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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집지교`..우정인가 배신인가?

  • 2015.04.21(화) 10:36

거금을 `꿀꺽`하다가 목에 걸린 인사들 대부분은 견디지 못할 정도로 억울해 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우정 어린 감사와 존경심의 표시였는데, 세상 인심이 바뀌다보니 배신의 올가미로 변하기 때문이다. `망자의 리스트` 회오리에서 나타나듯, 준 자와 받은 자들이 서로 손가락질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까마귀 떼가 깍깍거리며 몰려들었다가, 깍깍거리며 흩어지는 광경과 다름없다. 그들은 어찌하여 빤한 거짓과 지저분한 변명으로 스스로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것일까?

우정이나 사귐은 품격에 따라 대체로 다섯 단계가 있다. ① 바라는 것이 없어도 변하지 않는 향기로 가득한 지란지교(芝蘭之交) ② 신뢰와 존경으로 목을 베어도 두려워하지 않는 문경지교(刎頸之交) ③ 서로 깊이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관포지교(管鮑之交) ④ 물고기와 물처럼 떨어져서는 살기 없다는 수어지교(水魚之交) ⑤ 달착지근하게 달라붙다가도 어느 순간 서로 물어뜯는 오집지교(烏集之交).

오집지교는 까마귀가 떼 지어 몰려다니다가 먹잇감이 생기면 시끄럽게 싸우듯이 권세와 이익에 따라 뭉쳤다 흩어졌다 하는 패거리들의 사귐으로 세리지교(勢利之交)라고도 한다. 또 입으로는 연신 의리를 내 세우며  할 짓 못할 짓을 가리지 않다가도, 순식간에 마음이 변하여 서로 욕을 해대는 만남이어서 구두지교(口頭之交)로 불리기도 한다. 저자거리에서 만나 금방 해해거리며 귓속말을 하다가도, 하찮은 일로 원한을 사기가 십상인 망나니들의 사교이기 때문에 시도지교(市道之交)라고도 한다. 이들의 교우는 언제,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 몰라 우정과 배신의 경계를 구분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공자는 “선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향기로운 지초난초 옆에 있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향기에 동화되어 주위에 향기를 퍼트린다”고 하였다. 반대로 “썩은 무리와 같이 놀면 썩은 생선 냄새에 절인 것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악취를 풍긴다”고 하였다. 같이 노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또 군자는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패거리를 만들지는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패거리를 만들지만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고 하였다. 세상살이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편을 갈라 치고받고 하다 보면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 어렵게 된다. 패거리논리에 빠지다보면 잘못되어도 잘못되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니, 더 큰 문제가 잉태되기 마련이다.

오집지교나 세리지교의 폐단은 국회청문회 때마다 간단없이 등장한다. 보통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비리 백과사전 같은 인사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광대놀음이 연출된다. 따져보면, 까마귀들 끼리끼리 과시하는 그 비뚤어진 우정은 사실상 공동체 사회에 대한 배신이다. 그러고도 부끄럽기는커녕 공을 세운 듯이 으스대는 선량들을 똑 같이 타락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정신이상이라고 해야 할까?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고 견강부회하는 환경에서는 끼리끼리 모여 달디 단 아첨과 거짓 칭찬에 익숙하게 되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들이 정작 알아야 할 것은 거짓말을 하다보면 스스로 판 거짓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결국에는 몇 가닥 남은 진실까지도 매몰되기 마련이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다.

소인배가 분에 넘치는 권력이나 돈을 쥐게 되면, 자주 변덕을 부려 사람들을 피곤하게 한다. 뜻있는 사람들은 떠나가고, 간신배들만 몰려들어 깍깍거리기 때문에 이성적 사고와 정상적 판단이 불가능해진다. 덕도 없고 정의감도 없는 인사가 요직을 차지하면,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다가 결국에는 제 꾀에 빠져 저 자신도 수렁에 빠지는 사례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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