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생각하는 통일은 무엇인가. 단순히 '통일=정치적 통일'로 생각하진 않는가. 현 남북 상황을 고려할 때 정치적 통일은 힘들다는게 지배적이다. 통일비용까지 고려하면 우리 국민 상당수도 정치적 통일을 꺼려할 것이다. 그래서 남북경협을 통한 경제통합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일각에선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북경협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남북관계 경색 분위기 속에서도 남북경협은 끝임없이 고민해야 할 숙제다. 그래야 막상 기회가 올 때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삼일회계법인과 SGI컨설팅이 공동 진행한 '남북경제협력 최고경영자과정'에서 발표됐던 내용을 중심으로 남북경협 노하우를 살펴본다. [편집자]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마음으로,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태호 삼일회계법인 부대표 겸 남북투자지원센터장은 남북경협에 임할 자세를 이 같이 당부했다. 정권교체, 북미관계 등 외부요인에 따라 남북경협 변화가 심한 만큼, 눈 앞에 보이는 현상에 함몰되지 말고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부대표가 남북경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8년이다. 그해 개성과 평양을 방문하면서 북한 경제사업 담당자인 민경련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는 북한 현장 모습을 보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향후 남북경협이 확대되고,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을 선택한다면 부동산이나 사회간접자본(SOC) 시장이 열릴 것으로 판단했다. 이를 통해 삼일회계법인에서 컨설팅 서비스가 가능하겠다고 생각, 회계법인 중에선 최초로 '대북투자지원팀'을 만들었다.
이 부대표는 "의욕적으로 대북투자지원팀을 만들기는 했지만 대북 사업 환경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면서 "북한의 미사일 실험, 개성공단 단기 출입제한, 금강산 관광 중단 등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후 북한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를 정리하고 그동안 북한 지역에서 투자하며 사업을 추진했던 여러 기업들의 사례를 연구해 2010년 '삼일회계법인이 제안하는 대북투자 10계명' 책을 발간했고, 2013년 중국의 북한 진출사례를 통해 우리 기업의 전략을 모색해 보고자 '개성에서 나진까지' 책을 출간했다. 2019년에도 회계학과 교수들과 공동 작업하면서 국내 최초로 북한 회계학 교과서를 입수, 우리 회계기준과 비교해 보는 '북한회계의 이해'를 발간했다.
실무로는 개성공단이 처음 시작된 2004년 무렵부터 개성공단의 입주 기업을 대상으로 한 회계 검증업무와 북한 내륙에 투자하는 기업 중에서 중국을 경유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투자자문을 실행했고, '나진-하산 프로젝트' 재무자문도 수행했다. 또 2016년 갑작스러운 개성공단 폐쇄로 인해 공단에서 나온 기업들의 피해실태를 조사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기업들과 공공 기관들의 사업 특성에 맞는 북한 투자 자문과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삼일회계법인 내부적으로는 2015년 대북투자지원팀을 '남북투자지원센터'로 확대 개편해 조직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했고, 향후 북한 투자 사업에 대한 완벽한 자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개성공단 및 경제특구지원, 금강산 등 관광지구 개발지원, 인프라 및 자원개발 지원, 공공기관 지원, 북한 법률 회계 세무 지원, 국제금융지원 등 전문가 조직을 구성했다.
이 부대표는 "남북한은 한민족이라고 해서 언어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분단 이후 일상용어, 전문용어의 차이가 심화됐다"면서 "과거 작성된 남북합의서를 보더라도 각자의 표현대로 합의서를 각각 쓰고 부록에 차이나는 용어에 대한 설명을 주석으로 쓰는 방식이 적용됐을 정도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남북경협을 위해선 회계, 경제개념의 통일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부대표는 한발 나아가 지속가능한 남북경협을 추진하기 위해선 북한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정은 정권 하에선 정치적 체제 안정을 유지하려 할 것이며, 개혁개방을 할 때에도 일부지역에 한정된 모기장식 개혁개방 정책을 펼칠 것이란 분석이다. 또 북한이 중시하는 자력갱생, 제재상황 극복노력을 생각해보는 등 북한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남북경협을 이어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부대표는 "현 단계에서 우리는 북한의 특성, 환경, 수용능력을 고려해야 하며 다양한 인적 교류를 통한 상호간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벤트성 교류를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과 관계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남한의 경제 개발과정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전수하고, 북한의 체제 안정 니즈를 감안한 단계별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부대표는 단계별 전략으로 패키지 딜 사업을 제안했다.
단기적으로는 북한 생산광구의 경제성 있는 지하자원을 획득 판매하고, 철도·도로 인근 지역시장을 현대화 시키거나 유통사업에 참여하는 전략을 제안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인프라건설에 참여하면서 개발권, 운영권을 획득하고 경제특구 연결도로 건설과 산업단지 운영권·물류 유통사업권을 얻는 패키지 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항만건설에 참여하면서 배후부지 사용권을 갖거나, 관광지 연결도로를 건설하면서 관광사업권·관광 부대시설 운영권을 갖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나진-하산대교 건설을 해주면서 나진항 3호부두 운영권을 요구해 보유했던 사례가 있다.
이 부대표는 대규모 인프라 개발사업비를 충당하기 위해선 남북협력기금 적립방식을 변경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2019년도 남북협력기금은 1조1000억원으로 전년비 14% 증액됐다. 하지만 당해 불용액은 다시 국고로 환수된다. 올해처럼 남북관계가 안좋을 경우에 남북협력기금의 상당비중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 부대표는 "남북협력기금의 불용액 또는 GDP의 일정부분을 관련 재원으로 적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다만 국민적 조세저항과 부담을 감안해 충분한 검토와 의견수렴으로 국민적 합의를 얻어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남북경협을 준비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삼일회계법인 내 남북투자지원센터를 확대 개편하면서 북한 투자를 준비하거나 관심있는 기업인, 조직의 리더를 대상으로 하는 전문가 과정을 만들겠다고 구상했다"면서 "삼일회계법인이 운영하는 남북경협 최고경영자과정을 만들어 2015년 상반기 1기 과정을 시작했고 올 하반기 10기 과정까지 끝마쳤다"고 말했다.
그는 "1기가 시작될 무렵 남북관계는 대단히 경색됐고 남북경협도 어렵게 진행되던 상황이라 과정 운영이 쉽지 않았지만, 남북경협의 중요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많은 기업인들이 참여했다"면서 "이 과정에서는 북한에 대한 정치적인 이야기보다는 경제와 산업을 이야기했고, 북한 투자에 대한 장밋빛 전망과 대박을 이야기할 때 실질적인 투자재원 마련 방법과 회수 방안을 먼저 고민하는 등 차별화를 꾀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2년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남북경협 관련 조직이나 부서들이 통폐합되거나 축소·조정되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 점은 씁쓸한 대목"이라면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치·군사·외교적 측면에서의 국제 갈등은 더 나은 관계형성과 사업 기반조성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 아닐까 생각하므로, 내년 상반기 모집될 11기 과정은 지금보다 조금 더 심도있는 북한 비즈니스 과정으로 구성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시리즈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