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약 타입으로 먹는 방식의 이른바 '경구용'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비만치료제 개발 경쟁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경구용 GLP-1은 주사제를 압도하는 편의성과 경제성으로 비만치료제의 게임체인저로 주목받는다. 특히 일라이 릴리가 최근 경구용 GLP-1 비만치료제 '오포글리프론(orforglipron)' 3상에 성공하면서 상업화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졌다.
경구용 GLP-1 비만치료제 게임체인저지만
오젬픽, 위고비, 젭바운드 등 주사형 GLP-1 비만치료제는 탁월한 효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주사기 사용에 대한 심리적 부담, 주기적인 병원 방문과 이에 따른 추가 비용, 보관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경구용 GLP-1 개발에 대한 시장의 요구가 이어져 왔다. 하지만 소화효소에 의해 위나 장에서 쉽게 분해되고 잘 흡수되지 않는 펩타이드인 GLP-1의 특성으로 경구제 개발이 쉽지 않았다.
이를 극복한 첫 제품이 노보노디스크가 2019년 허가받은 경구용 GLP-1 당뇨병 치료제인 '리벨서스(Rybelsus)'다. 리벨서스는 펩타이드에 약물 전달 기술인 SNAC(Smart Nutrient Absorption Carrier)를 적용해 경구 복용이 가능하게 했다. SNAC는 위 점막에서 일시적인 보호막을 형성해 펩타이드 분해를 억제하고 약물이 위 점막을 통과해 혈류로 흡수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흡수촉진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리벨서스는 약물의 흡수율을 높이기 위해 투약 전후로 식사나 음료, 의약품 복용을 제한하는 등 복용 편의성이 떨어진데다, 고용량 투여가 어려우며 구토 설사 등의 부작용도 있어 비만약으로까지 적응증을 확장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고안된 것은 GLP-1 수용체 계열에 작용해 펩타이드 GLP-1과 유사한 효과를 유도하는 저분자화합물을 만드는 것이다. 일라이 릴리의 오포글리프론과 화이자의 다누글리프론(danuglipron) 등이 대표적인 약물이다. 다만 저분자화합물을 원가 경쟁력은 높지만 간독성 등 저분자화합물이 가지는 부작용이 약점으로 대두됐다.
화이자는 최근 1일 2회 경구용 GLP-1 다누글리프론(danuglipron) 임상 3상 개발을 중단했다. 임상 3상 시험에 참여한 환자 중 한 명에게서 약물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간 손상 사례가 발생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일라이 릴리, 경구용 GLP-1 치료제 3상 성공
이런 가운데 일라이 릴리는 지난 17일 첫 경구용 GLP-1 비만치료제의 가능성을 확인한 오포글리프론 임상 3상 결과를 발표했다.
임상 결과에 따르면 오포글리프론을 40주간 투여한 투약군은 위약군 대비 체중과 당화혈색소(A1C) 감소에서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보였다. 오포글리프론은 2형 당뇨병 환자의 체중을 7.9% 감량하는 효과가 있었으며 시험 종료 시점까지도 체중 감소는 이어졌다. 당화혈색소도 8.0%에서 1.3~1.6%포인트(p)까지 감소시켰다.
노보노디스크에서 개발한 주1회 GLP-1 비만치료제 오젬픽과 유사한 효능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식사와 관계없이 복용할 수 있으며 간독성 등 심각한 부작용은 관찰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일라이 릴리는 연내 비만 치료제로 허가를 신청하고 내년에는 당뇨병 치료제로 적응증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일라이 릴리는 오포글리프론을 GLP-1 수용체를 높은 선택성으로 활성화하는 저분자 화합물로 설계해 인슐린 분비 촉진, 식욕 억제, 체중 감소 등의 효과를 유도했다. 또한 소화효소에 강한 저항성을 가지고 체내 흡수율이 높은 특성을 가지도록 설계했다.
빅파마·국내기업들, 후속약물 개발 경쟁 가속도
일라이 릴리 오포글리포론으로 첫 경구용 GLP-1 비만치료제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시장의 개발 열기는 식지 않았다. 비만 치료제 시장의 규모가 거대한 데다 효능 좋은 베스트인클래스 약물에 대한 시장 요구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로슈는 2023년말 27억 달러에 인수한 '카못 테라퓨틱스(Carmot Therapeutics)'의 경구용 GLP-1 치료제인 CT-996을 개발하고 있으며 지난해 긍정적인 1상 결과를 확인했다. MSD는 지난해 12월 중국 한소제약으로부터 경구용 GLP-1 신약 후보물질을 도입했다. 전임상 단계임에도 계약금 1억1200만달러를 포함해 20억1200만달러(약 2조9000억원)를 베팅했다.
미국의 바이킹 테라퓨틱스(Viking Therapeutics)는 경구용 GLP-1/GIP 수용체인 VK2735 임상 2상을 진행 중으로 올해 하반기 결과 발표가 예정돼 있다. 1상에서는 28일간의 다회 증량(MAD) 시험에서 최대 5.3%의 체중 감소를 확인했다.
국내에서는 디앤디파마텍, 킵스바이오파마, 삼천당제약, 프로젠, 일동제약, DXVX 등이 경구용 GLP-1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디앤디파마텍, 킵스바이오파마, 삼천당제약, 프로젠은 펩타이드 전달 기술을 통해, 일동제약과 DXVX는 저분자화합물로 개발한다.
디앤디파마텍은 펩타이드나 단백질 기반 약물을 경구로 전달하기 위한 제형 기술 오랄링크(OralINK)를 통해 경구용 GLP-1을 개발하고 있다. 디앤디파마텍은 미국 파트너사인 멧세라 테라퓨틱스에 총 6개 비만신약 파이프라인을 기술이전해 주목받았다.
킵스바이오파마는 경구용 펩타이드 약물 전달기술을 가진 케이비바이오메드 인수를 통해 경구용 GLP-1 비만치료에 개발하고 있다. 케이비바이오메드는 2023년 진행한 설치류 대상 비임상시험에서 경구용 인슐린의 약 35% 수준의 흡수율(생체이용률)을 확인한 바 있다. 현재 영장류를 대상으로 인슐린 및 GLP-1의 SC 제형 대비 생체이용률을 평가하는 비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일동제약은 연구개발 자회사 유노비아를 통해 저분화합물 기반 경구용 GLP-1 당뇨 및 비만치료제 'ID110521156'의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비임상 효능평가와 독성평가에서 인슐린 분비, 혈당 조절과 관련한 유효성 및 동일 계열의 경쟁 약물 대비 우수한 안전성 등을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Dx&Vx는 저분자화합물 기반의 경구용 GLP-1 신약후보물질을 발굴해 현재 전임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경구용 GLP-1 비만치료제는 높은 생체이용률과 낮은 부작용이 관건이 될 것"이라면서 "아직 첫 제품이 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빠른 개발과 성과로 후발주자의 입지를 굳히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