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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전화위복]유방암치료제, 기막힌 개발 사연

  • 2025.03.12(수) 08:10

에스트로겐 유사 합성물질 '타목시펜' 개발
배란유도제→유방암 예방·치료제로 거듭

신약 개발에서 중요한 것은 안전성이다.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면 개발을 중단해야 한다. 의약품 부작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이유다. 부작용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생각하지 못한 효능이 발견되기도 한다. 개발 과정에서 부작용이 나타나 운명이 뒤바뀌거나 또 다른 효능이 발견된 약들의 뒷이야기를 다뤄본다.[편집자주]

유방암은 세계에서 가장 흔한 여성암으로 전체 여성암의 24.5%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건강검진 등으로 조기에 유방암이 발견돼 완치되는 경우도 많지만 전이 및 재발 경과를 예측하기 어려워 여전히 사망률이 가장 높은 여성암이다.

이번 주제는 유방암 치료와 재발을 막기 위해 환자의 약 60%가 투약하고 있는 1세대 표적치료제 '타목시펜(Tamoxifen)'에 대한 이야기다. 

피임약 개발하려다 배란유도제로 개발

타목시펜은 원래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됐다. 1900년대 이전 유럽은 혼외 성관계에 대해 보수적인 분위기였지만 190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성에 대한 인식이 점차 개방적으로 변화했다. 하지만 종교적·도덕적·사회적 문제로 피임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제가 적용됐다. 

그 결과 원치 않는 임신과 불법 낙태, 유아 유기 등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사전에 임신을 막을 수 있는 피임약에 대한 연구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1955년 최초의 피임약이 개발되면서 여성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영국의 제약회사였던 ICI(현 아스트라제네카)도 피임약을 개발하기 위해 항에스트로겐 물질을 합성하는 연구를 진행한 끝에 1962년 타목시펜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ICI는 초기 동물실험 단계에서 타목시펜이 배란을 억제해 피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인체 시험에서는 배란을 유도해 임신 가능성을 높이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쥐와 사람의 호르몬 분비 패턴 등 생식 내분비 시스템이 달랐기 때문이다. 결국 타목시펜은 피임약이 아닌 불임 여성의 배란을 유도하는 배란유도제로 개발됐다. 

에스트로겐 억제해 유방암 성장·발병 낮추는 효과도

타목시펜은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화학적 구조가 비슷하다. 에스트로겐 호르몬은 수용체와 결합해 여성 생식 조직 세포를 성장시키는데 체내 타목시펜이 투입되면 호르몬 수용체가 타목시펜을 에스트로겐인 줄 착각하고 달라붙는다. 수용체와 결합하지 못한 에스트로겐 호르몬들의 작용이 억제되면서 인간의 뇌에서는 뇌하수체를 더 강하게 자극해 난소에서 배란이 촉진되도록 한 것이다.

타목시펜 개발을 주도했던 ICI 제약사업부는 이 약물의 기전으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에스트로겐의 체내 농도가 높으면 난자의 성장과 배란을 억제하는데 에스트로겐 함량이 높은 피임약을 복용했던 환자에게서 유방암 발병이 증가하고 유방암 세포를 성장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타목시펜의 유방암 치료 및 발병 억제 작용기전. /출처=유방암바로알기(www.barobreast.com)

반대로 말하면 에스트로겐의 작용을 억제하면 유방암 발병과 암세포의 성장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회사는 미국에서 해당 화합물의 특허권이 없어 독점 판매를 할 수 없다는 점과 영국에서 전이성 유방암 발병률이 낮았던 점, 당시 의료계에서는 유방암 치료에 에스트로겐 작용을 억제하는 내분비 요법이 쓰이지 않았던 점 등을 이유로 유방암에 대한 개발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다 1974년 미국의 버질 크레이그 조던(Virgil Craig Jordan) 박사가 타목시펜이 에스트로겐수용체에 작용해 유방암을 예방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인체 대상 유방암 치료제로 개발이 시작됐다. 타목시펜은 1977년 미국에서 특허권을 인정받아 출시했다.

타목시펜은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 치료와 재발을 예방하기 위한 1차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하루에 한 알씩 5~10년간 복용한다. 호르몬 수용체에 발현하지 않는 호르몬 수용체 음성 유방암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중대한 부작용으로는 자궁벽이 두꺼워져서 드물게 자궁내막암의 발병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2003년 특허가 만료돼 제네릭도 다수 판매되고 있으며 장기 복용해야 하는 만큼 꾸준히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인 마켓 리서치 인텔렉트(Market research intellect)에 따르면 타목시펜의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23년 2020억 달러(295조원)에서 연평균 2.2% 성장해 오는 2031년 2400억 달러(3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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