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양자암호통신 기술을 활용해 해킹 위험성을 현저히 낮추는 반도체 칩을 개발했다. 기존에 나온 수백, 수천 달러의 제품에 비해 가격이 획기적으로 줄었고, 크기는 손톱보다 작아 스마트폰을 비롯해 드론이나 자율주행차 등에 쉽게 탑재할 수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21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 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세계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양자난수생성' 칩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칩은 현대 물리학의 뼈대를 이루는 양자역학의 원리를 이용, 통신 데이터를 완벽하게 암호화해 송출하는 역할을 한다.
▲ SK텔레콤이 우리넷 등 중소기업들과 손잡고 개발한 5x5mm 크기의 양자난수생성 칩. |
보통 통신망을 통해 오가는 데이터는 난수(특정한 순서나 규칙을 가지지 않는 무작위 수)로 암호화한다. 대표적으로 인터넷뱅킹 등 금융 서비스를 위해 사용하는 공인인증서 등이 꼽힌다.
하지만 이 방식은 연산이 빠른 슈퍼컴퓨터 앞에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컴퓨팅 기술의 진화가 빨라지면서 아무리 어려운 암호도 쉽게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방패보다 더 강한 창이 나와 방어막을 무력화시킨다는 얘기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것이 양자역학이다. 기존 난수보다 더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불규칙한 순수난수(기존 난수 개념과 구분하기 위해 영어로 The Random Number로 부른다)를 만들어 방어막을 더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순수난수의 뛰어난 보안성을 깨달은 해외 각국에선 이를 생성할 수 있는 기기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껏 나온 기기는 크기가 데스크톱 컴퓨터 만큼 큰데다 가격도 일반인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대중화가 어려웠다.
SK텔레콤이 중소기업인 우리넷 등과 손잡고 개발한 기기는 크기가 5x5mm에 불과할 정도로 작다. 가격은 1만원에 못 미친다. 독자적 기술로 암호 생성에 드는 리소스를 최소화하고 협력사들의 반도체 제조 역량을 모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반도체칩 형태로 만들어 스마트폰이나 자율주행차, 드론 등 기기 내부 기판에 쉽게 장착할 수 있다. USB 형태로도 만들어졌는데 노트북에 꽂아서 사용할 수도 있다. 일반인이 쓰는 제품도 통신 데이터를 암호화해 보안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통신 암호화가 중요해진 것은 4차산업혁명 핵심 분야라 할 자율주행차나 드론 등이 해킹을 당하면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거나 무서운 무기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이 양자난수생성기를 저렴한 가격대의 소형 반도체칩 형태로 만든 것은 다양한 사물인터넷(IoT) 제품에 우선 적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산업용 드론과 같은 중요한 제품은 통신 인증을 위해 자신의 고유값을 기지국에 알려줘야 한다. 고유값은 반드시 암호화해야 하는데 기존 방식의 난수 암호라면 해킹의 위험이 크다. 그러나 양자 난수를 활용하면 해커가 난수를 탈취하더라도 활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SKT측 설명이다.
SK텔레콤은 다양한 보안 업체들과 손잡고 양자난수생성 칩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추진 중이다. 아울러 해외 광통신 시장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달 양자암호 장거리 통신을 위한 전용 중계장치를 개발하기도 했다.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17’에서는 노키아와 양자암호기술 기반의 '퀀텀 전송 시스템'을 공동 개발하고 차세대 광전송 장비에 양자암호기술을 탑재하기로 했다.
SK텔레콤은 중소기업인 ‘우리로’와 단일광자검출 핵심소자를 2013년부터 공동 개발하고 있으며, ‘우리넷’ ∙ ‘코위버’ ∙ ‘쏠리드’ ∙ ‘에치에프알’ 등과는 국산암호 알고리즘이 탑재된 양자암호통신 전송 장비도 함께 만들고 있다.
박진효 SK텔레콤 네트워크 기술원장은 “인공지능, 자율주행 등 데이터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올 것을 예측했고, 이런 중요한 데이터 송수신을 위한 암호의 중요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믿었기에 양자암호 기술개발에 집중했다”며, “향후 중소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양자암호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