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로라를 인수하면서 단숨에 글로벌 스마트폰 3위 업체로 떠오른 레노버의 성장 동력은 왕성한 인수합병(M&A)과 철저한 현지화 전략에 있다. 벤처로 시작한 레노버가 연간 매출 300억달러(한화 32조원)에 '세계 1위 PC' ·'세계 3위 스마트폰' 타이틀을 거머쥔 공룡 정보기술(IT) 기업으로 거듭난 배경에는 공격적인 기업 사냥과 이렇게 삼킨 기업에 힘을 실어주면서 적극적으로 융화하는 정책이 주효했다.
◇ 끊임없는 식탐..9년간 74억달러 투입
레노버는 지난 1979년 '렌샹(聯想) '이라는 IT 벤처로 시작했다. 창업자이자 중국 벤처 1세대인 류촨즈 박사는 국영 중국과학원(CAS)으로부터 2만5000달러(한화 2700만원)를 투자 받아 회사를 세웠다. 지금의 양위안칭 레노버 최고경영자(CEO)는 1988년 렌샹이 ‘레전드(Legend)’란 영문 이름으로 컴퓨터 판매 사업을 할 당시 인턴 사원으로 취직했다. 자전거로 PC를 배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중국 저가 PC 업체에 불과하던 레노버가 유명세를 탄 결정적 계기는 지난 2005년 IBM의 PC 사업을 인수하면서다. 이 때부터 레노버는 크고 작은 인수합병에 나서면서 현재까지 M&A에만 총 74억달러(한화 8조원) 이상을 쏟아 부었다.
레노버는 해외 IT 업체를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레노버는 IBM의 ‘씽크패드’ 브랜드와 PC 사업을 삼킨 이후 지난 2011년 일본 최대 PC업체 니혼전기주식회사(NEC)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그해 독일 메디온을 인수하고, 2012년에는 브라질 CCE를 사들이면서 세계 각국으로 뻗어 나갔다. 이들 PC 업체를 인수하는데 들인 비용만 22억달러(한화 2조4000억원)다.
이후에는 PC 너머로 분야를 확대한다. 지난 2012년에는 미국 스톤웨어를 사들이면서 차세대 기술로 떠오르는 ‘클라우드’ 시장에 진출했고, 이달 초에는 IBM으로부터 서버 사업을 인수하면서 개인시장(B2C)에 이어 기업시장(B2B)으로 무대를 넓혔다. 이번에 모토로라 스마트폰 사업을 인수한 것은 중국과 미국 시장에서 각각 레노버와 모토로라 브랜드를 동시에 활용하는 ‘투 트랙’ 전략을 펼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레노버는 해외 시장에 직접 진출하기 보다 M&A를 통해 현지 업체를 교두보를 삼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단기간에 기업 규모를 키우고 첨단기술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과 자금을 단축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에 장려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는 산업 구조를 선진화시키기 위해 자국 기업이 해외 무대에서 M&A를 펼치는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피인수 기업에 '믿고 맡겨'..현지화 승부수
무모한 식탐은 자칫 탈을 일으킬 수 있으나 레노버는 지금까지 무리 없이 M&A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레노버 특유의 적극적 융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단순히 몸집을 불리기 위한 삼키기가 아니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꼭꼭 씹어 소화하는 것이 레노버식 M&A다.
대표적인 사례가 IBM의 PC 사업 인수 때다. 당시 양위안칭 레노버 최고경영자(CEO)는 영어를 거의 할줄 몰랐다고 한다. 양 CEO는 IBM PC 사업을 인수하자마자 곧바로 영어 공부에 나서는 한편 영어를 레노버 공식 언어로 채택하기도 했다. 한발 더 나아가 IBM 경영진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스캐롤라이나로 가족을 데리고 이사하기도 했다. 현재 레노버 본사는 중국 베이징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두 곳에 있다. 이러한 노력 덕에 현재 양 CEO는 미국서 열리는 컨퍼런스콜에서 영어로 애널리스트를 상대하는가 하면 외신들과 인터뷰도 영어로 진행할 정도다.
레노버는 '본사의 경영 방침을 강요하는 북미 기업'과 달리 피인수 기업에 사업을 믿고 맡기다시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피인수 기업 경영진이 곧 현지 전문가라고 보고 이들의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다. 레노버는 지난 2011년 일본 NEC의 PC 사업을 인수할 때 당시 폐쇄 직전인 야마가타현 요네자와의 PC 공장을 그대로 활용하자는 NEC측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를 계기로 레노버의 일본 PC 시장 점유율이 확대되기도 했다.
중국 기업들이 자국 정부 지원에 힘입어 해외 M&A를 활발하게 펼치고 있으나 현지 기업과 마찰을 일으켜 결국 철수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한 점에서 레노버의 M&A는 모범적이라 할 수 있다. 레노버는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현지 기업을 통해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했기에 M&A로 성공할 수 있었다.
레노버가 피인수 기업을 내세워 철저한 현지화에 나서는 이유는 '모회사=중국 기업'이란 이미지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레노버가 미국이나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서 PC 사업을 확대할 수 있었던 배경은 중국 레노버란 브랜드보다 현지인이 좋아하는 '씽크패드', 'NEC' 브랜드를 그대로 살렸기 때문이다.
레노버는 세계 각국 소비자 속으로 파고 들기 위해 ‘스타 마케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2012년에 레노버는 미국 프로미식축구협회(NFL)와 3년간 후원 계약을 맺었으며, 최근에는 NBA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나 헐리우드 스타 애쉬튼 커쳐를 제품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 레노버가 지난해 미국 휴렛팩커드(HP)를 제치고 처음으로 세계 PC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원동력은 이러한 현지화 노력에서 찾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