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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경제학`

  • 2015.07.15(수) 15:48

우리 사회에서 충격적인 일 중의 하나는 “정직하고 바르게 살면 출세하기 어렵다”는 고교생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 가공스러운 `신뢰의 적자` 사태는 말할 것도 없이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거짓말과 일그러진 행동거지로 말미암은 것이다.

불신시대, 불신사회에서는 공동체 의식은 무너지고, 그저 동물세계의 정글법칙(law of jungle)만이 횡행하고 강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비린내가 풍긴다. 서로 믿지 못하면 배신의 그림자가 덮치고, 불신의 대가를 치러야하기 때문에 경제적 효율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결국에는 자기 자신도 속이게 되는 거짓말이 정말 비경제적이라는 것은 “한 마디 거짓말이 천 가지, 만 가지 진실을 망쳐버린다”고 한 아프리카 가나의 격언이 잘 설명하고 있다.

생각건대, 순간의 체면치레나 허영심을 달래려는 악의 없는 거짓말도 마음의 동요를 일으켜 집중력이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자칫하다 세상만사를 뒤엉키게 할 수 있다. 자주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거짓말한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거짓말의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는 식민지배, 좌우 극한대립, 군사 쿠데타, 동서대립 같은 혼란을 거치면서 가치관이 전도되고 왜곡되었다. 공동체의 가치는 제쳐두고 오로지 자신이나 패거리의 힘을 더 자랑하려는 배신의 풍토가 뿌리내렸다. 이렇듯, `힘이 정의`인 사회에서는 권력의 이동이 있을 때마다 배신의 무리들이 설치기 마련이다. 청소년들은 달리 가르치지 않아도 이러한 일그러진 모습들을 저절로 보고, 더 빨리 배우기 마련이다.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하루 동안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한 달 동안 행복하려면 말을 사고, 한 해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새 집을 짓고, 평생을 행복하게 지내려면 정직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정직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경제정책이라는 뜻이다.

신뢰의 바탕이 되는 정직은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보기 위하여 쓸데없이 시간과 두뇌를 허비하지 않게 하는 나침판이다. 사실 주변에 정직한 사람들로 둘러 싸여 있다면, 그 자체가 커다란 안도감과 함께 만족감을 주는 효과가 있다. 정직은 주변 사람 특히 가족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자부심 같은 줄 수 있다. 제 자식이 “잘나고 똑똑하다”는 것보다 정직하고 떳떳하다고 자랑 삼는 부모들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본다.

국어사전에 보면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고 곧은 마음의 상태”를 정직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정직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생각건대,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궁극적 목표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너무나 경제적인” 과제는 사람들이 정직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이 정직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하는 일은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로 이어져야 할 경제적 유산이다.

바른 자세와 정직한 행동은 거창한 구호나 특별한 맹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안분지족하는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것이다. 근검절약하며 사는 `경제적 동물`에게 불의와 거짓이 끼어들 틈이 없다. 역으로 정직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살기 힘든 사회는 자유와 평등이 굴절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를 살펴보면, 2014년 현재, 1분위 소득계층(하위 20%)의 1인당 평균소득은 어림잡아 6500달러를 밑돈다. 소득 3만 달러 사회에서, 인구의 20% 즉 1천만 이상이 6천5백 달러의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다, 성장지상주의, 약육강식 사회, 굴절된 경제의 그늘을 보는 것 같다. 어쩌면 한국사회는 이들을 배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먼 시각에서 볼 때, 우리는 거짓 사회에서  `배신의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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