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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살림, 억지 춘향으론 안된다

  • 2013.07.29(월) 16:42

주부 A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돈 쓸 곳은 계속 늘어나는데, 수입은 쪼그라들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기본적으로 자녀들 교육비와 연로하신 부모님 부양 비용이 높아졌다. 추가로 돈이 들어갈 부분도 많다. 낡은 자동차를 신형으로 바꾸고, 노후대비용 개인연금도 들어야 한다. 지방에 사는 동생이 실직해 여기도 얼마씩 보태주기로 약속해놨다. 가계의 기본 지출외에 이렇게 추가로 나갈 돈을 계산해보니 5년간 2억5900만원이다.

A씨는 기존 씀씀이를 가급적 줄이고, 추가 수입원을 발굴하면 당초 계획대로 지출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그런데 주수입원인 남편 월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급여가 10% 삭감된 것이다. 가게를 임대하고 받는 월세라도 좀 올려볼까 했더니 세입자들은 장사가 안돼 죽겠다며 아우성이다.

 

수입 감소로 쓸 돈이 1200만원 가량 부족하자 A씨는 지난달 1700만원 빚을 얻어 구멍을 메웠다.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앞으로 가계 살림은 거덜나거나 빚더미에 올라앉을 지도 모른다.

 

◇ '수입 늘리거나, 아니면 지출 줄이거나'

 

2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 수입을 늘려 지출을 충당하는 것이다. 남편 월급이 오르고, 가게 월세도 더 받아야 가능하다. 그런데 어려운 경기를 감안하면 크게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둘째, 수입을 늘릴 방법이 없다면 지출을 줄여야 한다. 벌어들인 한도내에서 쓰고, 추가 지출은 포기하거나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미루는 것이다. 그런데 A씨는 아직까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인다.

위의 사례는 현재 나라 살림살이가 처한 상황을 엉성하나마 가계에 대입시켜 본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5월말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재정지원 실천 계획, 이른바 '공약가계부'를 발표하면서 향후 5년간 소요자금을 135조원으로 추산했다. 60% 가량은 복지(국민행복) 관련 지출이었다. 여기서 빠졌던 '지방공약'에 대한 가계부는 한달후쯤 나왔는데 공약이행에 투입될 돈은 124조원. 1·2차 가계부를 합친 전체 소요자금이 총 259조원이었다. 

재원 마련이 관건이었는데 대통령은 처음부터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 같은 '직접적 증세'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대신 깎아주는 세금을 줄이고, 숨겨진 세원을 발굴하고, 기존 지출에서 군살을 빼는 방식으로 돈을 조달하겠다고 했다. 일은 크게 벌려놨고 돈도 많이 들어갈 게 뻔한데, 재원조달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었다. 지방공약용 124조원은 구체적인 방안없이 국비·지방비외에 민자를 적극 유치하겠다는 가이드라인만 내놨다.

가정이든 국가든 살림살이에서 부딪히는 고민의 본질은 유사하다. 지출은 확실한데 수입은 불확실하다는 것. 돈 쓸 구멍은 커지는데, 돈 들어올 구멍은 좁아지거나 막히기 일쑤다. 세수는 새 정부 출범전부터 구멍이 뚫려있었다. 기업 실적이 부진하고, 소비가 위축되니 세금이 제대로 걷히질 않았다. 당초 장밋빛 전망으로 예산을 짰던 정부는 결국 17조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 올해 펑크날 세수 12조원을 빚으로 메웠다.

 

◇ '총론 따로, 각론 따로'..곳곳에서 마찰·혼선

 

돈 나갈 곳은 일체 손을 못대게 하고, 돈 나올 구멍만 파헤치다 보니 곳곳에서 마찰음이 불거지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는 재계의 반발에 부딪혀 결국 대상을 축소하겠다고 국세청이 한발 물러섰다. 일감몰아주기 과세는 당초 취지와 달리 중견·중소기업에 화살이 집중되면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정부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과세 요건을 완화해주겠다며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이 나타나고, 원칙이 흔들리기도 한다. 지하경제를 파헤쳤더니 검은 돈은 더 깊은 지하로 숨어들었고, 이 과정에서 5만원 고액권의 퇴장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비과세·감면은 일몰 도래시 반드시 종료한다는 원칙은 신용카드 소득공제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갑자기 혜택을 없애면 근로소득자들의 조세저항이 우려된다며 일몰을 연장해 줄 태세다.

 

증세는 않겠다는 게 큰 전제였는데 정부가 애드벌룬용으로 띄운 세제개편안에서는 소득세와 부가가치세를 높이는 방향이 제시되면서 월급쟁이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딱히 증세는 아닌데 증세처럼 보이는 좀비들이 곧 등장할 듯 하다. 


기존 지출에서 군살을 빼는 세출 구조조정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방안도 효과가 의문시 된다. 정부 부처들 사이에서는 과거에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업들을 '창조경제'니 '행복'이니 하는 국정 키워드로 포장해 예산을 더 타내려는 조짐이 역력하다. 총론에서 수입-지출의 아귀를 제대로 맞추지 못한 탓에 각론으로 갈수록 삐걱거림이 크다. 이 과정에서 유일하게 흔들리지 않는 것은 공약실천 의지 뿐인 듯 하다.

 

◇ '공약이행 노력하되 집착은 말아야'

 

공약은 대국민 약속인 만큼 지켜야 하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위정자의 책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정치적으로도 공약 이행의 필요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은 곤란하다. 지출에 수입을 끼워맞추는 방식은 한계에 부딪칠 수 밖에 없다. 경기가 확 살아나 세금이 술술 걷히지 않는 한 말이다. 지출과 수입의 괴리속에서 지속적으로 불거질 마찰과 혼선, 후유증은 어쩔 셈인가.

두번째 방식을 검토할 때가 됐다. 수입에 맞춰 지출을 줄이고, 집행 시기를 탄력적으로 조절하는 게 일반적이고 합리적인 살림살이 방식이다.

 

공약은 지키는 게 좋지만 현실이 뒷받침되지 않는데 공약에 집착하는 건 금물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명박 정권은 집권 초기 대표 공약인 747(7% 성장률, 4만달러 국민소득, 세계 7대 경제대국)에 집착하다 결국 실패하고 고물가와 양극화 같은 후유증을 남겼다. 한반도 대운하, 수도 이전, 종합부동산세 등 유사 사례는 차고 넘친다. 총론이 아니라 각론에서 빚어지는 현상과 문제점들을 면밀히 점검해 대통령이 용단을 내려야 할 문제다.

노파심에서 사족을 붙이자면 혹여 나라빚을 늘려서라도 공약을 철저히 이행하겠다는 우는 범하지 말길 바란다. 곳간이 바닥을 드러내고, 경제체력은 소진돼 가는데 씀씀이만 늘리다 파산위기에 빠진 나라들은 유럽의 돼지(PIGS)들만으로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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