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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ICO]②해외 갈수 밖에 없는 기업들 '이중고'

  • 2018.10.17(수) 16:17

현지 법 맞추느라 시간·비용 부담
해외에 기술·고용효과 내줄 수도

작년 9월 가상화폐 공개(ICO)를 전면 금지한 이후 1년 넘게 관련 정책을 방치한 정부 기조에 변화가 감지되면서 ICO 합법화에 실리는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도 높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요 블록체인 협회를 사단법인으로 인가한 데 이어 국무조정실이 다음 달 ICO에 대한 정부 입장을 내놓기로 해 어떤 정책방향이 나올지 주목된다. 핫(Hot) 이슈로 부상한 ICO의 개념을 비롯해 도입 필요성, 주요 쟁점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

 

이용자가 자신의 신체정보를 제약회사에 넘기면 가상화폐를 주는 시스템을 개발 중인 블록체인 기업 대표 A씨. 그는 프로젝트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해외에서 가상화폐 공개(ICO)를 추진하면서 진땀을 뺐다. 낯설기만 한 타국의 법과 제도에 맞춰 준비하는 과정이 복잡했던 것. 프로젝트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이용자 신체정보 비식별화(익명 처리) 등 핵심 기술을 현지 당국과 은행, 로펌, 컨설팅업체와 공유하는 것 또한 영업 기밀이 샐까 봐 꺼림칙했다.

 

국내 ICO 전면 금지를 피해 해외로 나간 블록체인 기업이 업무 추진과정에서 실제로 겪는 일이다. ICO는 기업 공개(IPO)를 비롯한 전통적인 자금 조달 방안에 비해 쉽고 빠르게 진행되는데도 국내기업은 해외로 나가는 부담을 떠안느라 이점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현지의 법과 제도를 일일이 확인해 사전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데다 추진과정에서 기술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 아울러 현지에선 국내기업의 ICO 업무 수주로 고용이 확대되는데 정작 국내에선 일자리 창출 효과를 볼 수 없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 현지 사정 깜깜해 부담

 

ICO는 추진 전 맞춰야 하는 재무상태 요건이나 사전 심사 문턱이 비교적 낮다. ICO와 유사한 자금 조달 수단인 IPO가 한국거래소 예비 심사 등 까다로운 절차를 밟느라 1년 넘게 걸리는 것에 비하면 빠르게 진행된다.

 

ICO를 해외에서 추진하는 경우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ICO를 진행하기 전에 현지 사정을 파악해야 하는 부담이 생기기 때문이다. 국내기업이 모르는 현지의 법과 제도를 하나하나 따지느라 ICO로 자금 조달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반감된다는 얘기다.

 

예컨대 ICO 관련 법은 느슨하더라도 금융업, 부동산업 등 특정 산업에 대해선 강도 높은 규제를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 ICO를 통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이들 업종에 해당하면 규제에 걸릴 여지가 있어 꼼꼼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현지 은행의 계좌 발급 여부, 세금 및 회계 처리 방식 등도 확인해야 한다.

 

이 같은 자세한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기업은 국내뿐만 아니라 현지 로펌과 ICO 컨설팅업체에도 사전 검토를 맡긴다. 이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물론 비용도 적지 않게 들어간다.

 

조원희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는 "ICO 추진을 위한 국내외 법률비만 1억원 가까이 들어가며 해외 법인 설립을 포함한 전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은 대개 2억원이 넘는다"면서 "기술력은 갖췄으나 자본이 부족한 스타트업엔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가뜩이나 성장 초반인 블록체인 기업엔 해외에서 ICO를 추진하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백서 사전 심사를 도입하는 등 절차가 강화되더라도 국내 법 테두리 안에서 ICO를 추진할 수 있길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해외 ICO를 진행한 IT회사 관계자는 "해외에서 업무를 추진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결과적으로 기업의 의사 결정이 지연되는 문제가 생긴다"면서 "블록체인 사업을 하는 대다수 회사는 국내에서 가이드라인 도입을 거쳐 ICO를 추진할 수 있길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 남의 나라 좋은 일 시킨다

 

현지 당국에 사업을 보고하고 로펌, 컨설팅업체와 함께 ICO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사업계획서인 백서를 전달, 설명하면서 영업 기밀이 샐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 기술 정보를 입수한 타국 정부나 기업이 이를 활용해 국내기업의 경쟁력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

 

김진우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당국에 사업 보고를 올리는 과정에서 투자자도 모르는 기밀한 정보까지 말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면서 "일부 현지 컨설팅업체는 비밀유지서약서를 따로 쓰지 않으면 사업정보를 외부에 누설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렇게 국내기업의 ICO 업무를 수주하면서 현지에선 로펌, 컨설팅업체를 비롯한 여러 관련 업체가 성장하고 결과적으로 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선 ICO에서 파생되는 일자리 창출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점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이끄는 한국블록체인협회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블록체인 기술의 고용 파급 효과 연구'를 통해 국내 ICO 금지 등 블록체인 규제를 풀면 관련 분야 일자리가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 교수는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블록체인 ABC 코리아 정책 세미나'에서 "지난 9월 기준으로 국내 29개 ICO 프로젝트에서 599개의 일자리가 생겼다"면서 "국내 ICO를 허용하면 관련 일자리를 보다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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