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주식시장의 대표적 기관투자자인 자산운용사들의 지난해 의결권 행사율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운용사들은 대부분의 안건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여전히 '주총 거수기'라는 지적을 받는 상황이다.
21대 대통령으로 4일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수탁자 책임원칙을 담은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기관투자자 책임투자원칙) 개정에 대해 동의한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향후 코드 개정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의결권 행사율 소폭 높아졌지만…반대율은 여전히 저조
금융감독원은 '2024년 자산운용사 의결권 행사 현황 점검 결과'를 4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273개 자산운용사들은 공모 및 사모펀드 관련 2만8969개 안건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 및 불행사 사실을 공시했다. 자산운용사들은 전년 4월 1일부터 당해 년도 3월 31일까지 행사한 의결권 내역을 매년 4월 30일까지 한국거래소에 공시해야 한다.
운용사들의 의결권 행사율 자체는 2023년보다 올라갔다. 2023년 자산운용사들의 의결권 행사율은 79.6%였지만 지난해에는 91.6%를 기록했다. 반대율도 소폭 올라갔다. 2023년 주요 안건에 반대표를 던진 비율은 5.2%였지만 지난해에는 6.8%로 높아졌다.
다만 여전히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 등 대형 연기금에 비해서는 의결권행사율과 반대율이 낮은 상황이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율은 99.6%, 반대율은 20.8%였다. 공무원연금도 각각 97.8%, 8.9%를 기록했다.
주요 연기금보다는 반대율이 낮지만 운용사들 △합병·분할 등 조직변경 △정관변경 △이사 선임 및 해임 등의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다만 왜 해당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는지 그 사유 기재는 미흡했다.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거나 중립 행사한 안건의 비중도 높았다. 지난해 운용사들은 전체 2만8969개 안건 중 2981개 안건에 대해 불행사 및 중립행사를 했다. 금감원은 "계열관계로 인해 중립행사 할 수밖에 없는 안건이 존재하는 등 운용사만의 특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불행사 비중이 8.4%에 달하는 등 상당히 높다"고 지적했다.
운용사들은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왜 행사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사유를 적어야 한다. 하지만 점검대상 운용사 273개사 중 72개사(26.7%)가 의결권 안건 절반 이상에 대해 △주주총회 영향미미 △주주권 침해없음 등 형식적인 사유만 기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왜 이렇게 의결권 행사했나?..내부지침 공개도 미흡
운용사는 의결권 행사방향이 왜 이렇게 정해졌는지 그 근거가 되는 내부지침도 투자자가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공시해야 한다. 하지만 점검대상 273개 운용사 중 57개사(20.9%)는 법규 나열 수준의 기본정책만을 공시했고 안건별 행사 근거가 되는 세부지침은 공시하지 않았다.
54개사(19.8%)는 지난 2023년 10월 금감원 주도로 개정한 운용사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 개정 내용도 반영하지 않았다.
의결권 행사내역을 공시할 때는 거래소의 공시서식을 준수해야 하지만 273개 운용사 중 86개사(31.5%)는 의안명을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았다. 아울러 62개사(22.7%)는 의안유형을 미기재하고 149개사(54.6%)는 대상 법인과의 관계를 기재하지 않는 등 미흡한 점을 다수 발견했다. 중소형 운용사가 더 잘했다... 한투·KB운용 미흡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주요 대형 운용사보다 중소형사들이 의결권 행사에 더 충실했다는 점이다.
금감원은 의결권 행사가 양호한 곳으로 △미래에셋자산운용 △교보악사자산운용 △트러스톤자산운용 △신영자산운용 4곳을 꼽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제외하면 나머지 3곳은 중소형 운용사다.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대해 금감원은 "펀드 내 다양한 종목을 보유하면서도 의결권을 충실히 행사해 행사율 99.3%, 반대율 16%를 기록했다"며 "주요 연기금과 유사한 수치이며 의결권 행사 사유도 분석 내용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적었다"고 밝혔다.
교보악사자산운용에 대해 금감원은 "중소형사임에도 전담조직을 운영하면서 의결권 행사 사유를 내부지침 상 근거를 기반으로 명확하게 작성했다"며 "의결권 행사율은 97.4%, 반대율은 16.1%로 주요 연기금 수준을 기록했다"고 강조했다.
트러스톤·신영 역시 금감원은 "투자대상회사 경영진과 면담, 주주제안 등 주주권 행사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의결권 행사율(100%, 98.8%)도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대형운용사인 한국투자신탁운용, KB자산운용은 의결권 행사사 미흡한 곳으로 꼽혔다. 금감원은 "상장주식 보유 상위 5개사 중 한국투자와 KB는 의결권 행사 및 불행사 사유를 중복기재한 비율인 80%를 상회하는 등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들 운용사는 의결권 사유를 주주권리 침해없음과 같은 문구를 여러 안건에 동일하게 기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재명 정부,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 속도 낼 듯
이처럼 운용사들이 여전히 기관투자자의 책무인 의결권 행사에서 미흡한 점을 보이는 가운데 4일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자본시장 정책추진의 일환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에 속도를 낼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주주가치제고, 소액주주권익 향상을 강조해 온 만큼 운용사들이 상장사의 거버넌스 개선에 수탁자로서의 충실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 및 적용 강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보내온 ESG정책질의항목 중 스튜어드십코드 개정에 대해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식 공약집에도 △스튜어드십코드 적용대상·범위 확대 및 책임투자 유도 △수탁기관의 스튜어드십코드 이행결과 공시 등을 추진하겠다고 명시했다.
금감원도 스튜어드십 코드 운영 개선을 시사했다. 금감원은 "금감원은 기관투자자 수탁자책임의무의 충실한 이행을 위해 운용사 의결권 공시점검을 다각도로 실시하겠다"며 "아울러 해외사례 등을 참고해 스튜어드십 코드 운영도 개선하는 등 노력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