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가 1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해외에서 유치합니다. 1조원은 국내 1위 케이블TV 회사 CJ헬로 정도는 살 수 있는 돈인데요.
이걸 어디에 쓸지는 카카오가 이미 밝힌 바 있으니, 투자유치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대규모 자금을 외부에서 유치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려는 기업이나 이런 사안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카카오는 18일 10억달러(약 1조원) 규모의 해외주식예탁증서(GDR·Global Depositary Receipts) 발행 조건을 확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작년 12월15일 카카오는 GDR을 발행한다고 공시한 이후 싱가포르와 홍콩, 뉴욕, 런던,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로드쇼(투자 설명회)를 개최했는데요.
당초 36회로 예정했던 투자자 미팅은 현지에서 '폭발적 관심'에 따라 55회까지 늘어났다고 합니다.
투자자들은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이 한국 1위 메신저라는 것은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하고 있고 글로벌 시장에서 어떤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상세히 알고자 했다고 합니다.
카카오는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만화 플랫폼 '픽코마'를 글로벌 가능성으로 내세웠다고 하고요. 카카오가 세계 1위 암호(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2대 주주라는 사실도 인기 요인 중 하나였다고 하죠.
카카오 관계자는 "세계 각지에서 골고루 인기가 있었고, 로드쇼 마지막 날까지 미팅 요청이 쇄도했다"며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로드쇼 이후 실시한 수요예측에선 대규모 청약이 이어져 계획보다 빨리 GDR 발행조건을 확정했다는 게 카카오의 얘기입니다. 청약 기간이 원래는 18~23일까지였는데 18일에 끝났습니다. 납입기일도 당초 24일에서 23일로 하루 앞당겨졌죠.
다만 카카오 입장에서 살짝 아쉬운 대목도 있습니다.
지난달 공시 당시 DR의 모집가액은 주당 14만4000원이라고 기재했는데, 이번 수요예측이 끝난 뒤 12만9004원이 된 점입니다.
이번 투자유치는 유상증자와 비슷한 까닭에 DR 주당 가격이 하락하면 할수록 신주 발행량이 늘어나므로 실제 카카오 주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요. 카카오 DR의 모집수량은 14만4000원이 기준일 때(754만6520주)보다 71만5211주가 늘어난 826만1731주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살펴봅시다.
모집가액은 투자자 수요와 기준주가 등을 토대로 일정 비율을 할인해 제시합니다. DR은 발행 기업에 대한 시장 반응은 물론 유동성이나 현금화의 특수성을 고려해 기존 주식보다 할인된 가격에 나온다는 설명입니다.
특히 우리 금융당국은 해외 DR 발행 관련 해외시장상황에 따라 기업이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DR을 기준주가보다 최대 10%까지 할인 발행할 수 있게 합니다.
카카오는 이날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지난 17일 종가(13만4000원) 대비 3.7% 할인된 것이라고 밝혔지만, 공시를 보면 기준주가에서 9.4%를 할인해 발행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할인해줄 수 있는 최대치에 근접한 셈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해외 투자자들의 수요를 파악한 결과 기준주가보다 9.4%는 싸게 내놔야 DR이 팔리겠다는 계산이 나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목표 유치 금액을 하향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기준주가는 GDR의 청약일 전 과거 3거래일부터 5거래일까지 가중산술평균주가인 14만2458.75원입니다. 그러니 최근 주가 흐름이 더욱 아쉽다는 분석입니다.
물론 앞서 제시됐던 14만4000원은 DR 발행을 결정하기 전날인 지난달 14일 종가를 참고로 기재한 것에 불과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카카오의 DR 관련 행보는 업비트의 폭풍성장에 따른 수혜를 거의 받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카카오 주가는 지난 8일에는 15만9500원을 찍기도 했는데, 지난 11일엔 14만500원에 장을 마쳤습니다. 도루묵이 된 셈이죠. 지난 11일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등을 거론해 관련 시장이 크게 출렁인 날입니다.
카카오가 두나무의 2대 주주라는 점에서 앞으로 대규모 지분법 이익 발생도 예상됐으니 더욱 아쉽겠죠.
삼성증권은 업비트의 지난해 12월 일평균 거래액 5조원과 카카오의 추정 지분율 23.2%를 기준으로 작년 4분기만 200억원가량의 지분법 이익이 카카오 연결 실적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습니다.
참고로 지분법 이익은 영업이익에는 영향을 안 주지만 당기순이익에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카카오가 100억원 당기순이익을 내는 망고라는 회사 지분을 20% 가지고 있으면, 20억원이 카카오의 당기순이익에 반영되는 식입니다.
지금까지 설명은 살짝 아쉬운 대목이 다소 있다는 것이고요.
이번 성과는 최근 10년 간 국내 기업이 해외 주식시장에서 조달한 사례 가운데 가장 큰 규모라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카카오의 올해 글로벌 행보와 함께 암호화폐 관련 시장의 움직임도 더욱 주목됩니다. 발행된 신주는 내달 1일 한국거래소에 상장되고, GDR은 다음날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 상장될 예정입니다.
박성훈 카카오 최고전략책임자(CSO)는 "해외 투자자들이 카카오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며 "향후 성장성과 수익성이 담보된 업체 중심으로 M&A를 추진하고 신성장 동력을 확보해 나감으로써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