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과점 관련 규제 이슈에 묶여 있던 네이버가 이번 기회에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네이버가 지난해 상생 기금으로만 수천억원을 쏟아붓는 '통 큰'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규제 리스크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3일 네이버에 따르면 지금까지 '상생'이란 이름으로 내놓은 펀드와 기금 총액은 2000억원에 달한다. 네이버는 지난 1일 공정거래위원회와 잠정 동의의결안을 통해 1000억원 규모의 상생 기금을 내놓기로 했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중소기업청 및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각각 '미래창조펀드', '문화콘텐츠펀드'를 조성키로 하면서 500억원씩을 내놨다. 불과 석달 동안 네이버는 상생 기금으로 2000억원을 마련한 것이다. 이는 네이버의 지난해 영업이익 추정치 5000억원의 40%에 달하는 규모다.
네이버가 상생을 위해 펼친 노력은 기금 외에도 많다. 네이버는 지난해 7월 '상생·공정·글로벌'이란 키워드를 내걸고 자정안을 발표했으며, 외부와 협력 업무를 전담하는 최고경영자(CEO) 직속의 '파트너센터'란 부서도 만들었다. '골목 상권 침해'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부동산 매물정보와 맛집정보(윙스푼) 여행정보(윙버스) 등 주요 서비스를 차례로 접었다.
인터넷 업계에선 한 기업이 2000억원 규모의 상생 기금을 마련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보고 있다. 벤처에서 출발한 인터넷 업체가 결정한 기금치고는 규모가 꽤 많다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물량 밀어내기로 '갑의 횡포' 이슈를 불러 일으킨 남양유업은 여론의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 600억원을 출연했으나 네이버에 비하면 크게 못 미친다.
네이버가 거액을 내놓으면서 상생에 목을 맨 직접적인 이유는 끈질기게 따라온 독과점 관련 규제 때문이다. 인터넷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면서 정보 유통의 관문으로 자리매김한 네이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아져서다. '경제 민주화'를 내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네이버 규제법'이 추진됐으며 여기에 일부 언론사들도 가세해 집중 포화가 쏟아졌다. 공정위가 시장지배적 사업자 선정 여부를 재검토하기 시작한 것도 네이버가 검색광고 시장에서 7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는 등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결국 2000억원의 거액을 꺼내놓은 것은 이러한 규제 우려가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최훈 KB투자증권 연구원은 "한 기업이 이처럼 많은 상생 기금을 내놓은 사례는 없었다"라며 "아직 공정위의 최종 결정이 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규제 리스크가 해소됐다기 보다 현실화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네이버측은 최근의 상생 노력이 외부의 강압에 못 이겨 억지로 내놓은 결과물이 아니라 자발적인 성과물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특히 공정위와 절충안으로 내놓은 잠정 동의의결안은 공정위가 문제 삼았던 위법성이 모두 해소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공정위로부터 '과태료'를 받는 대신 인터넷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발전 기금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불법'의 꼬리표를 떼어냈다는 것이다. 네이버측은 "자발적으로 기금을 내놓은 것은 인터넷 생태계를 통해 네이버가 성장한 만큼 중소기업과 동반 성장하자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선도 업체가 할 수 있는 역할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인터넷 생태계에서 을(乙) 입장에 있던 업계는 네이버가 공정위와 1000억원의 상생 기금을 내놓기로 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즉각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2일 논평을 통해 "공정거래위원회의 네이버·다음 잠정 동의의결안 결정에 대해 지지하고 환영한다"고 밝혔다.
증권가에선 네이버의 상생 노력이 규제 이슈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박재석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네이버는 불법 대신 상생이라는 좋은 이미지를 얻게 됐고 규제 리스크도 해소했다"라며 "네이버는 국내 사업보다 모바일메신저 라인을 통한 해외 사업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