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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보수와 진보인가?

  • 2014.06.25(수) 11:08

경제적 양극화 못지않게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하는 것이 마구잡이식 편 가르기다. 보수파와 진보파의 주장을 들어보면 `보수`나 `진보`라는 가치를 존중하기보다 막무가내로 내편과 네편을 가르는 파당 논리에 급급할 뿐이다.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고 새롭게 발전시키기보다는 쓸데없는 적개심을 조성하여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분열시키는게 고작이다.  

전통적 가치를 지키는 일과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는 일은 서로 어긋나는 것이 아니고 보완적인 것이다. 보수는 가치 있는 전통을 옹호하고 보전하겠다는 것이고 진보는 더 나은 변화와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뜻이다. 아무 것이나 움켜쥐는 것이 아니고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을 지켜야 한다. 또 과거나 현재보다 발전되고 더 가치 있는 길이어야 비로소 변화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논어에서도 보수와 진보가 불가분의 보완관계에 있음을 갈파하고 있다. 바로 "옛 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 爲政 11)" 는 구절이다. 배운 것을 때때로 익히고, 새롭게 터득해 가면 그 배움과 응용이 더욱 넓어지고 커져 귀감이 될 만하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고(故)는 예전에 배운 것이요, 신(新)은 지금 새롭게 터득해가는 것이라고 풀이된다.

그런데 배운 것을 맹목적으로 외우고 이에 집착하여 따지기만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조선시대, `사이비` 유학자들이 유학을 빌미로 하여 골육상쟁이 그칠 날이 없었던 것은 온고지신을 외면하는 행위였다. 하찮은 사건을 제멋대로 해석하며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인 기사환국, 갑술옥사, 경신대출척 같은 옥사는 지키는 것도 나아가는 것도 없는 한낱 `진흙탕 개싸움`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빛나는 세기였다고 평가되는 르네상스는 온고지신의 시각으로 보수와 진보를 조화시켜 인간의 모습을 부활시켰다. 그 시대 깨어난 인문주의 학자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인류가 최고의 문화를 달성했고 그 이후에는 점차 부패하기 시작하여 중세암흑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역사를 종교적 연속선상이 아닌 사회 문화적 발전단계로 보고 온고지신의 자세로 그리스 로마의 유산을 재발견하고 재생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테는 신곡(神曲)을 쓰면서 신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이야기를 하였고, 페트라르카는 고전을 대중이 접근할 수 있도록 속어로 정리했다. 이처럼 옛것을 가다듬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는 태도는 이후의 예술, 과학 등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쳐 문예부흥시대를 이끌었다.

우리 근대사를 들여다보면, 보수와 진보의 뿌리가 뒤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한말 소위 수구파는 나라의 명줄은 생각하지 않고 가렴주구에만 눈이 멀어 있었다. 오히려 나라의 전통을 지키려 했던 우국지사, 독립군들은 당시 기득권과는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다. 가늘어져 가는 나라의 명줄을 지키려고 헌신했던 이들이 바로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닌가? 백범일지를 보면 그가 나라의 명맥을 지키고 전통을 이어받으려 온 힘을 기울인 정통 보수주의자임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신문물을 받아들여야 나라가 깨우칠 수 있다"며 외세에 기대어 한탕 하려던 지식층, 소위 개화파 인사들은 어떠하였는가? 초심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나라의 흥망은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만신창이로 더럽혀진 매국노가 되었다. 시류에 따라 탈바꿈을 거듭한 무항배(無恒輩)들이 어찌 이들뿐이겠는가?
 
묵은 때와 먼지를 떨어낼 생각을 하지 않고 "이대로 가자"고 하면서 제 이익에만 집착하면 억지 수구세력으로 전락하게 된다. 또 새롭게 가자는 길이 사람들을 더 피곤하게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면 망나니가 될 뿐이다. 기회주의자들이 보수의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도 엿보이고, 또 막가파들이 진보의 탈을 쓰고 사람들을 우롱하는 행태도 자행되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은 이상은 없고 환상에 빠진 거짓 진보와 그저 약삭빠르기만 한 가짜 보수의 다툼을 따라 식자층들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일이다.

지킬 것은 지키고 나아갈 것은 나아가야 더 큰 것을 이룩할 수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보수와 진보는 견제와 균형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경제사회에서도 온고지신의 자세로 기왕에 이룩한 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터득하고 나아갈 길을 찾아야 지속적 성장과 조화로운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세(勢)를 얻거나 이권을 위하여 편 가르기에 열중인 인사들은 한 번 쯤 생각해보야야 한다. 무엇을 위한 보수와 진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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