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PC제조사 중국 레노버 그룹이 미국 구글로부터 모토로라 스마트폰 사업을 인수한다. 구글은 지난 2012년 모토로라를 인수했다가 2년도 안돼 레노버에 넘기는 것이다. 저가폰을 내걸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무섭게 성장하는 레노버가 모토로라를 삼키면서 삼성전자와 애플이 장악하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에도 일대 변화가 예고된다. 당장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요동치면서 LG전자가 순위에서 한단계 밀리는 등 타격을 받게 됐다.
◇구글, 2년도 안돼 헐값에 모토로라 매각
구글은 29일(현지시간) 자회사인 모토로라 모빌리티의 스마트폰 사업을 레노버에 29억1000만달러(한화 3조원)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구글은 지난 2012년 5월 모토로라를 124억달러(한화 13조원)에 인수했다가 2년도 안돼 헐값에 되파는 셈이다.
레노버는 우선 구글에 현금 6억6000만달러와 자사 보통주 7억5000만달러를 주고 3년 후에 나머지를 지불하기로 계약했다. 레노버는 구글로부터 모토로라 모빌리티의 스마트폰 기획과 제조· 판매 사업을 가져오게 된다. 다만 모토로라의 주요 모바일 특허권은 구글에 그대로 남는 조건이다. 이번 계약은 미국과 중국 당국의 승인을 거쳐야 인수 절차가 완료된다.
▲ 래리 페이지 구글 CEO(왼쪽)와 양위안칭 레노버 CEO. |
레노버는 이번 계약으로 모토로라가 보유한 2000건의 특허 자산을 챙겨가게 됐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특허권을 가져오는 지와 이러한 특허가 관계 당국으로부터 별도의 조사 대상이 되는 것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레노버는 모토로라가 구글 주도로 개발한 저가 스마트폰 '모토G'를 비롯해 모토로라 브랜드로 펼치고 있는 제품군도 손에 넣게 된다.
이날 양 위안칭 레노버 최고경영자(CEO)는 "모토로라의 상징적인 브랜드와 혁신적인 제품 포트폴리오 및 놀라운 재능의 글로벌 인력들이 즉시 레노버를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로 만들 것"이라고 환영했다.
래리 페이지 구글 CEO도 "구글은 디바이스 보다 스마트폰 소프트웨어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미국 증시에서 구글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2.6% 오른 1136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앞서 구글은 지난 2011년 경영난을 겪고 있는 모토로라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스마트폰 업계에 특허 분쟁이 늘어나자 모토로라가 80년 동안 쌓아놓은 특허에 눈독을 들였던 것이다. 비록 구글이 지금와서 모토로라를 레노버에 헐값에 넘기는 것이지만 모토로라가 보유한 주요 모바일 특허권은 고스란히 챙기는 것이라 밑지는 장사는 아닌 셈이다.
◇덩치 불린 레노버..LG전자, 점유율 한단계 밀려
경영난을 겪던 모토로라는 구글에 인수된 이후 구글의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제품 개발로 재건에 나섰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의 절반 가량을 장악하고 있는데다 저가폰을 내걸고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제조사들에 밀려 부활 작업이 쉽지 않았다. 모토로라는 구글 품에 안기고도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레노버가 모토로라를 인수하면서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레노버는 저가 스마트폰을 무기로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리면서 무섭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지난해 레노버의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4.5%로 5위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3.3% 점유율보다 1.2%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레노버의 모토로라 인수는 당장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도 변화를 주게 됐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작년 스마트폰 시장에서 LG전자 점유율은 4.8%로 4위를 기록했다. 뒤를 이어 레노버가 4.6%로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양사의 점유율이 근소한 차이를 보이는 가운데 레노버가 덩치를 불리면서 LG전자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SA는 레노버와 모토로라의 점유율을 합하면 6%대가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레노버가 모토로라 브랜드를 내세워 북미 시장 공략에 고삐를 조이면 LG전자가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저력의 레노버, PC이어 스마트폰 시장도 확대
레노버 뿐만 아니라 지난 2년 동안 중국의 3대 스마트폰 제조사인 화웨이와 ZTE, 레노버는 저가 스마트폰을 내걸고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들 중국 제조사는 애플의 '안방'인 미국 시장을 뚫는데 공을 들여왔다. 아직 레노버는 미국 시장에 진입하지 못했으나 ZTE와 화웨이는 제품 품질이 떨어지고 보안이 취약하다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점유율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IDC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ZTE와 화웨이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각각 5.7% 3%다. 같은 기간 애플(36.2%)과 삼성(32.5%)의 점유율에는 크게 못 미치고 있으나 워낙 공격적인 인수합병(M&A)과 가격 경쟁력을 갖고 있어 점유율 상승 추세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레노버의 저력은 또 다른 영역인 PC 사업에서도 알 수 있다. 레노버는 지난 2005년 미국 IBM의 PC사업을 인수한 이후, 지난해 세계 PC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지난 23일에는 IBM에서 저가 서버를 23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레노버는 PC 사업으로 축적한 지식과 이번 인수합병(M&A)을 지렛대로 삼아 PC와 스마트폰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을 키워 나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제조사인 모토로라를 손에 넣으면서 그동안 어려움을 겪어왔던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전망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프랭크 길레트 포레스터 연구소의 애널리스트는 "레노버가 모토로라 브랜드를 사용한다는 것은 레노보가 IBM의 씽크패드 브랜드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라며 "시장으로부터 빠르게 신뢰를 얻으면서 상당한 대중성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