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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무(無) 아파트와 그 적들

  • 2013.08.07(수) 10:15

정부가 주택정책의 방향을 양(공급)에서 질(품질)로 바꾸고 있다.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죽자 살자 하던 때가 엊그제인데 격세지감이다.

 

공급 과잉을 우려해야 하는 시대를 맞아 주택정책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방향성은 바람직해 보인다. 정부는 주택 품질을 높이기 위해 ‘3무(無)’ 정책을 꺼내들었다. 층간소음 없고, 결로 없고, 새집증후군 없는 아파트를 만들겠다는 게 당면 목표다.

 

층간소음을 없애려면 바닥 두께를 키워야 하고, 결로를 방지하려면 고급 스펙의 창호를, 새집증후군을 막으려면 친환경 마감재를 사용해야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각종 기준을 새로 도입하고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3무 아파트에 살면 정신건강도 육체건강도 좋아지고 이웃끼리 얼굴 붉히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3무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이 든다는 점이다. 적게 잡아도 분양가의 5%는 더 든다. 3억 원짜리 아파트라면 1500만원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이 돈은 수요자가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수요자는 비용을 부담하는 순간 그 이상의 가치를 요구하게 된다. 층간소음도, 유해물질도, 결로도 절대로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이제 업체들은 종전과는 다른 차원의 민원에 시달리게 된다. “비용을 냈는데 이런 하자가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는 공격을 받게 되면 대응이 궁색해진다. 업체 입장에서는 백전백패의 수세에 몰리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업체라고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받아야할 민원이라면 잘해주고 받는 것보다 대충하고 받겠다는 심리가 발동할 수 있다. 커트라인만 간신히 통과할 정도의 제품만 사용할 개연성이 커진다. 아예 민원처리 비용을 분양가에 포함해 산정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품질 좋은 아파트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하겠다는 정책 취지는 모호해지고 이해 다툼만 남게 된다. 정책 수요자들의 피로감만 커지는 셈이다.

 

새 제도를 도입할 때는 정책 수요자 사이의 이해관계를 잘 따져보는 게 중요하다. 주택정책을 만들 때는 주택 수요자와 주택 공급자 간의 이해득실을 조율하는 게 최우선이다. 주택 수요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해서도 안 되고 주택 공급자만 수혜를 봐서도 안 된다.

 

정책 수요자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정책은 밸런스가 무너지면 오래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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