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단어가 혈연으로 이어진 피붙이라면 식구는 정으로 이어진 살붙이의 느낌이다. 식구는 '먹을 식(食)'자에 '입 구(口)'자를 쓰니까 함께 밥을 먹으며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은 사람이 바로 식구다. 옛날에는 가족만큼이나 가까웠던 사람이 고향 사람이었다. 고향은 원래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마을 향(鄕)'이라는 한자는 갑골문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한 그릇에 담긴 음식을 나누어 먹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옛날 고향은 같은 성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었으니 고향이 같은 사람은 밥을 함께 먹는 식구이면서 동시에 피를 나눈 일가친척들이다.
동양에서 밥을 함께 먹는 사람이 식구이자 동향 사람이지만 빵을 주식으로 삼은 서양인에게 빵을 함께 먹는 사이는 어떤 의미였을까?
영어로 동료, 친구를 뜻하는 컴패니언(Companion)에 해답이 있는데 어원이 빵을 함께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라틴어로 '함께'라는 뜻의 '컴'과 빵이라는 뜻의 '파니스'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다. 그러니까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이 식구인 것처럼 빵을 함께 먹는 사람들이 동료이고 친구이다.
회사라는 뜻의 컴퍼니(Company)도 어원이 같다. 동료들이 모두 함께 열심히 일해서 빵 사먹을 돈을 버는 이익단체라는 의미가 되겠다. 컴퍼니는 사실 군대에서 나온 말이다. 빵을 나누어 먹는 전우들이 모여 있는 단체라는 뜻에서 비롯된 단어인데 군(軍)조직에서 중대를 컴퍼니라고 하니까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회사라는 뜻으로 쓰인 것은 1553년, 비즈니스 연합체인 무역조합(Trade Guild)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하면서부터다.
로마군은 도대체 빵과 어떤 관련이 있기에 빵이라는 라틴어 파니스(Panis)를 어원으로 전우, 동료, 중대, 회사라는 단어가 생겼을까?
빵은 로마 군인들에게 보급되는 군용식량이었을 뿐만 아니라 로마시대에는 부대 자체가 빵 굽는 공장 역할을 했다. 기원전 로마에서는 빵 굽는 기구나 화덕, 그리고 가옥구조 때문에 집에서 빵을 만들 수 없었다. 때문에 마을 단위로 빵 굽는 장소를 정했는데 주로 로마군단이 주둔하고 있는 요새에 위치했다. 라틴어로 빵을 어원을 하는 단어가 로마군인과 관련이 많은 이유다.
이야기를 확대하자면 월급을 뜻하는 단어 샐러리(Salary) 역시 로마 군인에서 비롯된 단어다. 박물학자 플리니우스는 그가 집필한 백과사전 형식의 저서인 『박물지』에서 로마초기의 군인들은 소금으로 월급을 받았다고 적었다. 그러나 현물지급의 번거로움 때문에 소금을 살 수 있는 동전으로 대체됐는데 샐러리는 곧 소금을 살 수 있도록 지급되는 배당금이라는 '살라리움'에서 비롯된 단어다.
군인이라는 뜻의 솔저(Soldier)도 소금과 관련 있다. 어원이 라틴어 '살 다레(Sal Dare)'로 소금을 지급받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왜 하필 소금으로 월급을 줬을까 싶지만 고대 로마에서 소금은 빵 못지않게 중요한 식품이었다. 음식을 만들거나 먹을 때도 필요했지만 힘든 노동을 할 때도 소금이 필수였기에 그만큼 귀하게 여겼다.
어원을 중심으로 잠깐 짚어 본 가족과 회사, 식구와 동료, 그리고 필수음식인 빵(밥)과 소금의 관계다. 그러고 보니 빵을 함께 먹는 동료는 보통 관계가 아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바로 식구다. 옆 동료에게 점심이나 함께 먹자고 먼저 청해보는 것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