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알뜰폰입니다. 얼마전 '30% 저렴한' SK텔레콤의 언택트(비대면) 요금제 출시와 맞물려 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거 같네요.
우선 제 소개부터. 알뜰폰. 착실하고 헤프지 않은 느낌이죠. 제 이름은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라는 어려운 용어 대신 국민 누구나 이해하도록 이렇게 지어졌습니다. 2012년에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홍보 용어로 붙여준 애칭입니다.
저는 국민의 가계통신비 절감을 위해 제도적 차원에서 설계됐습니다. 방통위가 2010년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하면서 제가 태어났죠.
마치 항공기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같은 국적기 부류가 있고, 이보다 서비스 품질은 다소 떨어질지 모르나 가격이 저렴한 저가항공사가 있듯이 말이죠. 저는 이동통신망사업자(MNO)인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보다 저렴한 요금을 찾는 소비자를 위해 태어났습니다.
어떻게 통신비가 싸냐구요? MNO와 달리 통신망을 직접 구축하지 않고 이들의 망을 임대하기 때문이죠. 망 구축비가 절감되니 그만큼 저렴합니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 일찌감치 저를 주목했습니다. 가계 통신비가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나니까요.
1997년 세계 처음으로 MVNO 서비스를 시작한 노르웨이 'tele2'라는 업체. 당시 이 회사는 시장 최저 통신 요금보다 40%나 할인된 가격으로 서비스를 했는데요. 위기감을 느낀 기존 MNO들이 요금을 앞다퉈 내리는 등 경쟁을 했습니다. 그 결과 3년 만에 노르웨이의 분당 최저 요금은 기존보다 66% 하락했습니다.
다른 유럽과 북미 국가들도 이러한 현상을 유심히 보면서 MVNO를 도입했는데요. 마침 가구당 통신요금이 연간 200만원을 웃돌아 통신비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요구가 각계에서 빗발치던 우리나라에서 저를 주목할 수밖에 없었죠.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실속파 고객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멤버십 할인이나 공짜 영화 티켓 제공 같은 다양한 혜택이 없지만 젊은층이 좋아할 만한 매력이 있습니다.
'약정' 기반이 아니다 보니 언제고 쉽게 해지하고 가입이 가능합니다. 보통 통신사 대리점에서 최신폰을 구매하며 요금제에 가입하면요. 2년 혹은 3년 동안 노예처럼 묶여 기기변경 등을 하기 어렵잖아요.
저를 찾는 고객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알뜰폰 이용자수는 900만명에 달했는데요. 통신 3사에 비해 규모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작지만 서비스 12년차를 맞아 어느덧 이용자 '1000만 고지'를 앞두고 있습니다.
요즘 걱정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습니다. 가계통신비 절감을 위해 통신사들에 요금 인하를 독려하는 정부 압박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이로 인해 SK텔레콤을 비롯한 통신3사가 작년말부터 나란히 저렴한 요금제를 내놓고 있습니다.
요금이 싸다는 점이 저의 강점이라고 말씀드렸죠. 비싼 5세대(5G) 통신비 부담을 피해 저를 찾는 고객이 마침 늘어나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통신 3사가 저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저렴한 금액의 5G 요금제를 하나둘씩 내놓으면서 제 입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들 통신사들이 저에게 '도매제공'을 안할 것처럼 발을 빼고 있어 가슴이 철렁일 때가 많습니다.
저의 요금 설계 구조는 대강 이렇습니다. 통신3사의 특정 요금제를 가져다 해당 요금제 가격의 일정 비율을 통신사들에 도매대가로 납부하고 어느 정도 마진을 붙여 해당 요금제를 재판매하는 것입니다.
최근 통신사들이 저렴한 신규 요금제를 내놓으면서 저에게 도매제공을 하지 않기로 방침을 내놓고 있어 걱정이 많습니다.
통신3사는 갑자기 왜 '변심'을 한 것일까요. 그동안 통신사들의 사업 전략은 신규 스마트폰에 비싼 요금제를 덧붙여 가입자당 매출을 극대화하는 방식이었는데요. 이러다보니 통신 3사들끼리 '제살 깎기' 경쟁을 벌이면서 수익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실제로 통신 3사의 수익성 지표인 가입자당 평균매출(ARPU)은 최근 몇년간 대부분 고만고만하거나 오히려 감소하고 있죠. 이에 통신사들이 저 같은 알뜰폰 시장 영역으로 눈을 돌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걱정반 두려움반으로 보는 것이 이동통신시장 강자 SK텔레콤의 언택트 요금제입니다. 이 요금제는 온라인 전용인데요. SK텔레콤 공식 온라인 몰 'T다이렉트샵'에서만 가입할 수 있습니다. 기존 약정 요금제와 비교하면 30% 저렴합니다. 오프라인 대리점을 거치지 않아 그만큼 마케팅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무약정 기반이라 다른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없는데요. 25% 선택약정이나 최대 30% 가족결합 할인이 적용되지 않고요. 멤버십 혜택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 알뜰폰이 떠는 이유는요. 저랑 비교할 때 손색이 없을 정도의 가격 경쟁력을 갖춘데다 저의 판매 방식 등에서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이 요금제는 최저 월 3만8500원에 5G 통신 데이터를 9기가바이트(GB) 이용할 수 있는데요. 기존 5만원대 요금제보다 약 30% 저렴하게 책정됐습니다. 이는 일반 알뜰폰 5G 요금제와 비교해 비슷하거나 오히려 저렴한 수준인데요.
SK텔레콤은 당초 이 신규 요금제의 도매제공을 안한다는 입장이었는데요. 다행히 정부와 협상 여지를 두고 있어 그나마 저로서는 숨통이 트였습니다.
다만 과거처럼 SK텔레콤이 재판매를 늦게 해줄까봐 겁이 납니다. 2019년 5G 상용화를 돌이켜 봤을 때 SK텔레콤이 재판매를 허용한 것은 상용화 이후 1년이 지나고 나서야 였습니다.
작년 11월말 기준 5G 가입자 가운데 저 같은 알뜰폰을 이용하는 사람은 4647명에 불과한데요. 전체 가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에 못미친 0.04% 수준입니다. 하지만 꾸준히 저를 알고 찾는 고객이 늘고 점이 희망적입니다.
그럼에도 알뜰폰 사업자들은 아직 이렇다 할 재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통신 3사들도 계열사로 저 같은 알뜰폰 사업자를 두고 있는데요.
KT의 알뜰폰 계열사 KT엠모바일만 해도 2015년 367억원의 순손실을 시작으로 매년 순손실 적자를 내고 있고 작년 3분기까지 34억원의 순손실을 거뒀습니다.
주요 통신사 계열 알뜰폰 업체의 상황이 이러하니 다른 규모가 작은 업체들은 어떨지 대충 감이 오실 겁니다. 저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요? 불안감에 밤잠을 설칩니다.
가계통신비 절감 차원에서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저 알뜰폰. 5G 시대를 맞아 이제 좀 이용자가 확대되면서 시장이 커지나 했는데 지금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아 보입니다. 저만의 기우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