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신약의 전화위복]생화학무기 될 뻔했던 보톡스

  • 2025.02.18(화) 08:30

사시 치료제서 주름 개선 효과로 '성공신화'
잦은 시술시 내성 우려…재투여기간은 3~6개월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 동안 얼굴을 위해 얼굴에 주름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보톡스 주사에 딱 맞는 표현이다. 보톡스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보통명사처럼 불리지만 이는 미국 제약사인 애브비의 제품명으로, 주름 개선에 사용되는 동일 계열 약물의 정확한 명칭은 보툴리눔톡신이다.

보툴리눔톡신은 보툴리누스균에서 추출한 생물학적 독성 단백질이다. 19세기 초 독일에서 소세지를 먹은 사람들이 식중독으로 대거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상한 소시지에 신경마비 증상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 가장 먼저 알려졌다.

이후 1895년 벨기에 미생물학자 에밀 피에르 반 에르멘젬 박사가 연구를 통해 상한 소세지와 이를 먹고 사망한 사람의 조직에서 이 균주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보툴리눔의 어원이 바로 검은 소시지를 뜻하는 라틴어 '보툴루스'에서 유래했다.

보툴리눔톡신 균주는 단 1그램만으로도 100만명을 죽일 수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독으로 꼽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보툴리눔톡신을 생화학 무기로 개발한 국가들이 있었지만 다행히 실제로 전쟁에 사용되진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시 치료제에서 피부 주름 개선으로 적응증 확대

이후 보툴리눔 톡신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이 균주가 신경에 작용해 근육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특성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안과의사였던 앨런 스콧(Alan Scott) 박사는 이 특성을 이용해 보툴리눔 톡신을 사시(눈 근육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한 연구에 돌입했다. 사시는 눈 근육의 비정상적인 수축이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두 눈의 시선이 일치하지 않고 제각각인 증상이 나타난다.

앨런 스콧 박사는 원숭이 연구에서 사시에 효과적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1970년대 후반에 제약사 오쿨리눔(Oculinum)을 창립했다. 이어 인체 임상시험을 거쳐 1989년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안검경련과 사시 치료 목적으로 승인을 받았다. 

사시 치료제였던 보톡스가 갑자기 피부미용 의약품이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알란 스콧의 연구팀에서 일하던 캐나다 안과 의사인 진 카루터스는 캐나다로 돌아가 보톡스에 대한 임상 실험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안검경련 임상 환자로부터 눈가 주름이 사라진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녀는 피부과 의사인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초기 임상을 통해 주름 개선 효과를 입증, 학계에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해당 연구논문이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면서 카루터스 부부는 미국 앨러간이라는 회사에 오쿨리눔을 매각했고 보톡스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앨러간은 보톡스의 미간 주름치료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해 캐나다에서 2001년 먼저 허가를 받고 미국에서는 2002년에 승인을 받았다. 이후 보톡스는 미용성형 영역에서 눈가 주름과 사각턱 개선 등으로 적응증(사용 가능 범위)을 확대했고 치료 영역에서는 만성 편두통, 상지 경직, 경추 근긴장 이상, 중증 겨드랑이 다한증, 과민성 방광과 신경학적 상태와 관련된 배뇨근 과활동으로 인한 요실금 등에 대해 승인받았다.

보톡스의 2023년 매출액은 치료영역 7억2000만 달러(1조385억), 미용영역 6억6000만 달러(9500억원) 등 약 2조원에 달한다.

내성 우려로 3~6개월 후 재투여

미국에서 보톡스의 등장 후 세계적으로 경쟁 품목들이 속속 등장했다. 유럽 시장에서는 프랑스 입센의 디스포트(1999년), 독일의 제오민(2009년) 등이 허가를 받았고 국내에는 메디톡스의 메디톡신(2006년), 휴젤의 보툴렉스(2009년), 대웅제약의 나보타(2013년) 등을 시작으로 현재는 수십개에 달하는 국산 보툴리눔톡신 제품들이 있다.

세계적으로는 보툴리눔톡신 시장에서 치료 비중이 60%인 반면 국내는 10%에 불과하고 90%가 미용성형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유독 국내에서 동안 외모와 피부 미용에 대한 관심이 높고 국산 보툴리눔톡신 품목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격도 낮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보툴리눔톡신 효과는 일정 기간만 지속되고 내성 문제도 있어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다. 미간이나 눈가 주름의 경우 보툴리눔톡신 효과는 주사 후 3~5일 후부터 서서히 나타나 6~12개월가량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주 맞을 수록 효과가 유지되는 기간이 짧아지거나 효과의 정도가 줄어드는 내성이 생길 수 있어 3~6개월 이상의 텀을 두고 재투여해야 한다. 일부 회사 제품은 불필요한 복합 단백질을 제거해 내성 우려가 없다는 점을 내세우는 곳도 있으니 전문의료인과 상담 후 시술 제품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