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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와 비리를 혼동하는 사회

  • 2014.08.12(화) 10:42

상상하기조차 힘든 사건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진실을 말하고 비리를 지적하는 사람을 오히려 배신자로 낙인찍기도 하고, 그저 강자에게 빌붙어 부화뇌동하려는 인사들이 준동한다. 가치관이 표류하고 갖가지 사회악이 번지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사건들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의리와 비리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깡패의리를 강조하다보니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한다. 결국 대형비리나 엽기적 사건들을 만들어 내는 토양이 된다. 

국가대표 감독이 후배라고 또는 신세를 졌다고 엉뚱한 선수를 선발하는 것은 의리가 아니라 권한남용이다. 총을 쏠지도 모르는 친구의 아들을 사격특기자로 입학시키는 행위는 친구에 대한 의리가 아니라 돈 몇 푼 얻어먹으려는 구걸이다. 그저 개인 심부름이나 신경 쓰는  아첨꾼을 요직에 앉히는 것은 조직과 사회를 썩게 하는 사회악이다.

사지가 멀쩡한 젊은이가 병역의무를 기피하면 다른 누군가가 대신하여야 한다. 가짜 사격특기자 때문에 진짜 사격특기자는 갈 길을 잃게 된다. 엉뚱한 자가 요직을 차지하면 다른 누군가가 자리를 빼앗기고 그 조직은 순식간에 동요한다.

불량배들이 조직원 보호와 그 반대급부로 맹목적 추종을 강요하는 소위 `깡패의리`와 의(義)는 처음부터 다르다. 의는 사람이 걸어야 할 옳은 도리고, 깡패의리는 세력판도와 먹잇감에 따라 그때그때 구겨지기도 하고고 찢겨지기도 하는 거래관계다.

유난히 의리를 강조하는 인사가 있었다. 사실 나는 `주먹`도 아니고 또 누가 먼저 죽을지 모르는데, 그는 툭하면 "이 다음 형님이 돌아가시면 무덤가에 측백나무를 심겠습니다"라고 하며 나의 허영심을 한껏 자극하였다. 생각건데 의가 직언을 하고 옳은 판단을 하게 하는 것이라면, (깡패)의리는 아첨과 다름없어서 상대의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행동이다. 쓸데없이 의리를 강조하는 사람들을 경계하여야 하는 까닭이다. 

일본이 태생지인 의리(義理)라는 단어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닌, 계약관계 내지 법률관계에 대한 의무를 뜻한다. 의부(義父), 의모, 먼 친척 등에 대한 내키지 않는 의무, 즉  싫어도 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리면 일본인들은 "의리(기리라고 발음) 없는 자"로 매도하곤 한다.

「국화와 칼」을 저술한 베네딕트(R. Benedict)가 지적한 것처럼 기리는 이중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무사도를 표방하는 일본은 수 없이 많은 내전과 임진왜란, 청일전쟁, 노일전쟁, 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단 한 번도 선전포고를 하지 않고 불시 기습을 감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의리라는 말이 본래의 의(義)와는 본질이 다른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은 야쿠자 문화가 식민지시대에 한반도로 건너오면서 부터라고 한다. 주먹세계에서 `기리`를 깡패의리로 받아들이고, 오늘날까지도 정당성 없는 모리배들이 이것저것 함께 나눠먹자고 소리 높여 의리를 외치는 것이다.

의는 변할 수도 없고, 변하지도 않는 인간의 도리를 말한다. 맹자는 변하지 않는 마음, 항심(恒心)을 의의 기본이라고 하였다. 정조 임금은 의가 바로 선 뒤에야 통치의 도가 행해지는 법이라고 하였다. 그는 또 "조정 벼슬아치들은 「한결같은 뜻」이 없다"며 개탄했다.  

저마다 지켜야 할 도리는 지키지 않고 입으로만 인의예지를 뇌까리니 의가 바로 서고 나라의 기반이 튼튼할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 정조 임금이 갑자기 죽음을 맞자 나라는 극심한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아무  준비 없이 개항을 맞았고 국제 정세의 격류에 휩쓸려갔다.   

비극적 세월호 사건이나 참혹한 병영 린치 사건은 의리와 비리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우리사회에 잠재하고 있었던 사건들이다. 또 여기저기서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살겠다"며 의리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우리에게 무엇인가 신호를 보내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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