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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를 가다]①'혁신 DNA' 어디서 왔나

  • 2014.06.02(월) 14:42

골드러시·반도체 태동에 이민자 급증
개방·조화, 나눔과 공유문화로 이어져

[미국 샌프란시스코 = 임일곤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모델로 꼽히면서 한국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코트라 사무소에는 정부기관이나 기업, 학교, 언론사 등의 방문 협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한국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진짜 경쟁력은 무엇인지 들여다봤다.[편집자]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주요 관광지 소살리토. 금문교와 알카트라즈 섬이 내다보이는 아름다운 해안가를 걷다 보면 '특별한' 벤치들이 눈에 들어온다. 벤치를 들여다 보면 의자마다 사람 이름과 문구가 새겨져 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사랑하는 이에게 전하는 글들이다. 

 

이 벤치는 누구나 1년에 800달러(82만원) 가량 내면 만들 수 있다. 소살리토 외 샌프란시스코 명승지에는 이처럼 주인 있는 벤치들이 많다. 미국식 기부 문화의 단편이다. 기부는 누구나 할 수 있는데 특히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을 거둔 기업가들이 많이 참여한다. 마크 저커버그(30) 페이스북 창업자와 부인 프리실라 챈(29)은 최근 저소득층 공교육 환경 개선에 쓰라고 1억2000만달러(약 1224억원)를 내놓기도 했다. 기부의 규모와 형태는 다양하다. 공원 잔디 깎기도 자원봉사로 이뤄진다.

소살리토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실리콘밸리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수많은 창업가와 엔지니어들이 한곳에 모여있다 보니 '정보의 공유'가 곧 남을 돕는 일이다. 회사 설립을 위한 인력 채용, 재무와 법률, 기업공개(IPO), 인수합병(M&A)에 관련된 사항부터 기술 자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나눈다.  

 

▲ 샌프란시스코 휴양지 소살리토 해안가를 걷다보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지점 곳곳에 기부로 만들어진 벤치를 볼 수 있다.

 

◇ 세계 각지서 이민자 몰려, 나눔·공유문화 싹터


남을 돕는 일은 '세계적 첨단 기술의 중심지' 실리콘밸리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화이트 해커 출신이자 현지에서 앱 보안 사업을 하고 있는 홍민표 SE웍스 대표는 나눔의 미덕을 '오리지널 해커 정신'에서 찾는다. 그가 말하는 해커 정신은 지난 1985년 리처드 스톨만이란 유명 개발자가 주도한 'GNU(GNU's Not Unix)'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을 가리킨다. 오픈소스(open source)와 같이 모든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해커의 기본 생각이 이 곳 사람들에게 배어 있다는 설명이다.

 

실리콘밸리에 나눔과 공유 문화가 형성된 것은 공동체가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온화한 기후의 실리콘밸리는 원래 살구나 자두, 체리 등을 재배하는 과수원이 펼쳐진 시골이었다. 이 지역이 첨단 기술의 산실로 변모한 것은 지난 1950년대 중반 '페어차일드 반도체'가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부터다.


반도체 산업으로 막대한 규모의 부를 창출한 실리콘밸리는 이후 PC(IBM, 애플, MS)와 인터넷(넷스케이프, 야후, 구글), SNS(페이스북, 트위터)로 진화하면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한다. 이 과정에서 세계 각지의 엔지니어와 창업자 및 투자자들이 모여 든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이주해 온 이들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크고 작은 대립이나 물리적인 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사회적 안정과 발전을 위해 양보와 배려의 중요성이 커지게 된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네트워킹 및 정보와 노하우의 공유, 아이디어의 유통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다민족 문화의 개방적인 사회로 변모하게 됐다. 외국인과 소수 인종을 차별하지 않는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 것이다. 남을 도와야 자신도 더불어 살 수 있기 때문에 조화가 강조되고 대신 개인주의는 한발 뒤로 물러나게 됐다.

 

▲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본사 내부.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다양한 인종의 엔지니어들이 조화롭게 근무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 제2의 골드러시, '실리콘밸리 배우자' 열풍


사실 실리콘밸리는 반도체 산업이 태동하기 전부터 외지인들이 모여들었다. 캘리포니아는 남북으로 시에라네바다 산맥이 가로지른다. 1848년 시에라네바다 산맥 한자락에서 금광석이 발견되면서 골드러시가 시작됐다. 미국 동부지역 뿐 아니라 중남미와 유럽,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이들이 운집했다. 골드러시 전 1만2000명(인디언 제외)에 불과하던 캘리포니아 인구는 7년후 30여만명으로 불어난다.

 

실리콘밸리에서 10여년간 사업을 해온 이구형 뉴로스카이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금을 캐러 이역만리에서 목숨을 걸고 찾아온다는 것은 한탕주의와 모험주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골드러시 때 실리콘밸리로 몰려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벤처인의 기질을 갖고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는 뛰어난 기술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성공이 보장되는 기회의 땅이라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다. 이 곳에는 젊은 한국인들의 모임도 형성돼 있다. ‘Bay area K 그룹’ 이라는 기술 관련 분야 종사자 한국계 모임은 2007년에 만들어져 현재 26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많이 들어와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를 포함한 크고 작은 기업 60여곳이 판매 유통 법인이나 연구센터 등을 세워놨다.

 

정부 및 산하기관과 대학, 기업들의 방문도 줄을 잇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내세우면서 이 개념과 맞닿아 있는 혁신을 배우기 위해서다. 김병호 실리콘밸리 코트라 IT센터장은 "실리콘밸리가 크게 부각되면서 한국에서 찾아오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며 "지난 해에만 5000명 이상이 IT센터를 방문했고, 올해 들어서도 5월 현재까지 3000명이 다녀갔다"고 소개했다. 

 

▲ 실리콘밸리 중심도시 새너제이에는 한국 기업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코트라 IT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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