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에서 100km 떨어진 동해 한가운데, 사방엔 푸른 바다물 뿐이다. 크루즈 갑판엔 웅장한 선박 엔진 소리가 들릴 뿐이지만 크루즈 안 객실에선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망망대해 속 바이브 코딩으로 앱 하나를 15분만에 뚝딱 만들었다. 지상에서의 작업속도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우리나라 동쪽 가장 멀리 위치한 유인섬인 울릉도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배를 타야한다. 울릉공항이 완공되기 전까진 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그중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루트는 포항 영일만에서 6시간 동안 크루즈를 타고 가는 뱃길이다. 웬만한 동남아 비행 시간과 맞먹는 만큼 긴 운항 시간동안 승객들은 그동안 디지털 격오지를 경험해야 했다.
LTE망을 통한 무선통신은 현재 기술력 상으론 연안 100km 이내 해상에서만 터졌으며 이를 넘어간 구역에서는 무궁화위성과 같은 정지위성을 통해 2Mbps의 느린 속도 인터넷만 가능했다. 사실상 선원들만 업무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배 안에서 할 게 없다'는 말도 옛말이 되어버렸다. KT가 저궤도 위성인 스타링크를 활용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부터다. KT SAT은 지난해 스타링크와 제휴를 맺고 기업간 거래(B2B) 리셀 사업을 하는 동시에 자체 개발한 해양 네트워크 솔루션 '엑스웨이브원'을 결합해 크루즈내 인터넷 바우처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다. 엑스웨이브원은 업무망, 보안망 등 망을 분리하고 데이터 바우처 관리, 카드결제 등 일련의 서비스를 지원한다.바다 위에서도 LTE 속도 180Mbps
지난 12일 9층 높이의 울릉크루즈 '뉴씨다오펄호'에 탑승해 직접 KT SAT의 데이터 바우처를 구매해봤다. 10GB 용량의 데이터 바우처를 구입한 후 알려준 핀코드를 핸드폰이나 노트북 등 기기에 입력하면 바로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 가격은 1GB당 3000원으로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의 인터넷 속도 측정앱을 통해 선내 와이파이 속도를 측정해보니 출발 당시엔 180Mbps를 기록했다. 이후 출발한지 3시간이 지났을 무렵 포항과 울릉도에서 각각 100km 이상 떨어진 지점에 도달했을 때 다시 측정해보니 39Mbps까지 떨어졌다. KT SAT에 따르면 와이파이 속도는 이용자 수와 위치에 따라 상이하다.
육지에서 멀어지자 속도 자체는 떨어졌지만 체감상 큰 차이는 없었다. 친구와 카카오톡 보이스톡을 5분간 해보니 소리도 깨끗했고 끊김이 없었다. 유튜브도 1080p 최고화질로 시청이 가능한 것은 물론 모바일 게임도 잘 작동했다. 노트북에 와이파이를 연결해 바이브 코딩도 도전해봤다. 오픈AI의 코딩 에이전트인 코덱스(CODEX)를 열고 주식시장 뉴스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앱을 만들었다. 총 소요시간은 15분으로 같은 작업을 할때 지상에서 걸린 시간과 같았다.
바다 위에서 치킨배달
망망대해 위에 기가급 와이파이를 설계하는 건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9층 높이의 크루즈는 아파트 한 동을 바다 위에 세워놓은 것과 맞먹는 규모로 승객과 선원 1000명에게 고른 품질을 제공하기 위해 45개의 공유기(AP)를 효율적으로 배치해야 했다.
이봉하 KT SAT 글로벌 해양고객본부 대리는 "KT 서비스 직원들과 같이 각방에 직접 들어가 거리를 재고 AP를 어느 위치에 달지 등 설계를 고민했다"며 "그 과 방문을 닫고 화장실에 들어가도 통신이 될 정도의 수신감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링크를 도입하면서 최근엔 크루즈 내 부대시설이 또 하나 생겼다. 바로 KT의 테이블오더 서비스인 하이오더다. 22개 객실과 인포메이션 앞에 설치되어있다. 겉보기엔 식당에서 쓰이는 평범한 테이블오더지만 스타링크를 이용해 육지에서 멀어진 바다 위에서도 작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하이오더를 통해 치킨, 족발 등 안주류와 주류 등 음식을 주문해 객실에서 받아볼 수 있다. 호박빵, 호박젤리 등 특산품도 주문할 수 있다. 이용율도 점점 높아지면서 200만원의 월매출이 올리고 있다.
최성우 KT 경북동부지사 차장은 "울릉도 주민들에게는 크루즈가 유일하게 육지로 나갈 수 있는 루트이기 때문에 버스처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공간"이라며 "의미있게 쓰였으면 하는 생각에 이 서비스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마침 그룹사에서 스타링크를 리셀을 진행하면서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하이오더 현재 22개 디럭스룸 객실에 설치 돼있으며 5층 인포메이션 앞에 2대 설치돼있다. 디럭스룸 외 객실 수요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해보였다. 이에 따라 KT는 하이오더를 최대 150대 이상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아울러 하이오더에 데이터 바우처 구매도 가능하도록 개발 중이다.
이중 해저케이블에 무선 백업망까지
6시간의 운항 끝에 도착한 울릉도에서도 KT의 네트워크망이 빛을 발했다. 현재 울릉도 내 5500세대 중 4200여세대가 KT 가입자다.
섬 특성상 육지와 섬을 잇는 해저케이블을 통해 통신서비스를 할 수 있는데 KT는 단독운영하는 1해저케이블과 통신3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2해저케이블로 모두 활용하고 있다. 한 케이블이 문제가 생기면 다른 케이블을 통해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이중 구조를 만들어놓은 셈이다.
여기에 더해 무선마이크로웨이브 백업망까지 갖춰 해저케이블이 모두 끊기는 초유의 비상상황도 대비하고 있다. 감을계 중계소에는 육지에서 주는 신호를 받는 역할을 하며 독도에도 무선 신호를 쏴주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몇년 전 태풍으로 해저케이블을 모두 끊어졌을 때도 무선 마이크로웨이브를 통해 통신 서비스가 이뤄졌다.
모든 이용자에게 적정 요금을 받고 통신을 제공해야하는 보편적 역무에 따라 KT는 울릉도 주변 섬에도 LTE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다. 단 1세대만 거주하는 죽도에는 케이블을 깔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울릉도에서 LTE 신호를 쏴주는 와이파이 브릿지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독도에는 2019년부터 5G를 서비스하고 있다.
이 모든 인프라 뒤에는 9명의 KT 섬지기들의 서포트가 있다. 상주직원들은 인구가 적고 어르신들이 많은 지역인만큼 주민들이 고객센터를 거치지 않고 개인번호로 직접 연락하는 사이다. 전화나 인터넷을 고쳐주러 갔다가 세탁기, TV 등 고장난 전자제품을 손봐주거나 택시 역할을 자처해 시내까지 고객을 데려다 주는 일도 부지기수다. 육지에 있는 자녀들의 안부를 대신 전하는 우체부가 되기도 한다.
울릉도 특성상 폭설이 잦은 탓에 작업환경이 녹록지 않다. 정현용 KT 서비스 남부 대구본부 과장은 "눈이 1m20cm까지 쌓인 어느 날 인터넷이 고장났다는 문의가 와서 주소로 찾아갔더니 인터넷 선도 끊기고 지붕에서 떨어진 눈 때문에 문도 막혀 있었다"며 "1시간동안 쌓인 눈을 치운 뒤 겨우 들어가 수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 과장은 "늘상 있는 일들이기 때문에 특별한 에피소드는 아니다"라고 멋쩍게 웃어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