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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스마트시티, 말로만 테스트베드

  • 2018.07.19(목) 14:16

모빌리티 롤모델 제시했으나 차량공유 빠져
"사회적합의 이후"…정부 중재자 역할 못해

자율주행차와 공유차, 자전거만 다니는 도로. 드론과 무인 교통수단, 로봇으로 이뤄지는 택배.
  
정부가 오는 2021년 입주를 목표로 추진 중인 세종시 스마트시티의 구상안이다. 4차산업혁명의 강력한 추동력을 일으키기 위해 관련 기술을 도시에 결집, 롤모델을 제시하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구상안을 보면 마치 공상과학(SF) 영화에 나올만한 모습이 그려진다. 더 들여다보면 세종시 연동면 합강리 일대에 들어설 스마트시티는 모빌리티(차세대 이동수단)의 천국이다. 일단 개인 소유 차량의 개념이 없다.

 

모든 소유 차량을 도시 진입로에 마련한 주차장에 놔두고 자율주행차나 공유차량 등으로 갈아타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소유차가 일으키는 교통 과밀이나 출퇴근 시간대 이용 효율성 저하, 대기오염 등을 막기 위한 차원이다. 
 
구상안에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민간기업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규제 샌드박스(일정기간 규제를 면제, 유예시켜주는 제도) 도입도 담겨 있다. 자유로운 실험 공간을 제공할테니 마음껏 혁신적 서비스를 구현해보라는 것이다. 전기, 수소차 등 다양한 이동수단과 관련 인프라가 도입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모빌리티 업계의 최대 관심사인 카풀(Carpool) 얘기가 쏙 빠져있다. 세종시 스마트시티가 강조하는 공유 철학에 차량공유의 핵심축이자 세계적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라이드쉐어링(Ride-sharing)'이 제외된 것이다.
 
차량공유는 크게 라이드쉐어링과 카쉐어링(Car-sharing)으로 구분된다. 라이드쉐어링은 우버 같이 차량과 기사를 한묶음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동 서비스'를 공유하는 개념이다. 카쉐어링은 차라는 자산을 공유하는 것으로 쏘카나 그린카 등의 단기 렌트카를 생각하면 쉽다. 세종 스마트시티에는 차량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카쉐어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차량소비 형태가 '소유'에서 '이용'으로 변화하면서 차량공유 시장은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지난 2016년부터 풀러스란 카풀앱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규제에 막혀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풀러스는 지난해 11월 유연근무제에 바탕을 둔 자유로운 영업시간 확장에 나섰으나 택시 업계 반발로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16일 열린 스마트시티 발표 행사에서 카풀 도입 여부에 대한 질문이 나왔으나 정부는 "법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서비스는 사회적 합의를 거친 이후에 진행할 것"이라며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그때 가서 도입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미뤄놓은 것인데 사실상 안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대통령 직속의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작년말부터 카풀과 택시 업계의 관계자를 모아 놓고 해커톤(마라톤 회의)을 진행하려 했으나 관련 안건이 채택되지 못하고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논의해야 할 당사자인 택시 업계가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어서다.

 

규제에 막혀 힘을 쓰지 못하는 카풀 업체에 스마트시티는 그나마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제대로 못해 사회적 합의는 난망, 이 과정에서 카풀 산업은 급속하게 기반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풀러스는 적자 누적으로 경영난에 허덕이면서 얼마전 구조조정에 나섰고 대표이사도 물러나기로 했다.

 

해외 상황과 대조적이다. 구글은 우버와 디디추싱에 동시 투자, 자회사간 경쟁구도를 형성하면서까지 시장을 장악하려고 혈안이다. 미국의 우버와 리프트, 중국의 디디추싱, 싱가폴의 그랩 등은 자국 내 주요 도시를 포함해 세계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카풀 서비스는 워낙 성장 가능성이 높아 쟁쟁한 기업들의 투자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동남아판 우버라 불리는 그랩은 삼성전자와 현대차, SK 등 국내 대기업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거나 수백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할 정도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토종 카풀은 달리지 못한채 주저앉고 있다. 규제를 최소화하면서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자유롭게 구현하라는 스마트시티조차 받아주지 않고 있으니 말 다했다. 스마트시티가 혁신적이고 새로운 서비스를 시험할 수 있는 이른바 테스트베드라고 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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