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통신비 체계를 데이터 중심의 이용환경을 반영해 대폭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과거 음성과 문자서비스에 초점을 맞춰 부과했던 기존 가계통신비 개념을 새로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5G시대가 되면 데이터 이용률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가계통신비 체계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과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일 공동주최한 ‘제4차 산업혁명과 통신정책의 혁신’ 토론회에서는 스마트폰 보급 확대로 인해 통신환경이 데이터 위주가 된 만큼 그에 걸맞게 가계통신비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내용이 논의됐다.
우리나라 가계통신비 체계는 UN과 OECD 등의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1993년 만들어진 ‘목적별 소비지출 분류(COICOP·코이캅)’를 따르고 있다. 이 분류 체계는 통신의 개념을 ‘우편서비스, 통신장비, 통신서비스(이동전화, 인터넷, 유선전화)’ 로 규정하고 있다. 데이터 이용도 통신 개념에 포함되는 것이다.
문제는 통신사용이 단순 유무선전화서비스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오히려 음성통화보다는 데이터 위주의 사용량이 늘어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데이터 트래픽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음성 트래픽 비중은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세계 데이터와 음성 트래픽 비중은 각각 97.2%, 2%다.
미래창조과학부 조사에 따르면 ‘이동통신서비스 이용을 위해 포기 가능한 활동과 서비스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독서(47.2%), 음주(44.7%), 간식(43.6%), 스포츠(29.6%), 수도(27.3%) 등으로 응답해 데이터서비스에 대한 가치를 높게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27%는 씻는 것보다 데이터 서비스 이용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현재 데이터 이용까지 통신비용에 포함되면서 통신비에 대한 가계부담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일반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3%가 ‘통신비 인하’를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변재일 의원은 “기존에는 음성통신비용만 산정됐는데 통신비 범위에 인터넷까지 포함되면서 가계통신비 부담이 늘어나게 됐다”며 “이러다보니 선거 때마다 통신비 절감이 화두가 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미 해외국가들은 통신서비스 성격에 따라 유무선전화이용료와 데이터이용 등을 구분해서 비용을 책정하고 있다. 미국은 유무선전화서비스를 ‘공익·연료·공공서비스’에 인터넷 서비스는 ‘주거운영‘으로 항목을 따로 만들어 시행한다. 호주도 유무선전화서비스는 ’가사서비스‘에, 인터넷 서비스는 ’오락‘ 항목에 포함시켜 비용을 구분해서 책정한다. 일본도 인터넷 서비스를 ’교양·오락서비스‘로 분류하고 있다.
임주환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장은 “우리 요금체계는 2G도 아닌 1G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현재 UN에서는 코이캅(COICOP. 목적별소비지출분류)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UN전문가그룹에서 개정을 위한 일정계획을 수립중에 있으며 내년 5월까지 최종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개정안이 최종 승인되어 시행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는 “UN의 코이캅 개정과 맞물려 국내에서도 통신비와 관련된 산업분류 및 통계분류 체계를 개편하려는 논의가 절실하다”며 “과거에 1만원을 갖고 전화통화에만 썼다면 지금은 1만원으로 더 다양한 분야에 사용할 수 있는 만큼 구시대적인 요금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부는 지난해부터 ‘데이터 중심 이용환경을 반영한 가계통신비 개념 재정립’에 관한 정책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해외 통신 분류체계 등을 파악해 우리나라에 맞는 통신비 분류체계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전영수 미래부 통신이용제도과 과장은 “변화된 통신 이용환경을 정확히 진단해 가계통신비 개념을 재정립하겠다”고 밝혔다.
통계청도 ‘코이캅 케이’(한국판 COICOP)의 개정을 추진중이다. 지난 2009년 1차 개정한 뒤 지난해 6월 가계동향 및 소비시장 변화를 반영한 개정초안을 마련했다. 향후 전문가 그룹 보고와 UN통계위원회 상정을 통해 개정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차진숙 통계청 통계기준과 과장은 “새로운 통신비 체계의 표준분류를 마련하려면 국제분류를 기반으로 작성해야 하는 만큼 2019년 이후에나 국내분류 개정안 확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