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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인들은 왜 싸우나

  • 2013.09.30(월) 08:33

지난주 미국 상무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8월에 측정한 미국 국민의 일인당 실질 개인소득은 연간 3만6800달러였다. 금융위기 이전인 지난 2007년 8월 이후, 그러니까 지난 6년 동안 940달러, 2.6% 밖에 늘지 않았다. 물가가 오른 효과를 제외하면 소득이 일년에 0.4%씩 증가한 데 불과한 셈이니, 전혀 늘지 않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평균값이 제자리란 말은, 지난 6년 동안 실질 소득이 감소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미국 정부가 해마다 1조 달러 이상씩의 재정적자라도 내주지 않았더라면 이 그림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난주 미국 연방준비제도 발표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미국 가계부문의 순자산은 총 74조8209억 달러로 집계됐다. 6년 전인 2007년과 비교했을 때 8.5% 증가했다. 그 사이 물가가 오른걸 감안하면, 이 역시도 제자리 걸음을 한 셈이다. 금융위기 이후 집값과 주가가 폭락했던 걸 감안하면,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다. 만약 미국 연준이 수조 달러의 돈을 퍼부어주지 않았다면, 그래서 주식과 집값을 다시 부풀려 올리지 않았더라면 이 그림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연준 통계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미국 가계부문의 총부채는 13조5484억 달러로 6년 전에 비해 2.7%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연방정부의 총부채는 15조6136억 달러로 6년 전에 비해 정확히 두 배(100.5%) 폭증했다. 만약 미국 정부가 막대한 재정적자를 감수하지 않고, 연준이 막대한 돈을 퍼붓지 않았다면 가계부문의 부채는 어디로 갔을까.


지난 6월말 현재 외국인이 보유한 미국 국채는 총 5조6006억 달러로 6년 전에 비해 두 배 반(155.3%)이나 증가했다. 만약 한국은행을 비롯한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강남 아줌마와 와타나베 부인들을 비롯한 각국의 민간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사 주지 않았다면, 지금 미국의 재정과 경제와 금융시장은 어떻게 됐을까.


미국 하원을 지배하고 있는 공화당이 지난 주말 ‘오바마케어’ 시행 연기를 조건으로 하는 두 달 반짜리 임시 예산안을 가결시켰다. 민주당이 지배하는 상원이 하원의 당초 임시 예산안을 기각하는 내용의 법안을 만들자 이를 재기각하는 예산안을 짠 것이다. ‘오바마케어’란 전국민이 의무적으로 의료보험에 가입토록 하되 그 부담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해주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과 유사한 제도다. 이 제도가 10월부터 시행되면 미국 국민들의 복지수준은 높아지지만, 고용주와 정부재정의 부담은 증가한다.


미국 여야의 예산안 핑퐁이 계속되면서 새 회계연도를 당장 하루 앞 둔 미국 연방정부는 운영이 중단될 위험에 처했다. 설사 극적으로 타협해 정부 셧다운(shut down)을 피한다 하더라도 10월 하순에는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연방정부의 부채가 한도에 도달해 국채 이자를 갚을 돈조차 구할 수 없게 되는 국가부도의 상황을 맞게 된다. 하지만 공화당은 ‘복지를 줄이지 않으면 부채 한도’를 늘려주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는 반면, 민주당과 오바마 대통령은 ‘무조건 한도확대’를 요구하며 비타협을 거듭 공언하고 있다.


국가부도를 볼모로 한 미국 여야의 재정전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금을 늘릴 것인지, 복지를 줄일 것인지, 도저히 타협이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이념의 충돌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노인이 되는 5~6년 뒤부터는 미국 재정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씀씀이를 줄일 수는 없다며 오히려 복지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자라는 돈은 부자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반면, 공화당은 서민과 노인들의 살림살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 복지를 줄이자는 주장만을 거듭한다. 부자들은 한 푼도 더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여야의 대립이 전에 없이 첨예해진 것은 작용과 반작용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합작한 미국의 거품경제는 지난 20년간 빈부의 격차를 끊임 없이 확대시켰고, 그 과정에서 중산층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부풀어 오른 집값과 주식값, 그리고 엄청난 부채다. 궁지에 몰린 중산 서민들은 목청을 높였고, 그 압력에 역시 궁지에 몰린 부자들은 자기보호에 더욱 열중했다. 그리고 협상과 타협의 온건한 중도정치는 중산층과 함께 실종됐다. 낯익은 풍경 아닌가.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정부가 엄청난 적자를 내지 않았더라면, 연준이 엄청난 돈을 풀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살림살이는 더욱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정책은 꺼진 거품을 되살려낸 데 불과했다. 미국의 재정정책은 경제구조를 건전하게 조정하는데 인색했다. 먹고 살 만한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깎아주고 서민들에게는 보조금을 주는데 주력했을 뿐이다. 지난 6년간 미국의 경제회복이란 그저 가공(架空)의 시가총액과 빚더미 위에서 과소비를 계속해 나가는, 거품경제의 부활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자산 가격은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지만, 그 과정에서 빚은 더 늘어났고 일자리는 줄어들었다. 이 불균형을 지탱하려면 자산 가격을 더 부풀리는 수밖에 없다. 계속 확대되는 빈부의 격차를 무마하려면 복지지출을 더 늘리는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계속 늘어나는 빚을 지탱하려면 자산가격을 더욱 더 부풀리는 수밖에 없다. 그 사이 정치인들은 더욱 날을 세워 싸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부와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시장 교정(矯正)이 만들어 낸 현대 복지국가인가.


정치인들의 극한 대립은 경제와 사회의 양극화를 반영한 것이며, 이는 더 나은 구조와 체계를 찾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겠지만, 작금의 싸움이 그 길을 열어줄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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