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중심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데이터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무의미한 '동의' 절차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테크 자이언트(거대 기술기업)라 불리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흘러 나왔다.
29일 서울 을지로 페럼타워에서 진행된 정보통신정책학회 주최 '2019 ICT 정책-지식 디베이트' 3차 디베이트에서는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한 국내외 데이터 거버넌스(governance) 상황을 짚어보고, 규제의 기본 방향에 대해 토론했다.
정보 활용처 모르는 '동의' 의미없다
특히 이날은 유럽에서 지난해부터 실시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에 대한 논의가 눈길을 끌었다. EU는 GDPR을 통해 기업이 데이터를 수집해 처리할 때 수집 이유를 이용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EU의 GDPR을 준수하기 위해 개인정보보호법을 국제적 수준에 맞춰 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날 고려대학교 김기창 교수는 GDPR이 국내에 익숙한 접근 방법이지만 근본적인 이용자 보호를 위해서는 '동의'라는 절차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색다른 시각을 내놨다.
김기창 교수는 "과연 동의라는 것이 데이터와 관련해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용자들은 내 개인정보가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 이를 동의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고 일갈했다.
개인정보의 사용처를 정확히 알리지 않으면서 이용자들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결국 제대로 된 정보보호라고 할 수 없다는 의미다. 동의를 구하는 것 자체가 정보주체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불공평한 처사라는 것.
그는 "사업자가 어떤 정보를 어떻게 수집했든지 이용자에 해가 되는 방향으로 사용될 경우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법률적 접근"이라며 "사전 동의 대신 처벌에 집중한다면 비용 줄어들고 공평한 경쟁 시장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균관대학교 박민수 교수도 이같은 의견에 동의한다면서 "의료 정보 논쟁에서도 일반 시민들은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어 불안해 정보 제공을 반대한다"며 "정부가 나서서 가이드라인을 정해주고 처벌 규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동아대학교 류민호 교수는 "이용자들의 포괄적 동의는 무용할지 몰라도 동의 절차가 중요한 이유는 개인정보를 제공하는데 따른 득실이 뭐가 큰지 결정하는 것은 개인차가 있기 때문"이라며 "그 기준을 정부가 아닌 이용자들에게 권한을 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반박했다.
"테크 자이언트 vs 스타트업…공정 경쟁 불가"
테크 자이언트의 데이터 독점이 문제가 되느냐에 대한 찬반 논의도 이어졌다.
김기창 교수는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데이터 수집 단계에서 기본적으로 막강한 자원과 자금력이 뒷받침되는 테크 자이언트와 그렇지 못한 플레이어 간 공평한 경쟁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 최근 테크 자이언트가 문제가 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수집 단계에서 들어가는 비용은 물리적인 비용과 제도적인 비용으로 나뉜다. 물리적 비용이란 말 그대로 자료 수집을 위해 투입되는 자본, 말 그대로 돈이다. 기상 관련 데이터 수집을 위해 투입되는 설비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달리 제도적 비용은 사람들의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다. 이 경우 단순히 돈만 투자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업자라도 테크 자이언트처럼 플랫폼을 확보하고 네트워크에서의 우위를 선점한 사업자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공정한 경쟁 구도는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박민수 교수는 플랫폼 사업자들이 적은 비용으로 투자해 많은 이득을 얻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데이터 독점이 문제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박민수 교수는 "정유회사가 원유를 추출하는 시설을 구축할 때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데, 이 시설이 없다고 다른 기업에서 이를 공유하자고 하지는 않는다"면서 "데이터라는 것은 정유 시설과 같이 하나의 생산요소인데, 이를 많이 갖고 있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고 주장했다.
이어 "플랫폼 역사를 보면 야후를 대신해 구글이 생기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일정 규모 이상의 네트워크를 가진 사업자들이 더 쉽게 추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네트워크 효과는 존재하지만, 새로운 기업들이 등장해 성장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큰 진입장벽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