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객선은 침몰 직전까지 위태위태한 `서커스`를 하며 운항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탐욕으로 눈이 어두운 인간들은 그 위험한 곡예를 외면하고 있었을 것이다. 진도 앞 바다 여객선 참사의 원인과 전개, 그리고 수습 과정을 보면 비극의 싹은 처음부터 내연되고 있었으며, 단지 언제 터지느냐의 문제만이 남아 있었음을 느끼게 된다.
인간의 탐욕, 직업윤리 실종, 그리고 전시행정이 버무려진 `대형 참사의 백과사전`을 보는 것 같다. 우리사회를 어지럽히는 "그저 잘 살기만 하면 된다"는 생명경시 풍조로 말미암은 재앙이다. 한국인 모두가 죄인이다.
바다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 같지만, 언제 거센 바람과 성난 파도가 휘몰아쳐 올지 모른다. 배는 균형과 중심을 잡아 파도를 넘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시냇가를 오르내리는 조그만 보트도 좌우전후 균형을 잡아 출렁거리는 물결에 넘어지지 않도록 만든다.
배를 개조하고 무게를 늘리는 일은 처음 건조할 때 잡은, 균형과 중심축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1000명이나 되는 소중한 생명들이 타는 배가 균형을 잃어 넘어질지도 모르는데, 정원을 늘려 돈을 더 벌겠다는 일은 미필적 고의가 아니고 무엇인가?
탐욕이 앞서다보니 사람의 생명을 하찮게 여긴 탓이다. 18년 동안이나 운항한 중고선박을 도입하여 정원을 늘리고 선체 중량을 늘려 배의 중심을 이동시켰는데, 감독 관청의 아무런 제재가 없었던 것도, 법규를 떠나 신기한 일이다.
여객선에 적재된 화물의 중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되지 않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배에 실린 화물들을 고정시키지 않아 이쪽저쪽으로 쏠려다녀 균형을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배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고귀한 목숨은 나중 문제가 되었다.
배가 기울어지고 있는 위기 순간에 승객들은 배안에서 웅크리고 앉아 친척이나 통신사에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통화하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탈출하여 구명보트에 옮겨 타야할 그 순간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장면이다. 여객들의 목숨을 책임져야 할 승무원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최소한의 직업윤리 내지 소명(calling)의식은 아예 없었다.
바다는 언제 심술을 부릴지 몰라 목숨을 보장 받을 수 없기에 예로부터 `바다의 사나이`들은 의리가 강하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나?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공동체의식 실종으로 사람들이 저만 살려고 하고, 저만 앞서 가려고 하는 의식이 전염되었기 때문인가? 이 깊고 넓은 병리현상은 어느 누구를 탓할 수 없고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부인할 수 없다.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이어서 예방과 대비책을 마련하고 평소 예행연습을 하고 끊임없는 훈련에 힘써야 방지할 수 있고, 사고가 나도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대형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보게되는 것은 차분히 지휘해야 할 `관제탑`이 오히려 허둥지둥하는 모습이다.
사고 수습은 무엇보다 적절한 초기대응이 중요하다. 이 번 참사에서도 보듯이 초기대응은 `헛발질`이 되고, 엄청난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고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사례를 교훈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기진맥진하며 일하는 잠수부들만 애처롭다.
맡은 일을 천직(天職)으로 여기는 전문가 대신에 아마추어들이 자리에 앉아 우왕좌왕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미친 듯이 자기 일에 몰두하는 전문가들은 어디로 갔는가? 적당 적당히 하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려야 하기 때문인가? 그러다 보니 실질적 효과보다는 그저 홍보자료를 만지작거리며 전시행정에 신경 쓰는 한심한 모습이 어른거린다.
국민소득이 물경 2만6000달러를 넘어섰는데, 우리의 의식세계는 아직도 부자나 빈자나 다 같이 배고프고 목말라하는 지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해 페리호 전복,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같은 대형사고가 이어졌지만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하라"는 메아리만 요란하게 울리다가 흐지부지 넘어갔다. 모두가 그 때 뿐이고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먹고 살기 바쁜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질책하기 일쑤였다.
어린 영혼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참사의 원인과 전개 과정을 잘 정리하여 안전교육 교본으로 삼고 반복하여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실패를 교훈으로 삼지 않는다면 사태는 반복될 것이다.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오기에 평소에 준비를 하여야 한다. 느리게 가더라도 안전하게 가는 일이 더 절실함을 뒤늦게 라도 깨닫자.
지금은 우리 모두가 깊이 반성하고 참회하여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