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가상화폐 공개(ICO)를 전면 금지한 이후 1년 넘게 관련 정책을 방치한 정부 기조에 변화가 감지되면서 ICO 합법화에 실리는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도 높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요 블록체인 협회를 사단법인으로 인가한 데 이어 국무조정실이 다음 달 ICO에 대한 정부 입장을 내놓기로 해 어떤 정책방향이 나올지 주목된다. 핫(Hot) 이슈로 부상한 ICO의 개념을 비롯해 도입 필요성, 주요 쟁점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
가상화폐 공개(ICO)가 합법화되려면 규제 및 과세 방안 검토가 필수다. 돈 세탁 등 불순한 목적을 가진 투자자, 사기성 ICO를 거르는 규제는 물론 ICO 수익에 대한 과세방안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이다. 건전한 거래질서를 확립해야 법적으로 인정받고 제도권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이렇게 ICO를 규제, 과세하는 방식은 국가마다 천차만별이다. 투자자 신원 확인과 제한, 사업계획 설명 등을 의무화하는가 하면 투자금액 상한선을 둔 곳도 있다. 과세 방안도 가상화폐의 성격을 어떻게 정의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 투자자 신원 확인 필수…금액 제한까지
가상화폐 거래는 중앙기관의 통제를 받지 않는 특성상 관련 기록을 추적하기 어려워 불법 행위에 악용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자금 세탁, 테러 지원 등을 위해 ICO에 참여하는가 하면 ICO 추진 기업 자체가 사기성 프로젝트로 자금을 모집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ICO 추진업체는 불법 행위를 노리는 투자자 참여를 막기 위해 자체적으로 신원 확인 제도인 KYC(Know Your Customer)를 실시한다. 신상과 가상화폐 지갑 주소, 신분증 사진 등을 요구하는 절차다. 아울러 ICO 프로젝트 계획을 소개하는 백서를 투자자에게 공개해 사기업체가 아님을 입증하기도 한다.
KYC와 백서 공개는 ICO의 기본 절차로 자리 잡아 영국, 독일, 일본 등에선 별도로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반면 ICO를 추진하기 전 금융 당국의 라이선스를 발급받아야 하는 싱가포르, 스위스, 프랑스 등에선 이 같은 사항을 필수로 요구하며 다양한 충족요건을 제시한다.
금전 손실을 감당하기 어려운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격을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주식과 성격이 유사한 증권형 토큰에 대한 투자자 자격 제한이 대표적이다. 증권형 토큰이란 투자자에게 경영 참여권과 지분, 배당 등을 주는 가상화폐를 말한다. 높은 수익과 권리를 제시하는 만큼 위험이 큰 경우가 많다.
미국은 증권법상 적격 투자자 제도를 적용해 증권형 토큰 투자자를 제한한다. 적격 투자자 제도란 사모펀드 투자자를 금전 손실을 감당할 능력을 갖춘 은행, 투자회사, 순 자산 100만달러(11억원) 이상의 개인 또는 부부로 한정하는 법인데 이를 그대로 증권형 토큰 투자에도 적용한 것이다.
러시아는 한층 강도 높은 투자자 자격 제한을 도입, 전문기관이 아닌 개인 투자자의 투자금액의 상한선을 도입하기도 했다. 일반인이 ICO에 참여할 경우엔 최대 5만루블(86만원)까지만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 화폐·재화·자산 규정 따라 세금 부과
가상화폐 발행 및 투자 과정에서 ICO 추진업체와 투자자가 소득을 올리는 만큼 세금을 부과할 방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상화폐의 성격을 규정한 후 어떤 세목을 적용할지 판단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가상화폐는 화폐, 재화, 자산 중 하나 또는 여러 성격을 동시에 지니는 것으로 규정된다. 이중 화폐로 구분되면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재화로 보면 가상화폐 판매에 부가가치세를 적용한다. 자산으로 분류되면 가상화폐 판매와 투자에 소득세, 법인세, 자본이득세 등이 적용된다.
현재 한국 정부는 가상화폐를 화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산이나 재화로 봐야 한다고 명시한 것도 아닌 상태다. 결과적으로 ICO 추진업체와 투자자에 별 다른 과세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면 미국은 2014년 가상화폐에 대한 과세 기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가상화폐를 주식과 같은 자산으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가상화폐 판매에 대해 소득세를 부과하고 투자엔 자본이득세를 부과한다.
일본은 2016년 자금결제법 개정안에서 가상화폐가 자산과 같은 가치를 갖는 것으로 정의 내렸다. 그러면서 가상화폐 판매 및 투자로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 개인에겐 소득세를, 기업엔 법인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싱가포르는 가상화폐를 상품 및 서비스를 교환할 수 있는 비물리적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보면서 자산이자 재화의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정의했다. 자산으로 보면서 소득세를 과세하는 한편, 재화로도 분류하며 물건이나 현금 거래에 사용된 경우 부가가치세를 매긴다.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