"고 강조했다.
양측의 좁혀지기 어려워보이는 입장 차를 확인한 이재명 대표는 마무리 발언에서 심도있는 법 개정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국장탈출은 지능순'은 자존심 상하는 얘기"라며 "이 문제를 빨리 고치는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규모 피해가 계속 발생하고 법으로 봉쇄해버리자는 주장이 있고, 봉쇄했을 때 생기는 부작용이 있다는 반론이 있다"며 "모든 문제를 함께 고려해 정책위의장과 의원들이 고민을 많이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