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애플의 '제2차 특허 전쟁'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애플의 날선 공격을 삼성전자가 어떻게 막느냐다. 애플이 특허침해를 주장하는 건수는 5건으로 삼성(2건)보다 많다. 특허 건수로 보면 애플이 더 많은 공격 무기를 갖고 있는 셈이다. 애플이 요구하는 특허 사용료 또한 과한 수준으로 알려져 삼성이 패할 경우 금전적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으로는 재판 도중 두 회사가 극적으로 합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 삼성의 방어술 '선택과 집중'
당초 삼성은 애플과 마찬가지로 5개 특허를 가지고 2차전을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지난 1월 미국 법원이 '삼성의 멀티미디어 동기화 특허는 무효'라는 애플의 주장을 받아들이자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여기에 2차전을 앞두고 '업링크 패킷 데이터 전송 정보'와 '부정기 데이터 전송' 2건을 자진 철회하기로 했다. 이로써 삼성은 '디지털 이미지 및 음성기록 전송'과 '원격 영상 전송' 2개 특허를 가지고 싸우게 된다.
삼성이 제외한 2개 특허는 표준특허에 해당한다. 표준특허란 관련 업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기술에 대한 특허다. 예를 들어 220볼트(V) 콘센트나 USB 포트 규격처럼 모두가 공통으로 쓰기로 약속한 규격 등을 말한다. 삼성이 재판을 앞두고 표준특허를 뺀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더이상 표준특허가 통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앞서 미국 무역위원회(ITC)는 애플이 삼성의 통신 표준특허를 침해했다고 판단해 '아이폰4'와 '아이패드2' 등에 대해 미국 내 판매금지 결정을 내렸다. 이에 오바마 행정부는 '표준특허 보유자의 과도한 영향력이 미 경제와 소비자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명분을 들어 거부권을 행사했다. 삼성은 미국의 준(準) 사법 기관인 ITC로부터 표준특허를 인정받았으나 정작 오바마 행정부가 거부하고 나서면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이에 따라 삼성은 논란 가능성이 있는 표준특허 보다 비(非) 표준특허에 주력하는 것이 전략상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포스페이턴츠란 사이트를 운영하는 특허 전문가 플로리안 뮐러는 "삼성은 앞서 소송에서 표준특허를 통해 이미 우위를 점했다"라며 "앞으로 소송에선 비표준특허에 주력하려는 전략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삼성은 2차전에서 애플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것과 애플이 주장하는 손해배상액이 과도하다는 것을 최대한 부각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특허 수를 줄인 것은 제한된 시간에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 전략"이라며 "방어도 수동적인 의미가 아니라 공방이 심한 분야에 더 집중해 주장을 강조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 애플 "1대당 40달러 배상"..공세 예고
삼성이 공격보다 방어에 신경을 쓰는 것은 애플이 1차전 때보다 강도높게 몰아붙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애플은 2차 소송을 앞두고 삼성에 스마트폰 1대당 40달러(약 4만3000원)의 특허 사용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1차 소송에서 법원은 '핀치 투 줌'에 3달러 10센트, '오버 스크롤 바운스' '탭 투 줌' 기술에 각각 2달러 2센트 등 총 7달러 14센트 특허 사용료를 산정했다. 2차전에서 애플은 이보다 더 많은 금액을 요구한 것이다.
법원이 애플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삼성은 1차전보다 더 많은 금액의 손해배상액을 물어야 한다. 2차전에는 비교적 최신 제품이자 흥행 모델인 갤럭시S3와 갤럭시노트2 등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아이엠투자증권에서 추정한 손해배상 총액은 우리 돈으로 6조원 가량이다. 삼성이 1차전에 물었던 9억2900만달러(약 9900억원) 보다 6배 이상 많다. 이에 대해 플로리안 뮐러는 "애플이 정신이 나간 게 아닌지 의문이 든다"라면서 다소 과한 요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민희 아이엠투자증권 연구원은 "애플이 너무 세게 나온 것이라 삼성으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며 "결국 양사는 재판 도중에 절충안을 마련해 타협을 볼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애플은 2차전에서 궁극적으로 구글을 노리고 있다. 애플이 삼성으로부터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는 특허 5건은 모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기본 기능에 해당한다. 만약 법원이 애플측 주장을 받아들이면 삼성폰 뿐만 아니라 모든 안드로이드 기기가 애플 특허를 침해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는 생전에 "안드로이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면 핵전쟁도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안드로이드에 대해 적대심을 드러낸 바 있다. 잡스는 삼성전자를 '카피캣(copy cat, 모방꾼)'이라고 비난하면서 1차전을 시작했는데 사후에 비로서 구글과 전면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애플이 구글을 겨냥하는 배경에는 안드로이드 OS의 급격한 성장도 작용한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지난해 스마트폰 시장에서 안드로이드의 점유율은 79%로 한 해 전에 비해 10%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애플 iOS 점유율은 2012년 19%에서 지난해 15%로 밀렸다. 갈수록 확대되는 안드로이드의 영향력을 꺾어놔야 한다는 애플의 위기 의식이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